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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혹은 관념의 차원에서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으로 연원하는 모든 것'


<정치적 낭만주의>가 서론에서 정의하는 낭만주의이다. 실로 핵심을 꿰뚫어 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대상이 무엇이 됐든, 우리의 동경은 무의식중에 우리의 선함은 물론 상대-사회-세계, 즉 환경 자체의 선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환경'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슈미트가 언급하는 대로 중세가 될 수도 있고, 대자연이 될 수도 있고, 왕, 왕자, 공주가 될 수도 있다. 요점은 우리가 갖는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이지, 실재가 아니다. 바로 이것이 낭만주의의 핵심인 '낭만화'이다.


이 책은 이런 낭만주의와 낭만화 자체에 적대적이진 않다. 만약 그랬더라면 이는 단지 반(反) 창작이라는 괴상한 주의(-ism)에 불과할 것이다.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이 앞에 '정치적'이라는 형용사가 붙었을 경우이다. 말하자면, 어떤 신념도 책임감도 없이 그저 재미로 정치적 사건, 대상, 의제 따위를 낭만화, 우상화하는 이들과 이들의 행위를 가차 없이 비판하는 것이다. 슈미트가 이를 위해 선택한 방식도 대단히 자극적이다. 예시를 드는 것인데, 그 예시가 하필 사람 그 자체다. 일종의 기록을 통한 부관참시라고 하면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학술적 고인 능욕'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사실 사상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사변적이기 십상이므로, 그 사상의 실행자들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직관적이며 효과적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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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철하면서도 냉혹한 현실주의자의 눈에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의 짓거리-낭만화, 공상-이 얼마나 꼴사나웠던지, 그는 거의 이들의 행적과 기록을 샅샅이 파헤쳐 부관참시하기에 이른다. 이 부관참시의 대표격으로 세워지는 인물이 바로 아담 뮐러인데, 슈미트는 이 인간이 얼마나 혐오스러웠는지 한 챕터의 대부분, 대략 이십여 쪽 남짓을 온전히 이자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할애한다(이 책은 200페이지를 조금 넘는다). 물론 그 이후 본격적인 비판에서도 수시로 끄집어내 샌드백으로 쓰는 수준이다. 이 아담 뮐러라는 자의 삶은 한 단어로 요약하면 기회주의자일 것이다. 고관대작에게 빌붙어 연명하며,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면 시민 계급 수탈에도 거리낌 없이 동조하는 주제에 저술가와 웅변가로 행세하며 정치 사안을 제 입맛대로 '낭만화'해가며 젠체하는 그는, 슈미트의 말마따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별 볼일 없는 인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인물을 정치적 낭만주의자의 대표격으로 부활시킨 것도 슈미트이지만..


서론에서부터 외부 상황 장에 이르기까지는 거의 빌드업에 가깝고, 저자는 2장 '낭만주의 정신의 구조'라는, 제목부터 도발적인 챕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칼을 뽑는다. 저자가 분석한 낭만주의의 대표적 특성은 '진정성'에 대한 촉구이자 도피이다.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은 실재를 부정하고 '참된', '진정한', '진짜', '순수한' 무엇을 추구하는 것처럼 가장함으로써 면피와 도덕적, 미학적 우월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플라톤의 절대주의-이상론에 최소한의 정당성을 부여한 도덕성과 일관성을 그들은 갖추지 못했다. 정치적 낭만주의자의 또 다른 특성은 바로 일관성의 결여이다. 가령 어떤 때는 분권화를 찬미하다가, 어떤 때는 중앙집권을 국가의 미덕으로 칭송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그들 특유의 현란한 시적 은유 및 아포리즘으로 은폐된다. 그렇다면 이런 궤변의 목적은 무엇인가? 여기서 그들과 소피스트-기회주의자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들은 정치조차 낭만화를 통한 유희에 필요한 질료로 사용할 따름이다. 온갖 관점을 오가며 온갖 정치적 대상, 사건, 의제를 낭만화하고 자신들의 지성을 뽐내기 위해 수다를 떨어대지만 아무런 '결단'도, 행동도 하지 않으며, 할 수도 없다. 그들에겐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에.


'…세상 모든 지적인 소재들로 분장을 할 때면, 정치적 낭만주의는 반드시 그것들을 낭만적으로 가공한 다음 사용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논법과 이미지, …암시적인 표현들이 어우러져 …어떤 특수한 낭만적 생산성이 등장해 그것을 마음대로 요리해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여러 결론과 해답들을 하나로 짜깁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정치적 낭만주의자란, '도덕의식도 정치적 책임감도 없이 '진정한', '참된' 따위의 수식어로 실재를 능멸하며, 하는 짓이라고는 현학적인 어투로 궤변이나 지껄이고 다니며 입 말고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리하고 나니 가히 사회의 해악인데, 사실 이 책의 비판 강도는 그저 욕만 없을 뿐 한없이 욕에 가깝다. 원색적인 비난과 비판의 차이는 근거의 유무일 터인데, 슈미트의 근거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이렇게 정치적 낭만주의를 낱낱이 해부한 후에 도달하는 결론 역시 날카롭다. 그토록 진정성을 부르짖던 낭만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정치라는 형편없는 가짜에 예속되어 선전 도구로 전락한다.


'하지만 이 주체(정치적 낭만주의)의 환상적 우월감의 한가운데에는 현실 세계를 바꿔 보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완전한 포기, 즉 수동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 결과 이제 낭만주의 자체가 비낭만적인 활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기에 이른다. …현실에 대해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이 가졌던 우월감은 이제 더할 수 없이 아이러니한 전도를 경험하게 되었다. …정의와 결단에 초연하던 그들의 태도는 다른 이들의 권력에 예속된 채 그들의 결단을 뒤쫓기에 급급한 태도로 바뀌고 말았다.'






이 책은 1919년에 세상에 나왔다. 바로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배한 이듬해이다. 패배감, 혼란, 의심이 팽배한 사회상을 바라보며 지독히 현실주의적이고도 명철한 법학도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치적 낭만주의>를 그 대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무책임함, 도덕의 부재, 기회주의적 태도 등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반립으로 행동-결단-과 구체성의 촉구한 것은 실로 합리적인 전개라 하겠다. 다만, 이후 나치 독일에 부역하게 되는 저자의 이력을 그의 저서와 분리시켜 생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가 주창한 결단주의나 '정치적 증오심', '부당한 외세 지배에 대한 분노', 도덕과 윤리에 대한 집착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눈에 띈다. 옳고 그름을 구별짓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면 '다름'을 '틀림'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정치서적인 만큼 실제 정치와 비교해가며 읽는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인데, 이 부분에서 정치적 낭만주의에 대한 슈미트의 마지막 지적은 실로 천재적인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지고의 가치를 부르짖던 낭만주의는 결국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파시즘 정권이 고대 그리스-로마 전통에 도착(倒錯)한 것이 가장 유명한 예시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를 자신들의 근원으로 삼았으며(파시즘 자체의 어원부터가 로마의 파스케스이다), 스페인의 팔랑헤당 역시 그리스의 방진 팔랑크스(Phalanx)에서 따온 것이었다. 슈미트가 부역한 나치 독일 역시 고대 게르만족-아리아인이라는 민족주의적 낭만을 한껏 선전 수단으로 활용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