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마찬가지로 독서에도 왕도가 없다.
아무리 치밀하고 세련된 논리나 지식을 배웠다해도 

당장 주위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한다면 그건 지혜가 아닌 죽은 지식에 불과하다.


타인이 말하는 시(철학, 문학 등등)를 내가 어떻게 듣고 

어떤 방식으로 대처할지 궁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매순간 모두에게 똑같은 질문이 던져지지 않고 질문도 조금씩 변화한다. 

같은 논리를 배웠다고 해도 다른 맥락에 적용하면서, 

어떤식으로 요리를 해서 써먹을수 있는지를 궁구해야 한다. 

설령 얄팍하게 배웠다쳐도 응용 해볼 수 있다.


백날 정석으로 뭘 배웠다 한들, 

껍데기 인간처럼 행동한다면 그건 허례허식 가득한 제사장에 불과하다. 


동서고금에서 모두 강조한 건 제삿상의 음식이 아니라 

제삿상을 준비하는 이의 태도다. 

제삿상의 음식이 그 사람을 대변하지 않는다. 


어떤 카드 게임에서 17턴이 넘어가면 공략의 의미가 사라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서도 학문도 17턴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책상물림의 저주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오버/언더 피팅 이다.


그 누구도 몇번째 턴인지 모른다. 

그 턴을 아는 것은 결코 지식으로 배울수 도 없다. 

그래서 몇 턴이 맞다고 확언 할수도 없다. 

단지 내가 이 턴에 베팅을 할지말지 결정할 뿐이다. 


모두가 이 턴을 모르지만 누가 이 턴이 맞다고 이야기해주면 판단이 편해진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자립심이 서서히 사라진다. 들은만큼 귀가 먼다는 역설이다. 

비용을 치러야 하겠지만, 컨설팅을 받음으로써 책임회피도 하고, 타인의 시나리오를 편하게 쓸 수 있다. 


부처를 만나고 싶어 부처를 찾으러 다녔는데, 부처는 부처 자기를 죽이라 한다. 

책은 마약인 동시에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