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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우선 리뷰를 시작하기전에 할말이 있다 난 이 책을 병렬독서 했으며 그렇기에 초중반부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난다 그러니 그점을 양해바란다

일단 독후감 공식대로 이책을 왜 읽게 되었는지 부터 밝혀야겠지 대충 한 1년전 난 유나바머(T.카진스키)의 책을 읽고 상당한 수준의 지적 충격을 받았다 현 기술 시대의 진보가 우리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선언문은 기술적 진보를 회의하고 있던 나에게 딱 맞는 텍스트였다. 그러나 그 이후 내용은 잊혀졌고 나는 카진스키의 선언을 피상적으로 일부분만 기억하며 천천히 그 선언문의 충격은 기억의 늪속에 빠져들어 내 뇌 온갖 곳을 헤엄치며 나에게 이 책을 선택할 기회을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카진스키의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란걸 알고 그때 느낀 지적 충격을 회고하며 막대기만 남은 사탕을 빨듯 천천히 흔적만 남은 그것을 회고하며 큰 기대를 품으며 이책을 샀다

그러나 불행히도 카진스키의 간략하고 이해하기 쉬운 선언문과 철학책은 수준이 달랐다. 나는 이책을 거의 눈으로만 읽었으며 내뇌가 이해하기전에 페이지를 넘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페이지를 넘기며 내가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를 확인하는것은 다들 피하기 힘든 유혹 아닌가 나는 불행히도 성질이 급해 천천히 정독하거나 책을 다시 읽는건 못 참아 한다 불행 중 다행히도 나는 이 책 후반부에 포스트잇과 메모 그리고 밑줄까지 그으며 이책을 이해하려했고 다행히 후반부는 그럭저럭 뇌에 들어왔다 늦은 선택이였고 좀 더 빨리 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은것들을 재구성해 내가 이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말하려한다

카진스키에 따르면 기술의 특성은 체제의 공고화와 인간 본성의 억압에 있다고한다 나는 이점에 크게 동의했기에 그의 논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듯하다. 아무튼 이 두점을 설명하자면 -왜 자끄 엘륄이 아니라 카진스키를 설명하는지 의문이 들 수 도 있지만 카진스키 얘기로 시작한김에 그의 사상을 소개하는게 예의 아니겠는가?- 기술은 인간을 상품을 통해 체제에 귀속시키며 동시에 기술 없는 삶을 꿈꿀수 없게한다. 이 점은 다른이들에 의해 충분히 설명되었다 생각하기에 이만하고 인간본성이 기술 체제에 알맞지 않다는것도 그리 특이한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독린이였고 이정도 주장으로도 나에게 지적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뭐 아무튼 카진스키의 사상의 중심은 곧 체제에 심한 충격이 다가오며 그 이후 혁명가들이 나타나 사회를 원시주의로 돌려야한다 대충 이렇게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기회주의적이지만 모든 혁명은 타이밍이니 뭐 그렇다치고- 솔직히 말하자면 카진스키의 주장은 지금 내게 큰 흥미를 주지 못하고 또한 기억도 잘 않난다 그러니 여기서 대충 이런 주장을 했던것으로 마무리하자

자 이제 자크 엘륄의 사상으로 들어가야한다. 아까 말했듯 내가 대충이나마 기억하는건 후반부고 후반부 얘기를 주로 할것이다. 우선 기술의 특성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기술의 특성은 문제해결이 아닌 문제발견에 있다 뭔 소리냐고? 지금 현재의 문제점들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게 아닌 기술이 발견하였기에 존재한다 이말이다. 이점은 논란이 있겠지만 좀 더 얘기를 하자면 기술의 발전을 통해 세계화를 꿈꿀 수 있게 됐지만 역설적으로 기술로인한 전지구적 계급이 발생한것이다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쓸 수 있는자는 상위계급으로 반대는 하위 계급으로 이렇게 분할된 카스트가 현지구에 존재하며 그것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기원했으며 그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문제이다 이점을 예로 들어 내말이 이해가 가길 바란다.
몇가지 특성을 더 들어보자 모든 기술은 무작위성을 지닌다. 왜냐? 발견된 모든 요소는 그 이후 사용되기에 어떤 요소가 사용될지 예측은 불가능하다. 또한 기술은 불가능에 도전한다 마치 역경을 해치고 나가는 영웅처럼 과학자들의 발견 스토리는 우리에게 영감을준다. 그러나 독잘알이라면 잘 알듯 패러다임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그리고 패러다임은 그 영웅들에게 구속구가 된다 영웅들은 서로의 구속구이자 동료이다 이 역설적인 상황이 자끄 엘륄이 자유로운 연구란 존재치 않는다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흥미롭지만 중요하진 않다 다만 조금 말해둘건 패러다임은 기존 과학의 절단과 방향제시로 나아간단것이다.

이제 기술이란 자유의 구속구의 속살을 들춰보자 기술은 우리에게 기술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기술에 의해 태어난 시험관 아이이자 기술이란 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생각해보자 단 한순간이라도 전기가 없다고, 그런 삶을 계속 산다는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은 가능하겠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이 점에서 자끄 엘륄이 역설하는 기술의 본질이 보이는가? 기술은 우리에게 구속구가 되어 더 이상 기술 없는 삶을 거부하게 했으며 우리의 주체성을 앗아간것이다.
"기술을 뒤엎을수도, 방식과 생산물과 기계장치로 된 이러한 결합체를 완전히 허물어뜨릴수도 없다"

자 이제 기술이 ㅈ같단걸 대충 이해했다치자 이제 중요한건 어느 고귀한 인문학자의 목소릴 듣고 이 기술을 갑자기 고쳐서 단점을 제거 할 수 있는가? 물론 상식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문단의 주제인 기술은 목적이 아닌 유용성으로 평해진다를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어느 고귀한 목적을 지니고 개발하기엔 기술은 너무 무작위하며 통제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기술을 평하는 방법은 목적이 아니라 유용성인것이다. -유용성을 목적으로 해버리면 베스트고- 아무튼 기술은 우아한척하는 백조의 얼굴과 같다 우린 새의 얼굴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듯 기술에게 고귀한 목적은 그저 겉치레다 본질은 얼마나 유용한가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기술은 얼마나 가까운가 모든 기술은 유용성으로 평해지고 그 유용성의 증명은 대량생산으로 흐른다. 그리고 대량소비라는 기술사회의 가장 독특한 특징으로 유용성을 증명한다.거기에 기술은 증식한다 뭔소리냐고? 자 생각해보자 단지 토스터기 하나에 얼마나 많은 기술이 들어가는지 그 기술을 발전 시키기 위해선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며 그 새로운 기술을 위해선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기술의 발전하는 수준은 이 기술들이 얼마나 우리 삶에 가까운가에 달렸다. 생활은 대량소비의 가장 적합한 표현이니
그리고 삶에 가까울수록 발견이 쉽기도하고

그럼 이제 반기술 사회를 생각해보자. 음 아마 1984같은 전체주의 사회를 생각하기가 쉬울것이다. 그러나 우린 이미 알듯 이 사회는 기술의 단점을 없앤것이 아니라 단지 기술을 조직으로 대체할뿐이다. 그럼 기술의 단점을 해결할 방법은 뭘까 다원주의? 솔직히 말하자면 기술이 문화의 기준인건 잘 알지 않나 국가주의적 억압? 기술 자체가 행정을 팽창시키고 국가의 존속을 위해선 기술의 발전은 준 필수적인것을 생각해보자. 사회주의? 이제 문제는 사유재산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발전된 국가인지 낙후된 국가인지가 더욱더 중요해졌다. 정치적 결단주의? 사실상 기술을 따라가는것이 정치 아니던가? 기술 없는 결단이라 무의미할뿐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기술의 발전은 점점 더 큰 자본금을 요구하며(이점은 기술 사회의 복잡성을 생각해보자) 그점이 기술사회의 발전의 저해의 키워드가 되거나 더욱더 공룡같은 기업들이 되거나.

뭐 기술 사회의 인간상은 자신들이 무엇에 지배 받는지 모르는 우둔한 인간상이겠지만 또한 그는 자신의 삶의 기초인 기술에 대해 아무런 지적을 하지 못할것이다 기술은 새로운 시대의 신이되었다. 광고, 오락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망각시켰으며 미래사회에 대한 희망찬 메세지는 기술이 우리 자유를 앗아간다는것을 망각시켰다. 말 그대로 "욕구는 기술속에서 답을 얻는다"이다. 마찬가지로 선택은 자유가 아님에도 기술 사회가 제공 하는 선택이 마치 자유라고 착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읽은 감상이며 긴글 봐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