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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굉장히 뜻깊은 책이다. 왜냐하면 군대에서 데미안 독후감으로 휴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개꿀

이건 2번쯤 읽었는데 최근에 깊게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1.처음 읽었을때
이때는 고3이었다. 사실 읽었을때 나이는 내가 느낀것과 상관이 없다. 더 중요했던건 나의 사유가 인류의 철학을 따라잡은 정도가 더 중요했다. 그때의 나는 대충 계몽주의 정도였다. 아직 모더니즘이 오진 안았다.


그때 집중했던건 하나였다. 아주 유명한 그 문장.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이게 너무 멋지고 인상적이어서 한참이나 생각했다. 아빠도 읽었다는데 아빠는 3번째 문장까지밖에 알지못하셨다. 난 마지막 두문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세계를 부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사람은 신을 향해 나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아프락사스가 뭔데 씹덕새끼야. 마치 니체가 말하는 초인처럼. 세계를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2. 다시 읽었을때
군대에서 읽었다. 고졸에 입대해서 거의 1년 반만에 읽었다.
이때는 쪼끔 우울증이었다. 힘든 보직일때 아주 충실한 생활을 했지만 편한보직으로 바뀌고 무기력증이 왔다. 그리고 스승으로써의 데미안을 봤다.

휴가 받은 독후감 내용대로는 데미안은 평범한 사람 싱클레어에 게 찾아온 특별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데미안도 또다를 싱클레어다.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사람일 수 있겠다, 저 사람도 누군가에겐 그런 사람일 수 있겠구나.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문장이 좀 쪽팔렸는데 맞후임이 놀렸다.



3. 최근에 한 생각
이땐 과도기였다. 모더니스트 찐따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 우울증환자가 되가고 있었다. 나는 데미안이 모더니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먼가 느낌이 그랬다. 지금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방향의 포스트 모더니즘.

데미안에게 재해석된 카인의 이야기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이야기. 싱클레어의 속에 살아가는 데미안. 시작부터 끝까지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모든 것을 철저히 부순다. 아니, 싱클레어가 스스로를  부수게 한다. 선악의 저편을 항해.

난 포스터 모더니즘에 대해 불만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공들여 지어져 있는 탑을 전부, 아주 철저하게 부수고 그 속에서 부숴지지 않는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러니 모스트모더니즘은 철저히 개인화된 철학이라는 사상이어야한다. 그것이 진정한 초인이 아닐지.

싱클레어는 그런 과정을 밟는다. 가정과 종교적인 가치가 흔들리고, 먼 학교에 가서 방황하고 데미안과 데미안 엄마를 우상화하기도 하고 결국엔 그 데미안마져도 떨쳐는어 초인에 다가간다.

사회에서 초인같은 행동 해도 ㅂㅅ 취급 받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회의 구조를 부수려는 포스트모더니스트 페미, 빨갱이들은 쫌 짜져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왜? 왜? 왜라는 질문을 계속하면 진정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가치가 나올 것이다. 그것이 아프락사스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그저 믿을 수 밖에 없는 신, 교리가 된다. 포스트 모던즘의 방향은 이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싱클레어가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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