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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위대한 개츠비>의 자잘자잘한 플롯까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큰 가지 몇 개 정도?
2. 떠오르는대로 써보자면, ‘나’가 ‘개츠비’라는 부자의 파티에 초대받아 우연히 그와 친해지고 그의 주변인 중 하나가 되어 그의 사생활과 비밀을 알게 된다는 정도?
3. 결말이 이거 맞나? 햇볕은 쨍쨍 개츠비는 탕탕?
4. 이런 생각을 해보자. 어느 날 코인, 주식이나 사업이 성공해서 또는 먼 친척에게 갑자기 유산을 물려받아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5. 그러면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에 나는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두 배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겪을 것이다.
6.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관계를 추구하는 동물이라 자신에게 알맞은 공동체를 찾아 그것에 편입되려는 욕구를 갖는다.
7.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8. 우선, 자신에게 알맞은 공동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벼락부자가 된 흙수저인 철수는 ‘가난한 사람’인가, ‘부유한 사람’인가?
9. 따옴표를 붙인 것은 저 표현들이 단순히 물질적 재산에 대해서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10.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에서 벗어난 그는 당연히 가난한 사람’이었고’, 부유한 사람’일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인 셈이다.
11. 만약 철수가 더 이상 ‘가난한 사람’이기를 거부하고 ‘부유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다고 치자. 부유한 사람들이 철수를 ‘부유한 사람’으로 인정해줄까?
12. 계층 사회는 다른 계층에서 온 이방인에 대해 폐쇄적인 성향을 띤다. 철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13. 이게 두 번째 문제다. 새 공동체가 자신을 맞아들이지 않는다.
14. 이 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철수는 이중의 고통을, 이중의 불만족을 경험할 것이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가망있는 많은 해결책이 존재하는데, 철수는 이 경우 ‘연극’을 선택했다.
15. 본명과 본모습을 버리고, 철저히 감추고 ‘제이 개츠비’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그를 충실하게 연기하는 것이다.
16. ‘제이 개츠비’는 철저히 ‘부유한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부유한 사람들이 그렇게 아는한, 공동체도 그를 반갑게 맞을 것이다.
17. ‘페르소나’라는 개념이 있다. 어원은 그리스어로 ‘가면’이란 뜻이고, 보통 연기하는 사람들이 배역에 맞는 새로운 인격을 창조한 결과물을 가리킨다.
18. 그러니까 철수는 ‘제이 개츠비’라는 페르소나를 창조하고 완벽한 연기자가 된다. 그러면 앞서 언급한 두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다.
19.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도 24시간 내내 연기를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병에 걸린다(해봐서 안다).
20. 정신병에 안 걸리려면 가끔 그런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 안온함과 평화로움의 세계에 진입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해 다시 연기를 할 힘을 충전하는 것이다.
21. 독붕이들아, 그런데 그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능할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철저히 가면을 쓰고,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제 2의 인격인 채로 행동할 수 있을까?
22. 절대 못한다(이것도 해봐서 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런 식으로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누구보다도 당사자가 잘 알 것이다.
23. 이게 개츠비의 딜레마다.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는 가면을 써야 한다. 그런데 가면을 쓰면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나설 수 없다.
24. 생활의 무게가 족쇄가 되어 사랑의 감정을 방해하는 셈이다. 개츠비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최후를 맞이했다.
25. 개츠비의 딜레마는 우리 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26. 생업을 위해 꿈을 포기했는데 그 생업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 행복을 위해 수면시간을 포기하고 공부하는데 그 공부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
27. 현대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 시발점이 피츠제럴드가 활동한 20세기 초라는 사실은 개츠비의 딜레마가 100년 이상 해결되지 못한 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함을 암시한다.
28. 줄거리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쓰지는 못했다. 읽은 지 오래돼서 좀 가물가물하다. ㅈㅅ
29. 정리하자면 <위대한 개츠비>는 현대인의 딜레마를 다루는 소설이다.
30. 현대는 성장과 진보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에 따라 성장하고 진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31. 그런데 그 움직임이 ‘개츠비의 딜레마’를 야기하는 셈이다.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행복을 위해 개인의 행복은 포기되어야 한다.
32. 이게 옳을까, 틀릴까. 최선일까,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쪽도 다 맞는 말인 것 같기 때문이다.
33. 원점, 그러니까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34. 위대한 사람을 보통 영웅이라 부른다. 그리고 영웅은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걸맞는 이를 가리킨다.
35. 세계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개츠비는 가장 완전해졌다. 그런데 그 완전함에는 딜레마가 숨어있다. 세계의 질서를 의심케 하는 딜레마가.
36. 세계는 자신을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딜레마를 숨겨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츠비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든 셈이다.
37. 좀 시니컬하게 얘기하자면,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은 시체팔이인 셈이다.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이런 내용을 다룬 것으로 기억한다.
38. 세계가 행복을 대가로 나의 자유를 얼마나 억제하도록 허용할 것인가? <위대한 개츠비>가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벙한 기억력에 의존해 아무렇게나 쓴 글임. 태글 대환영
모쏠만이 가능한 창의적인 오독일세ㅋㅋㅋ 개츠비의 목적은 자신의 저택 맞은 편에 보이는 '녹색 불빛'을 갖는 것 아니었음? 하긴 노인 따라다니며 캐디 하던 무렵부터 상류 사회에 대한 동경이 있었으니 데이지 = 부, 상류 사회라고 읽을 수도 있겠네.
어디가 오독인지 지적 ㄱㄴ? 네가 한 말이랑 내가 쓴 말이랑 다른 게 없는 것 같아서
난 개츠비의 핵심은 자멸할 줄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순애보라고 봐서. 이를테면 23번 항목도 내용과 다르잖아. 데이지 집 맞은 편에 저택을 산 이유, 거기서 매일같이 파티를 연 이유도 부자가 된 = (네 표현대로라면 가면을 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서였으니까. 대위 신분으로 데이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차피 개츠비는 가면을 쓰고 있던 상태였음. 작품 속에서 개츠비가 본래의 자신과 밀주 사업으로 일궈낸 부유한 자신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다고 볼 근거는 없어 보임.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은 개츠비라는 인물이 정말로 위대하다는 것보다는 개츠비 같은 인물마저 드물어져버린 현실에 대한 탄식을 담은 제목임.
1920년대의 미국을 알아야 왜 이 작품이 그렇게도 미국인들에게 절절이 와닿는지 이해할 수 있음
혹시 내 단상에 틀린 부분 있으면 지적해줄 수 있음? 나는 이런 해석도 가능하겠다싶어서 쓴건데
집에 가서 써볼겡
ㄱㅅㄱㅅ
나도 좀 오독 내지 과해석이 있다고 느끼는게.. 작중에서 개츠비의 자아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함. 개츠비는 데이지로 상징되는 이상을 위해서 자기개조를 기꺼이 감내한 인물임. 목적을 위해 거짓말부터 불법사업, 심지어 살인누명까지 감수하는데 여기서 개츠비의 가면과 진짜 자아의 대립이 있다고 보기엔 근거가 너무 희박함.
나는 목적을 위해 뭐든 하는 개츠비의 모습이 점점 더 위험한 일들, 옳지 않은 일들을 서슴지않고 저지르게 되면서 평범한 사람들과 아득히 멀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고 생각했어. 확실히 내가 기억으로만 쓰다보니 근거가 조금 빈약한 것 같다.
텍스트에 근거할 때 첫댓의 지적이 크리티컬하다고 봄. 근데 꽤나 재밌고 창의적인 해석인 듯. 나는 당시 미국의 사회상을 알아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데에는 반대하는 입장이고, 윗사람 말마따나 대상과 무관한 개츠비의 순애보가 이 소설의 핵심 테마인 것 같음. 그게 종국에는 아이러니컬함과 기타 많은 감상들을 자아내고. 개츠비의 페르소나에 대한 분석도 재밌는 시도긴 하네요
개츠비의 자아가 분리된다고 표현한 건 잘못된 표현인 것 같아요. 그보다는 평범한 사람의 궤도에서 점점 더 멀리 이탈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뻔 했네요. 어찌됐던 텍스트에 근거하지 못한 게 착오를 일으키는 걸 보니 새로 개츠비를 읽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