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1fa11d028314d3faebecfec25ed6aa779bc7b5ff3087d0411f2160932d3c302c88e63309620fc9fa02ebf1da76d221b5d76dd67a3212cd9


신민경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의 감성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다.

새벽은 으레 사람을 우울하고도 감성적으로 만드니까.


한가지 소재의 책에 끌리면 관련된 책들을 연달아 찾아보는 편인데 최근 유방암 환우의 투병기였던 니콜 슈타우딩거의 <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라>를 즐겁게(?) 보고서는 암환자의 투병기를 찾아본다. 그렇게 다시 만난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말기암 환자의 에세이였다.


사람은 살면서 원하든 원치않든 많은 이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는 때로는 사랑이 넘치기도 하고 또 애틋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서글퍼지기도 한다. 부자, 부녀, 모자, 모녀, 형제자매부부 등 다양한 관계가 그러하다.


최근 2, 3년간 나는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를 많이 떠올리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역시 때로는 사랑이, 때로는 서글픔이 몰려오는 관계 아니겠는가.

영화 <지니어스>에서 기차 안에서 작가 토마스 울프의 원고를 보던 편집자 맥스 퍼킨스가 화면이 전환되기 전 살짝이 미소를 짓는 표정을 보며, 나는 조금 울었다.

작가의 원고를 보고 웃어주는 편집자가 너무 부럽고도 아름다워보였으니까.


책을 읽기 전,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을 쓴 신민경 작가의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를 둘러보며 작가와 담당 편집자의 관계를 살폈다.편집자는 겨우 3주 정도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작가에게 책 한권 분량의 원고를 받아내었다. 작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므로. 작가는 밤마다 아픈 몸으로 글을 쓰고는 편집자에게 조각의 글을 보냈다. 편집자는 새벽시간 카톡으로 작가와 수다를 떨며 작가로부터 'ㅋㅋㅋㅋㅋㅋ' 하는 메세지를 받으면, 작가를 웃겼다는 마음에 그게 많이 뿌듯했다고.


아픈 이를 웃게 만들고 글을 쓰게끔 만드는 편집자. 최근에 보았던 그 어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보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신민경 작가는 40여개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 또 재능이 있는 사람 같다. 책을 읽기 전 브런치에 쓰인 그의 글을 보며 든 생각은 감정적으로 한없이 무거운 이야기를 썼음에도 무척이나 잘 읽힌다는 점이었다. 아, 이 분. 글 참 잘 쓴다, 하는 게 책을 읽기 전 들었던 생각이다.


책은 시종일관 죽음을 준비하는 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스스로 영정 사진을 준비하고, 수의를 주문하고, 매일 잠들기 전 유서를 옆에 두고 잠들었다가, 다음날 눈을 뜨면 상자 속에 유서를 넣어두는 삶. 자신의 책 인세를 받을 통장은 부모님의 계좌로 해두고, 부모님께 뭐라도 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 말하는 사람.


책 이야기를 하자니 글이 많이 길어질 것 같다. 작가가 자신의 조카에게 남긴 글이 인상적이다. 조카는 사랑을 받는 축복받은 아가라고. 세상엔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고.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밥을 굶고, 장애를 가진 아이도 많다고. 사랑받고 크는 조카가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 글을 읽으며 며칠 전 보았던 영화 <1917>이 떠올랐다. 전쟁으로 소리 없이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또 한편으론 아무런 고통없이 행복으로만 가득할지도 모를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며 과연 신이라는 게 있을까 싶었다. 지구 상에 수십억의 사람이 살아가지만 각자의 행복과 고통, 삶의 질과 길이가 다르다는 것을 보며 나는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신민경 작가는 작년 2월 의사로부터 말기암 판정을 받았단다. 그사이 책이 나오고 1년이 지난 시간. 혹시 그의 병세가 좋아지진 않았을까.


최근 브런치에 올라온 글에 그의 근황이 적혔다. 3개월 간의 치료 과정에서 진전이 없었다고. 작가는 의사에게 더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전했으며, 의사는 "그저 민경 씨가 아까워서 그래요." 라고 말했다고.


책의 프롤로그에는 사람의 삶을 24시간으로 친다면 자신의 삶은 오전 9시에 끝난다고 적혔다. 신민경 작가의 책과 브런치의 글을 보며 생면부지의 나는 그의 의사와 같은 마음이 들었다. 작가님, 글 정말 잘 쓰시는데? 오전 9시로 떠나시기엔 너무 아까우신데?


이 책의 편집자는 작가에게 40여개 나라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글로 써보라고 했단다. 가끔 뉴스에서 우리는 말기암 환자가 자연치유 되었다는 기사를 접한다. 신민경 작가에게 그런 일이 생겨서. 먼훗날 죽음을 써두었던 데뷔작을 읽고서는 아아,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웃으며 회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전 9시로 떠나기엔 그의 글은 많이 좋고, 그가 살아온 40여개 나라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책을 기획한 책구름 출판사와 몸이 아픈 작가를 독려하며 글을 쓰게끔 만들었을 책구름 편집장님에게 감사하다.


신민경 작가의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고, 조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