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대학교 오스틴(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의 사회 심리학 교수인 제임스 펜베이커(James W. Pennebaker)는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저널, 일기, 에세이 등)의 효과를 연구했습니다. 연구 결과 글쓰기는 면역기능이 강화되며, 혈압이 떨어지고, 우울감이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지며, 정신/육체적 건강의 전반적인 향상이 있고, 부부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이런 효과는 200개가 넘는 연구를 통해 검증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 간에 이런 글쓰기의 효과에 차이가 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더 이득을 보는가를 알기 위해 사람들이 쓴 글을 컴퓨터로 분석했습니다.
그의 발견 중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첫째 주된 대명사가 자주 바뀌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나"로 시작하는 문장이 많다가 "그녀는"으로 바뀌고 다시 "나"로 바뀌고 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 도중(혹은 여러 날에 걸쳐 글을 쓰면서) 시각이 다양하게 바뀔 수 있으면 그 글을 쓴 사람은 정신적/육체적 이득이 더 컸습니다. 또 하나는 인과관계 단어와 자기반성적 단어의 사용 증가입니다. 인과관계 단어란, "왜냐하면", "그 결과", "그이유는" 등을 말합니다. 자기반성적 단어란 "생각한다", "믿는다", "깨닫는다" 등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과관계 단어나 자기반성적 단어가 많냐가 아니라, 점점 증가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즉, 점차적으로 자기 경험에 대한 의미있는 이야기를 구축해 나가는 의미형성(sensemaking)의 경우에 거기에서 얻는 정신적/육체적 이득이 크다는 겁니다.
저는 이 연구결과가 통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자신의 경험에 대한 통찰 말입니다. 통찰을 얻으려면 결국 새로운 이야기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상황을 해석해야 합니다.(김창준, '통찰 : 평범에서 비범으로' 번역자 후기에서)
대표적인 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운운하면서 자기가 알아듣고 납득할 수 있게 설명 못하면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한 거라고 하는 경우. 자기 말에 공감 안해주면 공감능력 결여 사이코패스 운운하는 거랑 소름끼치도록 비슷하지 않음?
머 저런 생각이 다 맞다 해도 공감이나 메타인지를 고정된 능력치처럼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자체로 객관적인 진리가 된다 생각하는 것부터가 존나 나이브한 생각이긴 한데...
이거, 독서랑 어떤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가?
전문가는 뭐든지 다 알고 어떤 일이든 막힘없이 다 잘할 거라는 환상을 깨부수고 메타인지 능력은 철저히 맥락의존적이라는 진리를 깨우치게 해주는 '통찰 : 평범에서 비범으로' 읽어보쉴?
내가 메타인지랑 역지사지를 비교한 책추천 해달라고 아까 글는데. 일상어에 대한 메타인지가 부족해서 사전적 권위 들먹이고 있는글 같다. 법적 용어가 일상어로 등장했을때는 어떤 메타인지 / 역지사지를 활용해야하는지에 대한 답은 없고. 여전히 학문이라는 경전만 읽고 있는거지뭐. 그럼 결국 소통은 안되겠지.
학술용어 오용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걍 역지사지에 꽂혀서 개똥철학 펼치는 게 문제인 건데...
님이 하는 말은 결국 선택적 공감하지 말고 진짜 공감하자는 말 같은 건데,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이입하는 행위일 뿐이지 존재하지도 않는 인류나 객관적 진리에 대한 '진짜' 공감이라는 건 공허한 소리거든요...
내가 진짜 공감이라는걸 이야기 했나 ? 구분하기 어려운체로 전문용어를 일상어로 가져왔을때. 결국 각자가 원하는 대로 그 단어가 사용된다 그말이지. 그냥 있어 보이는 단어처럼 쓰는게 현실이다. 대중에게 정확히 전달하려는 목적이면 애매한 전문용어는 잘 안쓰지. 결국 당신은 내말을 알아들을수 있는 인텔리한 독자입니다라고 띄워 주는거지. 라 로슈푸코의 잠언처럼.
메타인지라는 전문 용어가 일상으로 나올때 어떻게 할껀지에 대한 메타인지도 부차적으로 따라 나와야 메타인지를 제대로 한게 아닐까 싶다. 무엇을 적확하게 설명하고 싶어서 역지사지 대신에 메타인지를 사용하는지. 분별하기 어렵다면 결국 유행적인 단어라는거지. 학계의 뜻을 벗어나는 단어로 변질되기 마련이지. 이념과 비슷하게.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공감한다는 게 꼭 좋은 일인가?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꼭 올바른 것인가? 하는 질문이면 몰라 진짜 공감 진짜 객관화 진짜 역지사지 진짜 메타인지 찾으면 그걸 더이상 그런 이름으로 부를 이유가 없어지자늠...
그래서 이미 노자가 명가명 비상명이라고 못 박았지. 똑같은 강물에 몸 못담그는데 인간은 그 물을 부여잡고 싶어함. 순자도 언어는 결국 말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개념어는 변할수 밖에 없는듯. 개념을 못밖아 놔도 결국 사람들에 의해 변질되고 결국 뜻을 추구해야겠지. 그래서 결국 변하는 개념만 추상어로 살아 남은거 같기도하다.
아이고 댓글 지랄났다 ㅋㅋㅋㅋㅋㅋ
예시로 든거는 서로 어느정도 그 분야에 지식이 있는 경우 통용될 수 있겠지.. 남 가르치는게 각잡고 하면 본인 공부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건 사실임. 물론 필연적으로 주관이 개입되는 경우는 해당 사항이 없겠지
설명은 사회적 동기를 자극하고 지식을 적극적으로 인출하게 되며 서로의 이해를 점검하고 상호학습도 가능한 좋은 학습법이지만, 그건 잘 아는 사람일수록 설명도 잘하냐는 것과는 무관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나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곧 이해의 척도가 되는 건 더더욱 아니거든요. 실제로 전문가들은 '지식의 저주'와 같은 이유로 오히려 설명을 못하는 경향이 있고.
이 새끼 존나 말 안 통하는 거 하루이틀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