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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번역되어 한국에 출판되기 이전부터 이 책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대부분의 책에 대한 감정이 그렇듯, 재밌어보인다는 표현을 쓰면 되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기 저자와 전기의 당사자가 기묘하게 겹쳐 보였던 덕에 이 책에서 그 둘이 공포를 토대로 어떤 식으로 공명할지 궁금했었던 탓이다.



물론, 러브크래프트와 우엘벡은 비슷한 종류의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러브크래프트는 대부분의 저술 활동을 호러/위어드 픽션에 바쳤고, 우엘벡의 소설들은 우리가 보통 문학이라고 부르는 범주에 있다. 그러나 이 글의 장르를 제쳐두고 글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시선이나, 글 전체를 이끌어가는 추진력의 근원을 따져보면 두 사람이 생각보다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면, 러브크래프트와 우엘벡은 각각 과거와 현대의 혐오 가득한 문학가이기 때문이다.



이 혐오라는 어휘가 요즘 시대에 가지고 있는 풍부한 (그러나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지양하고 싶은) 맥락을 차처하더라도, 두 사람이 혐오 섞인 시선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러브크래프트의 <메두사의 머리타래>에는 참 기념비적인 반전이자 진상 고백이 등장하는데, 작중 인물이 선조로부터 어느 정도일지는 몰라도 흑인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서술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포스러운 효과를 주리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우엘벡은, 이슬람 정권이 프랑스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복종>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소설에서 늘 여성에 대해 성욕만을 앞세우고 움직이거나 그 성욕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을 그려낸다. 뭐, 사실 길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이름을 둘 다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생각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넓게는 인생을 혐오한다. 그는 인생에서 큰 축이 되는 돈과 성욕, 그리고 고고한 자신을 위협하는 타인종들을 혐오한다. 우엘벡 역시 인생을 혐오한다. 세상의 모든 정치적인 흐름, 성욕, 종교, 그 밖의 온갖 거대한 이름들을 혐오하여 추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런 두 사람의 시각이 겹쳐지는 부분을 책에서 꼽으라면, "삶이란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다." (p.43)이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뒤따르는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인용, "나는 인류와 세상에 진저리가 난 나머지 (...) 그 무엇도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네." (p.44) 역시 우엘벡의 이 선언이 왜곡이 아니라는 것을 지지해준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도 이 부분과 함께 나온다. 우엘벡은 러브크래프트가 어째서 현대까지도 강대한 영향력을 떨치는가를 여러 방면에서 분석하여 주장하는데, 개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주장이 바로 이 혐오로 인해 만들어진 세상에 대한 왜곡된 시야다. 그는 러브크래프트가 청교도적인 (물론, 청교도는 아니다) 자신이 자유분방하고 방탕하며 역겨운 다른 사람들, 특히 이민족들과 혼혈들 탓에 삶에서 밀려나고 고통받는 현실을 그려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바라본 저 치들의 역겨운 모습은 한결 더 극단적이고도 신성모독적으로 왜곡되고, 이들에 의해 고통받는 피해자의 모습에 자기 자신의 일부, 또는 전부를 투영하며 어떻게 저 끔찍한 환경과 종족들 속에서 예민하면서도 교양 있는 시민이 파괴되어가는지를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저작들을 이어받는 추후 저술들에서 이러한 왜곡적인 시야를 훌륭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꼭 인종차별적인 심리까지 그대로 이어받을 필요는 없었기에 러브크래프트의 차별적인 시선을 긍정하며 동시에 부정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어쨌든, 그의 풍부한 혐오 도구들은 주관 없는 도구로서 훌륭한 성능을 발휘하고, 현대까지도 자신들이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는 반면 이들이 러브크래프트와 같은 혐오 섞인 시선을 글 속에서 드러내는 일은 없지 않은가.



스티븐 킹이 쓴 서문을 보면 이러한 작가들에 대한 너무나 긴 목록의 편린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크툴루 신화를 다루는 작가라 생각하는 이름들은 물론이고, 할란 엘리슨이니, 플래너리 오코너니, 테네시 윌리엄스니, 심지어는 킹즐리 에이미스까지. 조이스 캐럴 오츠처럼 아주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호소하는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들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선사하는 고딕과는 또 조금 다른 방식의 잔혹한 세상에 대한 시야를 공유하면서도 거기에 혐오가 섞일 일은 없다.



그러고 보면, 이 서문이 책과 합쳐지며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준다. 속되게 표현하자면 이런 건데, 방구석에서 자신을 거부하고 밀어내는 바깥 세상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호소하는 러브크래프트에게 그로부터 훨씬 미래에 사는 우엘벡이 그래 맞다, 저 바깥 세상은 정말 지루하고도 끔찍한 곳이지, 하고 동의하고 있자니, 러브크래프트처럼 호러 소설을 쓰지만 우엘벡과는 달리 그와 같은 시야를 공유하지는 않는 킹은 이런 공명을 보고 약간은 자조적으로 기겁하면서, "정말로 인류는 우리에게 그저 미적지근한 호기심만을 불러일으킬 뿐인가? 아, 친애하는 우엘벡이여!" (p.17) 하는 식으로 그 둘에게 핀잔을 주고 있다.



어쨌든, 이 서문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호러에 대해 우엘벡과는 다른 방면에서 지적하거나 분석하며 공포에 대한 문학은 어떤 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단서를 남긴다. 우엘벡은 러브크래프트의 혐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의 공포에서 혐오가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숨기지 않으며 공포 자체에 대한 글을 쓰려 했겠지만, 아무래도 공포에 대한 그의 시야는 킹보다는 조금 떨어지고 그리 공감되지 않는 분석을 이따금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생각해볼 만한 시야를 제공하고, 이를 킹의 서문과 함께 합쳐서 봄으로써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딱 기대한 만큼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