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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의 저자 단테는 이슬람의 시초 마호메트를 사기지옥(8환 9낭)에 넣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종교의 부패를 묵인하지 못하는 성격을 지녔다.

생전에 하느님을 모시는 것보다 황금과 은을 모으는 것에 열중한 두 교황, 니콜라오 3세와 보나파시오 8세를 사기지옥의 3번째에 넣어 좁은 구멍에 거꾸로 처박힌 채 발과 다리가 불타오른다는 묘사만 봐도 단테가 부패한 종교계를 얼마나 증오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후 지옥편 27곡을 보면 온 몸이 불타오르는 벌을 받고 있는 구이도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인물은 다름 아닌 보나파시오 8세의 심복이다.

장군이자 사제였던 구이도는 자신의 뛰어난 지략을 보나파시오의 사악한 계략을 돕는 데 활용했고, 그 중에는 같은 그리스도인들과 싸우는 것도 있었다. 결국 구이도는 죄가 너무 무거워 지옥에 떨어진다.

신곡의 지옥은 죄질이 무거울수록 더 깊이 내려가고, 내려갈수록 더 고통스러운 벌을 받는다. 즉, 단테는 머리인 교황보다, 그의 손인 구이도가 더 나쁘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악행을 저지르는 누군가를 보고도 그것을 모른척하고, 심지어는 그를 뒤따르기까지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맨 앞에 서지 않았으니 죄질이 덜할 것으로 생각하거나, 죄가 없다 생각하기도 한다.

누가 먼저 시작했든, 악의 길을 따르면 결국 악에 물든다. 그리고 맨 처음 악을 저지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살펴보다 동참한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이 나쁜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따랐기에 마찬가지로 나쁘다.
  
게다가 사람들이 악에 동참함으로써 악의 세력은 확장된다. 한 사람의 악행으로 끝날 것이 합류한 다른 이들로 인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해서 나도 휩쓸렸다, 나쁜 명령이 내려져 거기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연약한 하나가 이러한 변명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힘들지만, 적어도 그런 변명을 할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덤으로, 이 글을 쓰며 신곡 천국편 4곡에서 베아트리체는 끝까지 착함을 지키지 못한 이들이 왜 가장 낮은 천국의 자리를 받았는지 설명하는 부분도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