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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 책을 낸 출판사 불새에 대해 몇 마디 하고 넘어가자. 불새는 한국에서 SF를 좋아하던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출판사다. 그리고 약간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이름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이유는 간단한데, SF 번역이 좀 더 필요하다 어떻다 하고 요구는 잔뜩 하다가도 결국 실제로 번역해서 책을 내니 아무도 사지 않아서 망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유도 상당히 분명하다......



전에 불새에서 나온 책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제임스 블리시의 <양심의 문제>였던가), 아마 이 책과 그 책이 둘 다 같은 문제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일단 번역작의 선정 자체가 SF 매니아라도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까지 구미가 당기지는 않는 글들이라는 점이다. 그 옛날 SF 작가인 제임스 블리시를 한국에서 과연 몇 명이나 알까? 진 울프는? 하다 못해 블리시의 다른 번역작인 <우주 도시>는 여러 권짜리 책 중 단 한 권만 번역되고 그 뒤로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옛날 SF들은 솔직히 말해서, 여태까지의 독서 경험 상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글 솜씨로도, 설정으로도.



다른 잡다한 문제들은 일단 저 디자인. 표지랄 것이 없이 전부 저 디자인으로 통일하고 있는데, 이 디자인이 21세기의 시리즈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게다가 POD 방식으로 인쇄하여 판매하기 때문인지, 열몇 페이지마다 꼭 한 번씩 인쇄가 심하게 흐릿하게 된 부분들이 보인다. 이 <케르베로스>는 내 알기로 불새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책인데도 동일한 문제점이 고쳐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것보다 훨씬 더 자주 보이는 조사 따위의 오탈자와, 그보다는 가끔이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눈에 띄는 치명적인 오기까지. 1인 출판사의 문제라곤 생각한다. 그래도, 주문 예약 펀딩식으로 책을 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책이 아니라 PDF 파일을 만들어 건네주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불새의 실패는 단순히 국내 SF 매니아의 인구 문제만을 탓하기에는 좀, 너무나 많은 원인이 눈에 띈다.



어쨌든, 이미 망한 출판사에 대해 더 왈가왈부해서 뭐 하겠는가. 본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케르베로스>는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는 일종의 3부작 소설인데, 글의 배경과 인물들의 관련성과는 별개로 각 글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글의 배경은 세인트 앤과 세인트 크로이라는 이중 행성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 순차적으로 침략해 식민지화한 역사가 있는 곳이다. 1부와 2부에 해당하는 단편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언급되지 않으니 이 이야기는 뒤로 미루자.



1부는 고딕 냄새가 풍기는 심리 소설로, 아버지에 의해 감금되어 아버지를 그대로 이어받기 위해 양육된 복제인간 5호를 주인공이자 화자로 삼아 복제인간의 심리적/사회적 동일성을 다룬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타성적으로 자신의 클론을 만들고 자신과 동일하게 키웠지만, 5호는 정작 아버지를 죽이고 만다. 그래도 사실 상관은 없다. 어차피 사회적으로 봤을 때 5호는 아버지와 다를 것이 없으니까. 동일성이 본작의 핵심 주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이 이중행성들의 원주민들에 대한 "베일의 가설"이 몇 번이고 언급되며 독자의 시선을 끈다. 인간들이 이곳에 왔을 때, 원주민들은 인간의 모습을 완전히 동일하게 모방했고 그 결과 더 이상 그들을 이주민들과 구분할 수도, 구분할 이유도 없다는 둥의 이야기다.



이 가설을 은연중에 옹호하듯, 2부는 1부의 주인공 5호를 찾아와 베일의 가설 이야기를 하고 그 가설을 연구하는 학자와 이야기를 하고자 한 마쉬 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확하게는, 이 마쉬라는 이름이 2부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제목에 대놓고 박혀 있다. <존 V. 마쉬의 "이야기">. 작중 주인공은 이 행성의 원주민인데, 그가 이 행성의 다른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성간항해선"을 부르고 인류가 이 땅에 내려앉았고, 그 주민이 누군가를 다른 누군가와 동질화시킬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해보면, 아마도 2부의 주인공이 이후 인류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게 되며 가진 이름이 저 존 V. 마쉬일 것이다.



2부는 1, 3부와 비교했을 때 성격이 상당히 다른 글로, 이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소위 인디언식 이름의 인물들과 자연지형, 현상들이 나오고 글 자체도 일종의 신화적 민담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2부를 읽으며 <케르베로스>를 진지하게 내려놓고 싶었다. 이 놈의 신화적 원시 부족의 이야기가 너무나 뻔해서 지겨웠던 것과 별개로, 인디언식 이름들이 너무나 낯설어서 글을 읽는데 불필요한 난점이 있었고 (내 말은, 특이한 어휘로 사람의 의식을 분산시키는 글이라면 이 특이한 어휘들이 서술하는 대상이 매력적이고 특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냥 말장난처럼 뻔하게 우리 머릿속에서 일상어로 치환되는 용어를 적당히 있어 보이는 말로 바꾸는 게 아니라. 말이 더럽게 길어지는데, 예전에 한국 판타지 소설인 <하얀 로냐프 강>에서 쓸데없이 병장기들의 이름을 칼, 방패, 창이 아니라 페치, 페가드, 마텐 따위로 불러서 신경만 쓰이면서 메리트는 느끼지 못해 짜증났던 기억이 난다.) 작명 자체도 심지어 상당히 당혹스러울 정도로 '구린' 게 있었다. "풀도 좀 먹어"라는 이름의 인물을 정말로 써야 했을까? 난 잘 모르겠다.



다만 3부는 상당히 재밌었다. (개인적으로 재미를 따지자면 3>1>>>2부라고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그 탓에 책을 내려놓을 뻔한 게 참 아쉽지만, 그러니까 그 놈의 환-타지스러운 장난질은 그만해줬으면. 르귄의 <헤인 연대기>의 하위호환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3부는 또 분위기가 확 변해서, 이제는 이 행성들의 인간 세상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며 어떻게 이 식민 행성의 군부가 냉전 시대스러운 편집증을 갖고서 한 시민을 탄압하는가를 중심으로 행성을 재조명한다. 1부에서 나온 마쉬 박사가 이번에는 핵심 인물로 대놓고 등장하며, 그가 군부의 적당한 핑계를 사유로 투옥당한 이후 그가 남긴 기록을 군관이 열람하는 형태로 3부가 흘러간다.



마쉬 박사는 처음에는 자신이 원주민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아이와 함께 행성을 탐사하며 이제는 사라졌다고 알려진 원주민들을 찾아나서는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변할 수 있는 모방 능력을 가진 원주민들과 인간의 동일성을 이야기하는 "베일의 가설"에 심취해 1부에서 나왔듯 다른 학자를 찾아가고, 그 방문을 일종의 간첩 행위라고 생각한 군부에 의해 체포된다. 그곳에서 그는 정신분열증에 걸릴 법한 대우를 받으며 점차 불안정해져가며, 발작적으로 과거를 회상하게 되는 일도 잦아지는데, 글은 어디까지나 군관이 이 기록들을 열람하는 형태이고, 군관이 뽑아드는 기록들이 시간축 상에서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상태이기 때문에 이 정신병적인 인상은 전체적으로 더욱 더 강화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꽤나 흥미로운 책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으니, 이 사람, 글솜씨가 안 좋다. 최근 포크너를 다시 읽고 있어서 더욱 대조적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블라인드 사이트>를 볼 때처럼 <케르베로스> 역시 그리 좋지 않은 글솜씨로 글을 아무렇게나 꼬아놓고 서술 역시 영 찜찜하게 불완전한 탓에 그리 좋지 않은 느낌으로 불편하다. 여러 번 볼 수록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소설이라는 평도 해외에서 자자한 것으로 알지만, 글쎄, 여러 번 보고 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탈식민주의적인 서사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데에 비해, 사실 이런 주제는 SF 같은 장르보다는 아무래도 문학 쪽에서 훨씬 잘 다루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P.S. 이 책은 상술한 제작 방식 덕에 중고 매물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 가격의 문제를 떠나서, 아예 파는 곳이 없다. 이 책을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을 찾기 위해 꽤나 헤매야 했으니, 아마 흥미가 생긴 사람이 있대도 그 점 역시 고려해야 할 테다.



P.S.S. 이 책도 한 번 리뷰해달라는 모 유동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