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여기에 스포일러라 할 게 뭐가 있나 싶지만 일단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념토록 합시다.
-
마음,
연약한 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괴로워하는 마음을,
알기 위해 다가가는 마음을,
한줄요약
시류에 쓸려간 연약한 마음에 대하여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다. 본래 순서라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고 나서 바로 마음을 읽고 리뷰를 남겼어야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밀리고 밀린 끝에 이제야 다 읽고 리뷰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지금 읽은 게 행운이다. 설국 읽다 이거 읽었으면 심심함에 괴로워했을 게 분명하고, 지금은 다행히 이전에 읽은 게 82년생 김지영이라 심심함따위 얼마든지 상쇄할 괴로운 기억이 있었다.
분명 재밌게 읽었고, 다 읽은 뒤에는 무언가 생각해보게 되는 여운도 분명 있지만, 그렇다고 감정의 격정적인 동요가 생긴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그 동요를 멎게 하는 쪽에 가깝다. 280페이지 내내 잔잔하고, 차분하고, 관조적이며, 또 추상적이다.
그래, 이것부터 얘기를 해야겠다. 이 소설은 상당 부분이 추상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추상은 관념에 대해 논하고 형이상학적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 대해 묘사를 뭉뚱그려서 구체성을 상실했다는 얘기다. 오히려 고의적으로 비워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소설에서 '구체성'이란 상당히 찾아보기 힘들다.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명과 풍경에 대한 묘사를 제외하고 메이지 천황과 노기 대장의 자살 외에 어떤 구체적인 언급이나 묘사가 없었다. 주인공의 전공은 무엇인가, 다니는 대학은 어디인가, 선생님의 사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주인공이 쓴 논문은 또 무엇인가. 주인공, 선생님의 이름은 또 무엇이고 선생님 숙부의 사업은 또 무엇인가. 책을 묘사하지만 그 책의 제목과 저자는 물론이고 내용조차 하나도 적혀있지 않아 읽을 수 없는 느낌이다.
바꿔말하면 이정도로 뭣 하나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 없이 280쪽수에 달하는 연재를 해내고 서사를 이끌어냈다는 건 소세키의 능력을 가히 짐작해볼 대목이다. 나는 아무래도 이런 수준은 소세키가 천재라서 가능하거나, 혹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것들을 상당수 추상화시켜 소설로 녹여냈기에 가능한 거라고 본다. 즉, 이정도로 추상적인 소설이 나름대로의 서사와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선 작가의 실제 경험이 밑바탕에 원동력으로 깔려있어야 된다는 것이다.(작가 연보나 뒤에 딸린 해설을 보면 소세키가 의도했든 안 했든 그럴 듯한 이야기가 된다.)
그럼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에 어떤 담화가 오가느냐, 어떤 주제가 녹아있느냐, 그것이 정녕 가능하긴 한 건가, 싶을 수 있다. 놀랍게도 가능하다. 도입부에서 밝혔듯, 그리고 제목이 그렇듯, 이 소설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명사로서 작용하는 고체로서의 성질을 지닌 마음이 아니라, 동요하고, 움직이고, 상처받고, 비틀리고, 몸부림치는 동적 성질을 지닌 마음.
내용의 3부로 구성돼 있고, 1부는 '나'가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친해지게 되면서 선생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것이고, 그 뒤의 2부는 고향에 돌아간 '나'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고 선생님의 유서를 받은 것이며, 나머지 3부는 그 유서의 내용이다. 즉, 이 소설에서 다루는 마음은 선생님의 마음이다.
1부까지 읽은 독자는 선생님의 마음에 무성한 추측을 하기 마련인데, 특히 일문학의 노빠꾸 선정성을 일찍이 접했거나, 혹은 스릴러나 호러 소설을 통해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다룬 소설을 접한 독자라면 당연하게도 무언가 충격적인 사건들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런 식의 시도로는 진실에 근접할 수도 없다.
3부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지지만, 그 진실은 턱없이 맥 빠지는 것에 가깝다. 아니, 어쩌면 실제로 그럴 법하다고도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앞선 문단처럼 문학이기에 가능한 상상과 기대를 했던 독자일수록 3부의 진실 앞에 허망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연약한 인간의 연약한 마음이다. 애당초 1부에서 큰 기대를 했어선 안 될 것일지도 모른다.
진실에 대한 실망이 지나치게 크다면 책을 덮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게 만든 건 결국 소세키의 필력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세키의 문장은 외유내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심한 서사에 어울리는 심심한 문장(...)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가끔씩 아무렇지도 않게 깜짝 놀랄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다음은 그 인용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마음 속으로 자네를 존경했네. 자네가 망설임 없이 나의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뭔가를 얻으려는 결심을 보였기 때문이네. 나의 심장을 쪼개 따뜻하게 흐르는 피를 빨아 마시려고 했기 때문이네. 그때 나는 아직 살아 있었네. 죽는 것이 싫었네. 그래서 훗날을 기약하고 자네의 요구를 거절해 버렸던 걸세. 나는 지금 스스로 내 심장을 쪼개 그 피를 자네의 얼굴에 쏟아부으려 하네. 내 심장의 고동이 멈추었을 때, 자네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든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네.
이 인용 외에도 소세키의 문장은 때때로, 그것도 갑작스럽게 충격을 준다. 그럼에도 그건 결코 어색하거나 멋을 부린 게 아니다. 이 소설이 형성한 극히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 가운데, 마치 고요한 호수에 돌 하나 던진 것처럼 파장이 독자에게 와닿는다. 심심한 서사, 부드러운 문장, 언제든지 깊게 내딛는 힘을 가진 소세키의 필력은 외유내강 한 마디로 정리된다.
마음에 대한 해설 중에는 시대를 반영한 해석도 존재한다. 다만 내가 일본 역사에 정통한 게 아니므로 그 부분은 그렇겠거니 넘겼지만, 소설 내에서도 분명히 읽은 건 시대의 변화 가운데 선생님의 마음이 동요했다는 것이다. 내가 한줄요약에 '시류에 쓸려간'이라 표현을 붙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시류를 명분 삼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저 명분만 필요했을 뿐이다. 연약한 마음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명분.(아이러니하게도 그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자살이었다.)
누군가는 선생님에 대해 연약함을 넘어서서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고작 그걸 가지고 이렇게 된다고? 하지만 나는 선생님과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얼마든지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너무 마음을 쓴 것이다. 마음을 쓴 것이다. 쓰디쓴 추억에 마음을 썼기에 그 괴로움에 잠식된 것이다. 우리라고 다른가?
흔히 말하는 쿨찐처럼 "난 안 그럼ㅋㅋ 훌훌 털고 일어나야지ㄹㅇㅋㅋ"가 정녕 가능하긴 한 일일까? 선생님의 경우 의심과 죄책감이 주된 얽매임이었지만, 그것 말고도 분노나 증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털고 벗어날 수 있는 일에 지나치게 분노하고 증오하진 않는지? 그리고 그 마음을 얼마나 진실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지? 진실에 쓸 수 있는 마음은 생각보다 적다. 우리는 생각만큼 솔직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1부가 처음이자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마음을 쓴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쓴다. 그 마음에 동요해 선생님은 마침내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진실에 마음을 쓰기 위해선 자신의 마음으로 충분할까? 그게 가능한 자라면 그는 이미 충분히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를 위해 마음 쓸 수 있는 타인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솔직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연약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다. 선생님이 몇 번이고 자신을 지적할 타인이 존재했다면 비극을 일으킬 선택은 하지 않았을 듯이.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필요로 한다. 솔직한 것조차 타인의 마음을 요구하는 우리는 정말이지 비참할 정도로 연약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 마음을 쓸 수 있다. 선생님은 '나'의 마음을 써서 솔직해진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솔직한 마음을 '나'에게 쓴 것이다. 모든 마음간의 소통은 상호작용이다. 일방적이지 않다. 우리는 그 사실만으로 우리의 마음을 고독하게 두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때론 그것이 소통 오류를 일으키고, 서로를 상처 입히고, 두려워하고, 의심하게 될지라도...... 분명 어느 마음과는 충분히 솔직해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리라.
당신의 연약한 마음이 열리길 바라며.
마음 등급표
필력: A
독서 과정에서 느끼는 총체적인 평가, 곧 작품 자체에 대한 인상. 나머지 6개의 기준을 모두 합친 또 하나의 전체적인 기준.
가독성: A+
문장을 읽을 때 글이 얼마나 잘 읽히고 술술 넘어가느냐를 기준으로 삼음. 본인 어휘력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으니 주의.
인물: A
주인공을 비롯한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개성, 매력, 혹은 대사 센스, 유머까지, 곧 작중 인물을 얼마나 잘 살려내고 잘 써내고 잘 활용하느냐에 대한 기준.
설정: B+
장르별로 기준의 정의가 다르게 작용하겠지만, 공통적으로는 배경되는 시공간과 전후상황 등의 설정들이 가지는 매력과 활용도가 기준.
분위기: A
말 그대로 작품에 깔리는 분위기. 전체적인 분위기, 각 파트별 분위기, 분위기 전환 등의 '장면 인상' 위주의 기준.
구성: B
책 자체의 구성(목차), 문단 구성, 사건 구성, 사건의 흐름, 배치, 플롯으로 퉁칠 수 있는 부분까지. 소설의 골격에 대한 기준.
문장: A+
필력이 소설이라는 군집적이고 총체적인 문장의 인상이라면, 문장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부분을 가리키며, 흔히 부르는 묘사도 여기에 포함.
추천!
ㄱㅅㄱㅅ
감동...해버렷단 말인가...?
마음을 감명깊게 읽은 사람으로서 추천한다
꺼맙다ㅎㅎ
마음 볼 때마다 생각하는거지만 이 책 제목이 너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듬
맞아 진짜 딱 마음 그 자체더라
ㄱㅅㄱㅅ
앤디 위어 신작 나왔던데 선발대 좀
미안하다 돈이 없다 나도 사고 싶다
최근 독갤에서 본 리뷰중에 제일 맘에 든다 글 진짜 잘 쓴다 고맙다 ㅜ
땡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