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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에 앞서, 코시국에 미안하지만 일본 여행때 있었던 일을 꺼내야 하겠다.


2. 교토의 기요미즈데라 입구를 바로 지나면 있는 본당?인지 대웅전?인지 건물의 지하에 통로가 있다.

3. 거기서 100엔을 주고 오미쿠지(제비)를 뽑고, 100엔을 더 줘서 지하 통로를 구경하러 갔다.

4. 지하 통로를 갔는데, 문을 탁 닫으니까 갑자기 사방이 깜깜해지더라.

5. 얼마나 깜깜했냐면 내 눈 앞의 손이 안 보일 정도임. 이정도로 깜깜하면 감각이 마비된 것같은 착각을 하게 됨.

6. 통로 벽면에 있는 지지대를 잡고 앞으로 겨우 나아가는데 도중에 갑자기 빛 한 줄기가 보이더라.

7. 한 10초 정도는 그 빛줄기가 너무 아름다워서 가만히 그것만 봤음. 여름 날이었는데 지하라 엄청 춥기도 했고. 진짜 영적 체험이란 게 있긴 하더라고.

8. 알고보니 땅 위에다 구멍을 뚫어놔서 빛이 드는 거라 좀 허무했는데 그건 논외.

9. 그 뒤로는 그냥 통로를 따라 계단을 올라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메데타시 


10.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소설 후반부에 ‘나’가 나랑 비슷한 경험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11.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 읽고나서 한참을 생각한 건 이야기의 주제 의식이었다.

12. <1Q84>의 경우는 주제 의식이 알기 쉽게 묘사되었다. 세계가 개인에게 가하는 압박의 묘사와 그에 대한 개인들의 연대를 통한 대응(내 생각엔).

13. 그런데 <기사단장 죽이기>는 뭐랄까, <1Q84> 급의 모험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14. 이혼한 화가가 적당히 섹스도 즐기고 그림도 그리면서 잘 살다가 갑자기 옆집 소녀가 실종돼서 그녀를 찾아나선다.

15. 여기까지 봤을 때 소녀를 찾아나서는 모험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16. 그런데 <기사단장 죽이기>에 묘사되는 모험은 일반적인 모험의 내러티브와, 심지어 이때까지의 하루키 식 모험의 내러티브와도 크게 다르다.

17. 관념과 개념, 비유와 은유, 상징과 감각으로만 가득찬 이 모험에는 스토리가 부재한다. 인물간의 충돌이라던가 사랑 같은 거.

18. 게다가 이 모험은 그 끝맺음도 비유로 끝낸다. 집 뒷마당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나’와, ‘멘시키’의 집에 숨어들었다가 나흘만에 빠져나온 소녀 ‘마리에’.


19. 비유를 개념과 개념 사이의 점프라고 보았을 때, 하루키는 일본에서 가장 멀리 점프할 수 있는 사람이다.

20. 이런 문장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없는 문장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지어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사단장 죽이기>의 책장을 덮고 가장 먼저 든 생각도 이것이다.

21. 하루키가 기존의 스타일에서 탈피해, 새로운 영역으로의 점프를 시도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22. 앞서 내가 말했던 ‘영적 체험’이 그 근거였다. 그런 경험을 한 나는 소설의 결말이 그런 식으로 끝나는 것에서 하루키가 영성적 비유를 최초로 시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23. 또 다른 근거가 있는데, 그것은 하루키가 이 소설에서 사용한 ‘임신’ 모티프 때문이다.

24. ‘나’와 결별한 아내 ‘유즈’가 아이를 가졌을 때 ‘나’는 그녀를 강간하는 꿈을 꿨다. 그러니까 ‘나’는 일종의 관념으로써 실체 세계에 침투하는 데에 성공한 셈이다.

25. ‘영성’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까,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이 임신 모티프가 그 답인 것 같다. 관념의 실재화. 관념의 실체 세계로의 침투.


26.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영성의 관념이 자주 등장한다. 그림과 나의 무의식적 교섭이라던가 치매에 걸려 누워 지내는 친구의 아버지가 화실에 일종의 영혼으로써 나타난 것.

27. 또는, 아마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선한 것’과 ‘악한 것’의 대립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 정확히는 ‘악한 것’에 대한 강박적인 경계.

28.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를 보았을 때, ‘멘시키’와 함께 구덩이를 파냈을 때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29. 저 장면들을 중심으로 소설 전반에 걸쳐 ‘어떤 악한 것’에 대해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논의하고 토론한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같은 거.

30. 그것에 대한 묘사와 비유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31. 이전의 하루키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내가) 성질의 모티프와 이미지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에 나는 일종의 낯섦을 느꼈다. 

32. 기계적으로 등장하던 섹스에서 좀 더 분명하고 도전적인 암시들이 등장한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 에로스, 영성. 또는 평소와 같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33. 이 시도들, 그러니까 죽음과 에로스와 영성 따위의 ‘성스러움’과 관련한 개념들의 등장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예고된 바 있다.

34. ‘하이다’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산 속의 여관에서 한 피아니스트와 술을 마시며 나눈 대화가 그것이다. 

35. 그러니까, 하루키의 시도는 우발적이거나 충동적인 것이 아니다. 


36. 그동안 하루키의 작품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었다. 그 분기점은 <태엽 감는 새>와 <해변의 카프카> 였다.

37. 전기 하루키의 대표작으로는 <노르웨이의 숲>, 후기 하루키의 대표작으로는 <1Q84>가 있다. 나는 하루키를 생각할 때 그 작품들을 통해 그를 생각한다. 

38. 이제 나는 후기 하루키의 대표작을 <기사단장 죽이기>로 바꾸어야 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39. 출처가 꺼무위키이긴 한데, 하루키의 작품 스타일이 ‘무관심’에서 ‘헌신’으로 바뀌었다고 그 스스로 밝힌 적이 있다.

40. 하루키는 <1Q84>에서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통한 ‘헌신’의 실현에 관심을 기울였고 나름대로 훌륭한 결과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41. 그런데 하루키의 관심이 점점 더 성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인간에 맞추던 초점을 세계로 돌리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42. 말년에 이르러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많은 생각이 든다. 


43. 나는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