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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요약>
국가 또는 경제학자들이 보는 경제관점과 기업이 보는 경제관점은 큰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자유무역과 일자리에서 그들은 견해 차를 드러내는데 기업들은 무역이 늘어나면 자신들의 매출과 고용도 늘어나므로 국가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전체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한 기업의 성장은 다른 기업의 쇠퇴를 의미하고 전체 고용자 수는 결국 같기 때문이다. 설령 수요가 늘어난 상태에서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는 과열된 경제 상태를 조절하기 위해 금리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해 결과적으로 고용은 둔화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기업들은 자유무역에서 발생하는 외자유치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본다. 투자유치→고용증가→구매력증가→매출증가의 선순환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는 국가규모에선 다르다고 본다.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는 서로 역의 관계인데 실제 사례를 들자면, 1980년대 멕시코는 아무런 투자가치가 없어서 무역 흑자를 유지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외국인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자금이 새로운 공장에 사용할 수입 장비와 국내 경기부양에 쓰여졌다. 결국 이로 인해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멕시코 수출품들은 경쟁력을 잃고 불황에 빠지게 됐다. 그러다 1994년 페소화 위기로 통화 가치가 떨어진 멕시코는 무역 흑자로 돌아섰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은 국가와 기업의 관점 차이는 어째서 그런 것일까. 저자는 국가는 폐쇄형 시스템이나 기업은 개방형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한다. 이해를 위한 예로 저자는 쓰레기 폐기장을 든다. 쓰레기 폐기장으로 예정된 지역의 주민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무조건 쓰레기 폐기장을 어느 곳엔가에는 지어야만 한다. 국가와 기업의 경제관점도 마찬가지인데 한 기업의 부가 느는 것은 그 기업의 입장에선 좋지만 수요의 증가가 없다면 이것은 다른 기업의 부를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총 부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뛰어난 기업가들이 국가 경제도 훌륭하게 운영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은 경제를 보는 관점도 규모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치아를 치료받고 싶을 때 치과의사에게 찾아가지 내과의사를 찾아가지는 않는 것처럼 저자는 국가 경제와 기업 경영은 완전히 다른 분야이므로 각자의 일은 각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사례로서 저자는 1930년 세계 대공황 직전의 예를 든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제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해 대규모 통화 팽창 정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금본위제에 집착하던 은행가들과 생산량을 제한함으로써 가격을 올리기 원했던 제조업자들의 요구에 각국 정부는 케인스의 의견을 묵살했다. 그러나 실제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대규모 통화 팽창 정책인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타파했다고 현재 평가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매체에서 경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발화자가 과연 경제학적 지식이 있는지 유심히 보라고 독자들에게 요구하며 글을 마친다.
<감상>
중등교육과정 사회 교과서에서 경제의 3주체로 국가, 기업, 가계가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배웠을 것이다. 우리가 있는 위치인 가계에서 생각했을 때 기업을 잘 경영하는 사람은 가계 또한 자연스럽게 잘 운영할 것이라 여긴다. 여기서 확장해 그들이 국가 또한 잘 운영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저자는 경제학적 이론과 구체적 사례를 들어 이를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나는 이것이 타당한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위 내용 요약에 나와있으니 차치하도록 하고 어째서 한국인이 기업가가 국가 운영을 잘 할 것이라 믿게 됐고 현재는 어떠한지 몇 가지 사례를 참고해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본래 한국은 군사독재 기간 동안 여러 경제학자들이 경제정책에 참여하곤 했는데 그 산실이 1961년부터 1994년까지 존속됐던 경제기획원이다. 이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합되고 1997년 경제위기가 발생한 뒤부터는 경제학자들이 경제정책에 전면에 참여하는 일이 줄어들고 재벌들과 기업가들의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영향력이 강해졌다고 나는 느낀다. 왜냐하면 경제위기 뒤에 생긴 국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위기를 극복한 이후 승승장구하는 기업들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 추측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와 이건희는 많은 청년들의 우상이었고 그가 만든 삼성경제연구원의 보고서들은 청와대에서도 참고했을 정도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은 기업가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고 친기업적인 정책으로 2008년과 2011년 경제위기도 다른 나라 보다 쉽게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잘 나가던 와중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재벌들의 불법적인 행태로 이미 존재하던 반재벌∙반기업 정서는 극에 달해 전경련은 마침내 사실 상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된다.
그간의 흐름을 보면 2000년대까지 한국인들은 경제성장 제일주의라는 패러다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경제위기의 큰 책임이 있던 국가 대신 그 패러다임의 지도자로 기업을 택함으로써 그들의 발전과 국가 전체 부의 발전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부터는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기업 또한 경제성장의 지도자가 될 수 없고 경제성장이 국가 전체의 부 즉, 시민들 각자의 부 축적까지 이어지지 않자 분배와 복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다시 경제 3주체 중 국가에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고 나는 추측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은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공을 놓쳐서는 안 되었다. 경제의 최고 전문가들, 다시 말해 유수의 경제학자들과 협의함으로써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넘어서야 했다. 2017년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몇 년이 지났지만 과연 그러한 것이 이루어 졌는가 되돌아 보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에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이는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로도 나타난다).
유감스럽게도 국가와 기업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한국인들은 암호화폐, 증권, 부동산에 투기하는 것으로 자신과 가계를 보전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각개전투식 살아남기는 이제 와서 딱히 특기할 만한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성격을 가진 자산시장이 가계의 토대가 된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이 미국에 전반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미국 경기가 코로나 이전처럼 회복돼 가파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아무리 2023년까지 기준금리 인상은 없다고 말한 연준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경우 여러 이유로 한국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자산시장에 큰 타격이 와 가계도 크든 작든 피해를 입을 것이다. 내가 한 가지 두려운 것은 칼 폴라니가 말했던 '사회의 자기보호'가 극단적인 충돌로 나타날 가능성이다. 불황기 소득을 보전하려는 가계, 이윤을 보전하려는 기업, 이 둘을 국가는 어떻게 중재할 것인가? 지금 같은 세상에 군국주의, 파시즘, 공산주의, 민족주의를 이용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거 혁명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