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미상, 그리스 아토스 산에 있는 동방정교회 이콘, [The Ladder of Jacob], 16세기
Paul Gauguin, [Vision After the Sermon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1888
오늘의 독회 본문 : 창세기 25장 12절 ~ 38장 30절
이스마엘의 족보 (25장 12절 ~ 18절)
에서(에사우)와 야곱 (25장 19절 ~ 34절)
이삭(이사악)과 아비멜렉 (26장)
야곱이 에서(에사우)의 복을 빼앗아 도망치게 되다 (27장 ~ 28장)
야곱과 라반 (29장 ~ 32장 1절)
야곱이 에서(에사우)와 다시 만날 준비를 하다 (32장 2절 ~ 22절)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다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게 되다) (32장 23절 ~ 33절)
야곱이 에서(에사우)와 다시 만나다 (33장 1절 ~ 17절)
야곱이 스켐 땅에 가서 살다 (33장 18절 ~ 34장)
야곱이 베텔로 돌아가고 이삭이 죽다 (35장)
에서(에사우)의 족보 (36장)
요셉의 탄생과 꿈, 그리고 노예로 팔려가다 (37장)
유다와 다말(타마르) (38장)
정해진 본문을 읽고 드는 생각, 느낀 점과 궁금한 점 등, 다양하게 자신의 의견을 나누시면 됩니다.
지나친 비방이나 분란을 조장하는 댓글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 독회 일정 : 2021년 5월 16일 일요일 19시
다음 주 독회 본문 : 창세기 38장 31절 ~ 50장 26절
다음 주 같이 읽으면 좋은 본문 : 없음
그 외 독회와 관련된 기타 의견 있으면 댓글로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경 독회는 참여나 불참 모두 자유로운 독회입니다. ※
그리고 이번 주 드디어 창세기가 마무리됩니다. 이에 다다음 주부터 출애굽기/탈출기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저번처럼 투표로 진행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 출애굽기/탈출기를 읽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서순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의견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1. 말장난 같이 들리는 부분이 많아서 참 인상적이었음. 발뒤꿈치(야캅)을 잡고 태어난 야곱이 일생 동안 이삭, 에서, 라반도 속이며(야켑) 사는 거나, 에돔(붉은 이)이라고도 불렸던 에서가 붉은색 렌즈콩 죽을 먹게 되는 부분이나, 이삭(이쯔하크, '그가 웃다')이 아내를 애무하는(웃다와 어근이 같음) 것을 들키는 부분이라거나, 고대 히브리어를 할 줄 아는 화자가 봤다면 훨씬 더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됨. 현대인의 입장에서 잘 이해가 안 가는 본문도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함. 2. 이번 독회의 주인공 야곱은 일생 동안 많은 사람들을 속임. 에서를 속이며 장자권을 얻고, 이삭을 속이며 축복도 받고, 라반도 속이고... 이런 장면이 당당하게 '성경'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로움. 결국 유대인은 야곱으로부터 나오고, 38장에 나오는 유다와 베레스(페레츠)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니까. 성경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전부 다 흠있고 도덕적인 결함(?)이 보이는 인물들임. 아브라함은 의심했고, 야곱은 남을 속였고, 다윗은 보디발의 아내를 빼앗았고,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했고, 파울로는 예수쟁이들을 죽이고 다니고. 이런 것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듦. 하나는 고대인의 시대적 한계 도덕성을 현대인의 눈으로 판단해서 이렇게 보이는 면도 분명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둘은 이렇기에 성경이 참 인간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듦. 도덕적으로 흠없고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막상 그렇게 산 사람은 그다지 많지는 않음. 신앙인이라는 것은 맹목적인 신앙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잘못하고 죄를 지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음. 3. 라헬을 얻기 위해 자그마치 14년을 노동한 야곱 그는 도대체... 4.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한테 반복적으로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거나 '후손을 많아지게 해주겠다'는 부분들을 보면 바빌론 유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이 가졌던 소망이 반영된건 아닐까 싶음. 5. JEDP 가설이나 보충설이나, 창세기의 편집 과정을 설명하는 가설과 이론들이 비판을 많이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편집 과정이 아예 없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읽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참 많고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부분도 참 많음. 왜이럴까? 왜이리 '야만적'으로 보이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을까?
처음 창세기를 편집한 사람은 이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신학이란 무엇이고 신앙이란 무엇인걸까? 성경 66권 모두모두가 각각의 어려움을 갖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창세기와 욥기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움. 근동학을 더 공부하다보면 좀 나아지려나 모르겠음.
하 아까 댓글 쓰다가 날아가서 좀 빡쳤었음
야곱이 줄무늬와 점박이 양 만들던데 그거 실제로 되나?
단순히 나무껍질을 보게 한다고 그렇게 점박이 양만 나오는 건 당연히 아님. 줄무늬 점박이 유전자가 열성 유전자라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다가, 야곱이 열성유전자를 가진 두 양을 교배시켜서 운 좋게 열성만을 가진 양이 나오게 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자연스러울듯. (혹은 하나님의 뜻으로 보거나)
그거 야곱 점박이, 줄무늬 가축이랑 라반 가축이랑 물 같이 먹을 때 교배시켜서 점박이, 줄무늬가 우성인자라서 드러난거 아님? 그래서 일부러 야곱이 강한 놈들 물마실 때는 나뭇가지 두고, 약한 놈들 물마실 때는 나뭇가지 빼서 교미 안하게 했잖음
그래서 라반 가축 중에 튼실한 후손들은 죄다 줄무늬 점박이라서 야곱이 다 가져가버렸고 그래서 라반 아들들이 화난거아님?
ㄴㄴ 양은 흰색이 우성이어서 얼룩무늬 양은 드묾. 염소는 검은색이 우성. 머릿속으로 양하고 염소 떠올려봐봐 얼룩무늬는 잘 없잖음. 얼룩무늬 열성이어서 얼룩끼리 교배시켜야 나옴 - dc App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개입을 얘기할 수 있는 거. 구약시대 사람들은 양하고 염소 키우는 사람이 태반이었을 텐데 이걸 몰랐을 리는 없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이 행위에 신의 뜻이 개입되었다고 받아들였을 듯 - dc App
머 그냥 여담이지만, 고딩 때부터 조금씩 성경 필사하는 습관이 있는데, 수능 전날에 필사했던 부분이 바로 야곱이 씨름하는 장면이었음. 거기서 용기를 많이 받았는데, 요새는 코로나 핑계대고 교회 안 간지도 꽤 됐고... 여튼 좀 반성하게 되넹
어느 부분에서 용기를 받은거임? 궁금해서 물어봄
야곱이 형의 손에 죽을까봐 전전긍긍하고 두려워하는 상황이 마치 수능 전날의 나와 같게 느껴졌음... 씨름 이후에 이스라엘로 거듭나고 생명을 보전하는 모습을 보고 수능을 이겨낼 용기를 얻었던 것 같음 ㅎㅎ. 비록 그 수능은 망쳤지만...
출애굽기부터 참가해도 되냐. 출애굽기는 모든 종교적 경전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
참가 불참 자유임 - dc App
오케이요. 출애굽기부터 참가하겠오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걸 3번째 보고 있으니 당시 이방인들이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으레 하던 관습? 습관이 아닐까 생각이 듬. 시시콜콜 의미를 찾으려 하는게 좀 과한가싶기도 하고
야곱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장인을 속이고 손해를 입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야곱과 함께 계시면서 보호하심. 물론 번성하게 해주겠다는 계약 때문도 있겠지만, 인간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야곱은 유대인들의 조상이고, 성경을 기록한 것도 유대인인데, 이게 안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면 미화하든 유야무야하든 핑곗거리를 마련했을텐데 딱히 그런것같진 않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를 어느정도까지 속이는 것은 그렇게까지 흠이 되지 않는다는 의식이 공동체 전반에 퍼져 있던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음. 유대인들이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나 방랑자, 이방인으로 살았단걸 생각하면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속임수도 썼을테고. 유대 역사나 문화는 잘 몰라서 대충 추측만 해봄
1. 라헬 겁탈했다고 포경시킨 다음 성에 쳐들어가서 칼로 남자 다죽인거 좀 소름돋았음 머리 잘굴려서 한 번 놀라고, 강간은 분명 한 놈이 한건데 남자를 다 죽여버리는 잔악무도함에 놀람.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수치심들거나 자기들 생각에 어긋난다 생각하면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모습이 오버랩 됨 이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던 예수의 가르침이 맞나 싶음; 개인으로 보는 게 아니라 부족 별로 족쳐버리니까 현대인 입장에서 안 와닿음. 철학사 읽고 있는데 개인 인권 존중이 근대?쯤 부터 생겼다고 하니 개인이 존중받기 위해 정말 오랜시간이 필요했구나 싶음 2. 확실히 신약성서보다 구약성서가 더 재미있었음. 예수 때는 자꾸 교훈 줄려고 애쓰는 것 같아서 비유만 남발하고 줄거리는 별로 없는 느낌이었는데
구약성서는 문학소설 보듯이 술술 읽힘. 재미있음. 정서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있긴한데 통수치고 계략 펼치는 리브가, 야곱 보면 요즘 하는 막장드라마랑 다를바 없는듯. 3. 이스라엘 사람들 성서에 과몰입하는 이유를 알겠다. 자기들이 완전 세상의 주인공이고 복된 후손들이니 한국인들 홍익인간, 이순신, 세종 뽕보다도 더 중독적이긴 할듯. 그래서 전세계 화합, 글로벌화 이런건 가능성 0에 가깝다고 느낌. 세계화, 다문화 존중 이념은 2010년대에 끝난 유행이라 느낌.
독회는 어떻게 참가하나요?
그냥 참가하고싶다고 말하고 스리슬쩍 참가하시면 됩니다.
근데 에사오 아내 이름은 왜 26,27장과 36장에서 다른가요?? 6명의 아내를 둔건가요? 유딧, 바스맛, 마할랏, 아다 오홀리바마, 바스맛 이렇게 6명이 거론되던데...
일반적으로 나오는 견해는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1) 바스맛은 동명 이인이고 실제로 여섯 명의 아내를 가졌거나, 2) 시몬이 베드로라고도 불리고, 야곱이 이스라엘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이름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이거나, 3) 저자가 실수했거나 4) 서로 다른 전승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 이 중 1)과 2)는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통 취하는 입장이고, 학계의 입장이나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결론은 3)이나 4)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