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으로 책을 읽는다. 

무슨 말인지 알거 같기도 하다. 


물론 이 글을 쓰고있는 작자는 도피라는 감각에 둔하다. 

둔한건지 겁대가리가 없다. 


이 작자는 주변의 사람을 만날때 그 사람을 하나의 책처럼 본다. 

물론 표지만 보는경우도 있다. 


표지만 보여주고 싶어하는 서적도 많다. 

시집도 있고 소설도 있고 비문학도 있다. 

서문이 전부인 책도 있다.


(시간이 없어서, 연결이 안되지만 일단 이야기를 더 해보자.)


도피적으로 독서를 한다는 이의 

긍정적인 면은, 그래도 읽으려 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부딪치는 자는
대개 읽으려 하지 않고, 가두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독서를 한다면 역시 가두려 하는 목적이 보인다. 

글자의 저주랄까. 

반대 성향에서도 이런 목적이 보인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 대화가 힘들어진다. 

도피해서 대화가 없던 가두려해서 대화가 없던 결과의 차이는 없다. 

단지 양식에 차이가 있을뿐이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거나 상상력이 멈출때 대화는 사라진다.


사실 대부분 그렇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난다면 반드시 스승으로 삼아라. 

과도한 상상력과 과도한 단정지음의 중간에서 

상상이 넘치는 대화를 한다는게 존재아닐까? 


시시콜콜한 이야기이든 빵터지는 개그든
그 상황에 몰입한다면 그걸로 족하지 아니한가?


소유가 목적이라면, 다른 맛집을 들러 보시라.

잘하는 가게를 필자는 못찾았다.

혹시라도 안다면 주소 좀 남겨주고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