포르투풍 내장 요리


어느 날 식당에서, 시공간 바깥에서, 
나에게 사랑을, 식은 내장 요리처럼 가져다 주었어. 
나는 주방장에게 예를 갖추어 말했지
나는 데워서 주는 편을 선호한다고, 
내장 요리는(게다가 그건 포르투풍이었어) 절대 차게 안 먹는다고

그게 사람들 심기를 건드렸던 거야.
맞는 말도 못 꺼낸다니까, 식당에서조차 말야.
나는 먹지도 않았고, 다른 걸 주문하지도 않았고, 계산을 치른 다음, 산책이나 하려고 거리로 나왔지.


이게 뭘 의미하는지 누가 알까?
나는 모르지만, 나에게 있었던 일......


(나는 잘 알지, 유년 시절에는 누구나 뜰이 하나 있다는 걸,
사적인 곳이든 공공 기간이든, 이웃집 것이든.
나는 잘 알지, 우리가 놀이에 주인이었던 걸.
그리고 슬픔은 오늘의 것이란 걸.)


나는 이걸 두고두고 깨닫곤 해.
하지만, 내가 사랑을 주문했는데, 어째서 식은 포르투풍 내장 요리를? 가져다준 거냐고,
차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데, 
차게 가져다줬다고.
나는 불평은 하지 않았어. 하지만 찼다고.
절대 차게 먹는 게 아닌데, 차게 나왔다고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