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이게 유행에 따른 변화어라고 주장하는 서적이라도 있을까?
난 역지사지는 주체를 유동적으로 바꿔가며 시점을 자유로이 이동하는 것이라고 보고.
메타인지와 동의어라고 생각함.
객관화는 왕이나 일반의지 같은 특정 평균 시점으로 옮기는거라고 봐.
그래서 역지사지가 자기객관화를 포함하고 더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함.
일상에서 넌 자기객관화가 부족하다는 소린
보통 정상에서 멀어져 있다는 소리를 뜻하지 않음 ??
자기객관화가 부족해서 꿈을 붙잡고 있다. 이 문장이 어색하진 않지
이런 면에서 전체주의적 색깔이 자기객관화에는 숨어있고.
역지사지는 전체주의보다 상대에게 더 초점을 잘 맞출 수 있다.
요약하면 역지사지는 내편 뿐만아니라 상대편도 포함할수 있는 말이고.
자기객관화는 같은 편내에서만 말이 통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봄.
이방인에겐 자기객관화는 감옥과도 같겠지.
카뮈가 자기객관화를 비꼬아서 쓴게 이방인 아닐까?
프랑스인들은 표준에 맞지 않은 사람들을 한대로 치워버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거 누가 비꼰 문장 있지 않나?
옛날 단어 재구성해 편집한 단어가 수두룩하다는거 알려주는
책있으면 추천좀. 포모 비판할 때 자주 등장할꺼 같은데.
난 역지사지는 주체를 유동적으로 바꿔가며 시점을 자유로이 이동하는 것이라고 보고.
메타인지와 동의어라고 생각함.
객관화는 왕이나 일반의지 같은 특정 평균 시점으로 옮기는거라고 봐.
그래서 역지사지가 자기객관화를 포함하고 더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함.
일상에서 넌 자기객관화가 부족하다는 소린
보통 정상에서 멀어져 있다는 소리를 뜻하지 않음 ??
자기객관화가 부족해서 꿈을 붙잡고 있다. 이 문장이 어색하진 않지
이런 면에서 전체주의적 색깔이 자기객관화에는 숨어있고.
역지사지는 전체주의보다 상대에게 더 초점을 잘 맞출 수 있다.
요약하면 역지사지는 내편 뿐만아니라 상대편도 포함할수 있는 말이고.
자기객관화는 같은 편내에서만 말이 통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봄.
이방인에겐 자기객관화는 감옥과도 같겠지.
카뮈가 자기객관화를 비꼬아서 쓴게 이방인 아닐까?
프랑스인들은 표준에 맞지 않은 사람들을 한대로 치워버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거 누가 비꼰 문장 있지 않나?
옛날 단어 재구성해 편집한 단어가 수두룩하다는거 알려주는
책있으면 추천좀. 포모 비판할 때 자주 등장할꺼 같은데.
메타인지가 상대방의 입자에서 보는 거야? 3자의 관점으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게 메타인지 아님?
그 3자가 사회의 평균이면 전체주의를 이용하고 있는거겠지. 그냥 어떤 문장에서 평균에서 어긋나 있다라는 뜻을 말하고자한다면 메타인지던 자기객관화던 그 단어는 전체주의를 강요한다고 할수 있지. 그런의미에서 역지사지보다 포괄적인 단어는 없다고봄. 넌 역지사지가 부족하다는 말이 넌 사회의 정상에서 떨어져 있어라는 뜻을 전달하진 않지.
고로 자기객관화는 전체주의적 색깔을 띤 단어로 퇴색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말.
역지사지는 자기 시점을 타인의 시점으로 옮기는 거고, 자기객관화는 3인칭 카메라 시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거 아닌가
그리고 메타인지는 사고의 과정 자체를 분석하는 거에 가깝다고 생각함
정의를 할필요도 없고. 사회에서 어긋난 사람들이 정규루트를 못 탔다고 자기객관화가 떨어진다고 여기저기 떠들어댄 순간. 역지사지에서 왓던 자기객관화라는 말은 더이상 그뜻을 상징하지 않고 전체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전락해 버렸다는 말이야. 내가 제아무리 착한사람을 정의를 잘해놔도. 소개팅에서 착한 사람이야라고 얘기되는건 무색무취를 상징함. 자기객관화도 그
렇고. 내가 여기서 좋게 사용하거나 정의해도 현실에서 자기 객관화는 전체주의를 숨긴 폭력적인 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말이지.
그 단어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는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음. 애초에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의 뜻이 원래 뜻이랑은 전혀 동떨어지게 되는 게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고. 그냥 신경 끄는 게 나음
그 논리를 들이밀면 역지사지는 하등 쓸모없는 게 된다는건데. 타인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든 말든 난 관심 없다는 건. 메타인지나 역지사지를 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지. 그럼 소통할 이유도 없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이말이 전해질지.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소통이 무슨의미가 있을까?
오 재미있네
와드
메타인지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과정을 관찰, 평가하고 조정하는 활동 혹은 능력이고, 여기서 타인의 마음이나 '지금이 아닌 것'을 상상하는 것은 메타인지의 일부 요소 혹은 방편이지 메타인지=역지사지가 아님. 물론 인간이 가진 '지금이 아닌 것'을 상상하는 능력은 전두엽과 큰 관련이 있고, 전두엽의 집행기능과 메타인지의 관련성이나 사회적 뇌 가설(인간의 뇌가 유독 발달한 것은 사회적 활동을 위해 마음읽기와 같은 고차적인 인지기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동이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읽기가 전두엽과 메타인지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많지만, 그게 무슨 자기객관화라고 쓰고 정상성을 강요한다는둥 역지사지가 진짜 객관화라는둥 말할 수 있는 건 아님.
그 설명방식은 사전적 권위를 떠 받들고 있음. 다른 입장에서 바라본다라는 서술어라 메타인지랑 어떻게 구분지을수 있지? 뇌과학 분야에서만 한정되어 사용되는 정의로 한정된다면 모를까. 그 용어가 사회로 나왔을때 그 단어는 살아있게됨. 정적인 용어는 학계에서나 쓸말이고. 단어의 동적 특성을 무시하고 언어를 쓴다 ? 갈등만 양산하겠다는 소리아닌가?
역지사지와 메타인지는 학계를 벗어난 말이 된이상 둘을 구분지어줄 보편성이 필요함. 근데 실제 용례에선 찾아 볼수 없음. 과거 17세기에 정념과 이해관계를 분리해서 보기도하고 나눠서 보기도 했지. 그말인 즉슨 사전이 단어를 정의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그단어를 정의한다는 소리지. 사회로 나오는 단어는 결국 용례가 사전에 앞선다.
용례의 보편적 차이를 설명할수 없다면 그 두단어는 동의어가 된다. 어떤 논쟁이 있을때 권력자에게 용례를 이야기 하지 않고 이 두 단어는 차이가 있으니 이쪽으로 결정하자라고 이야기한다면 결국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거지. 특정 형이상학 체계를 믿으라는 강요로 보이기 쉽상이고.
뭔 개소리야...
법정에서 쓰는 단어가 일상으로 왔을때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메타인지를 네가 놓치고 있으니까. 사고가 거기에 갇혀있는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