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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에 푹 빠졌다. 시에 입문하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찰나 정지돈의 <영화와 시>에서 시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고, 모든 것이 그러하듯 시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에 시론까지는 아니지만 시를 읽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 먼저 읽고 있다. 그중에서도 '공대생'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의 필력은 아주 우수했다. 하지만 너무 우수해서 별로인 면도 있었다. 너무 인간미 없는 강의 톤의(강의에서 비롯된 책이라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완벽한 문장들이라 읽는 동안 작가가 궁금하거나, 피식하는 구간이 없었다. 보통 내가 정말 재미있게 본 책들은 그 책을 쓴 작가가 궁금해지고, 작가의 필모그라피를 쭉 훑게 되는데 이 책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도 시를 입문하기에는 괜찮은 책인 것 같다. 대체로 옛날(내 기준) 시들을 다뤄서 2010년대 이후의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시에는 적용하기에 힘든 내용들이었지만 시에 대한 기본적인 감수성을 일깨워주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초장부터 나온 처녀작이라는 단어부터 여성편력, 가부장제 속 아버지에 대한 내용에서 결국 책장을 덮게 됐다. 2/3까지는 문장들이 좋아 읽었지만 솔직히 이쯤 읽으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은 것 같아서 미련없이 덮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책보단 대학 강의로 접한다면 최고의 강의 중 하나가 되었을 것 같다. 1학년 1학기부터 미투 운동 때문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던 교수를 보고 난 이후 대학 수업에 대한 기대가 바닥을 찍었던 게 첫 번째 이유익 여성 편력 정도의 발언은 충분히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과 가르치는 기술을 갖춘 분이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