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avaggio, [The Sacrifice of Isaac], 1603
오늘의 독회 본문 : 창세기 11장 29절 ~ 25장 11절
등장인물 소개 (11장 29절 ~ 32절)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 (12장 1절 ~ 9절)
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람 (12장 10절 ~ 20절)
롯과 아브람의 일화들 (13장 ~ 14장 16절)
대제사장 멜기세덱(멕키체덱) (14장 17절 ~ 24절)
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 (15장)
아브람이 하갈(하가르)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음 (16장)
할례를 받음 (17장)
소돔과 고모라 (18장 ~ 19장)
그랄(그라르) 왕 아비멜렉 (20장 1절 ~ 20장 18절, 21장 22절~34절)
이삭(이사악)의 출생과 내쫓긴 이스마엘 (21장 1절 ~ 21절)
이삭의 번제 (22장)
사라의 죽음 (23장 1절 ~ 20절)
이삭의 혼인 (24장)
아브라함의 죽음 (25장 1절 ~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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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독회 일정 : 2021년 5월 9일 일요일 19시
다음 주 독회 본문 : 창세기 25장 12절 ~ 38장 30절
다음 주 같이 읽으면 좋은 본문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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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한걸까? 물론 진짜 이삭을 번제로 받을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그 조건을 제시한 것 자체가 하느님이 당대의 인신공양과 밀접한 우상과 다름없어지는게 아닌가?
일부 신학자들은 오히려 그게 당시 횡행했던 인신공양에 대한 유대교적 비판이라고 생각하기도 함. 결과적으로는 인신공양을 하지 말라고했으니까.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엿장수 마음인듯
멜기세덱이 상당히 신비한 포지션에 있는 거 같은데, 정확히 뭐 하는 사람임? 신약에서도 언급됐던 것 같고...
성경에서 딱 세 번 등장함. 창세기 이 부분, 시편 110편, 히브리서 5장. 창세기에서는 : '살렘(예루살렘)의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 시편에서는 다윗한테 '너는 멜키체덱의 순서를 잇는 대제사장이다', 히브리서에는 '예수는 멜키체덱의 순서를 잇는 대제사장'이라고 등장함. 그 외의 묘사나 이런 얘기는 전무하다시피함. (물론 구전 전승이 좀 있긴 하지만 신뢰도를 생각해보면...) 꽤나 신비한 인물인게 맞는게, 아브라함이면 아직 유대교라고 할만한것도 없을 때인데 이미 하나님께 제사지내는 사람이 있었음. 또 제사장은 레위 지파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데, 레위는 아브라함의 증손자임. 즉, 아직 유대교식 제사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있었음. 분명 뭔가 묘한 사람이기는 함.
혹자는 이걸 보고 1)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이미 한 번 왔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2)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떤 예표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3) 레위 계통의 제사장 외에도 다른 전승이 따로 내려오고 있었다는 증거이다고 주장하기도 함. (왜냐하면 멜키체덱은 포도주와 떡을 줬는데 이는 다른 중동 문화권에서는 찾을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 뭔가 다른 종교와 차이점이 분명히 있음) 좀 신학적으로 보자면, 예수 그리스도와 많이 연결되기는 함. 구약의 예언에 의하면 메시아(왕)는 다윗의 후손(유다 지파)이라고 하고, 제사장은 레위 지파만 할 수 있었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왕 되신 메시아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일 수가 있는 이유가 여기 있음. 전통적으로 제사장은 레위지파(루카복음의 즈카리야 같은) 사람만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보면 레위지파와 별개로 '멜키체덱 - 다윗 -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별개의 순서(한국어 원문은 '반차'라는 표현을 씀)가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일 수가 있던 것임. 또 아브라함이 자기가 얻은 물건의 10분의 1을 멜키체덱에게 줬다는 부분이 십일조의 시작이라고 보기도 함. (창세기 28장이랑 같이)
요약 : 신비한 포지션의 인물 맞음, 살렘이라는 곳의 왕이면서 제사장이었는데,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이 사람한테 바치자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내려준 사람임.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봄. 이 이상으로는 성경에 언급된 게 없어서 뭐하는 사람인지 다들 모름. (성경 외적인 부분으로 구전전승도 있고 몰몬교에서도 더 나오기는 하는데 큰 의미는 없을 듯)
오우 설명 들으니까 진짜 신기하네. 예수의 표상으로까지 볼 수 있구나. 왕과 제사장의 겸직을 가능케 한 계보도 흥미롭고... ㄱㅅㄱㅅ
아브라함이 이끌고 다닌 무리 규모가 얼마만큼일까 생각해봄. 롯을 구하러 갈 때 태어나서 훈련시킨 종만 318명이라는데, 여기에 아이나 노인 등을 포함하면 더 많을거임. 아브라함이 사라더러 자기 누이라고 했다가 그 나라 사람들이 사라를 데려가고, 꿈에 하느님이 나타나서 되돌아오는 장면만 두 번인데, 300이 넘는 무리를 데리고서도 왜 그랬을까 생각이 듬. 사실 그보다 왜 사라를 데려간건지 이해가 안됨. 이집트 때 사라는 60 넘은 나이였고 그랄에서는 90 넘은 나이였는데. 아내가 탐나서 남편을 죽이기에는 너무 많은 나인것 같은데.
얼마나 이뻤으면..
소돔을 멸망시키려는 하느님을 아브라함이 설득하는 장면은 읽을때마다 감탄하는데, 다시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아브라함을 아낀다는걸 보여주는 것같음. 당초 의인 50명에서 10명으로 반복해서 줄였는데도 노여워하지 않으심 쫓겨난 이스마엘을 하느님이 보살펴주는 장면에서 카인과, 더 뒤에 돌아온 탕자 얘기가 떠올랐음. 쫓겨났더라도 하느님이 지켜주실 것이며, 신약에서는 쫓겨난 이들까지 모두 포용하겠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한게 아닐까. 아랍인들이 이스마엘의 자손이라고 불리는걸 생각하면 재밌는 부분임.
독회하니까 좋다.. 다 아는 얘기인데 이런 댓글 보면 진짜 색다른 느낌임... 이방인까지 포용하려는 시도?로 해석해볼 수도 있을 듯. 혁오 노래 '멋진 헛간'도 생각나네
'믿음', '의로움', '언약', 그리고 '공정하신 하나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부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고, 의로운 사람의 대표주자인데 막상 꼼꼼히 읽어보면 현대인의 시선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꽤 보인다. 공부 열심히 해둘걸 그랬다...
읽기는 읽었는데 뭔가 토론 거리 남길말이 없네 그냥 재미있는 소설 일부분 읽은거 같음 아브라함의 일대기 하느님한테 자기 자식까지 바치려는 건 좀 충격이었음 끄읏
근데 점점 참여자 줄어드는거 보니 선장입장에서 힘 많이 빠질듯 힘내여
감사합니다. 솔직히 힘 많이 빠지기는 하는데 할 수 있는 때까지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