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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짝깝빠왓따나 숫따는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하신 경이다. (상윳따 니까야 56: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로 시작하는데,
나는 불경 읽을 때마다 항상 여기서 뽕이 찬다... ㅈㄴ 간지임..
암튼, 나는 이거 숫따 센트럴이 제공하는 원문이랑 같이 보고 있음.
(읽어보고 싶은 독붕이 있으면 아래 링크 들가셈) https://suttacentr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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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문이랑 번역본 보면서 느낀 건, 진짜 번역 작업이라는 게 말도 못하게 까다로운 일이라는 거였음..
몇 구절을 가져와보겠음, 이건 초기불전연구원 번역임.
상윳따 니까야 제 6권 p.384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이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빠알리 구절을 보자.
Ete kho, bhikkhave,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이걸 번역에 대응시켜보면 다음과 같음.
비구들이여, / Ete kho, bhikkhave,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ubho ante anupagamma
여래는 중도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이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cakkhukaraṇī
지혜를 만들며 ñāṇakaraṇī
고요함과 upasamāya
최상의 지혜와 abhiññāya
바른 깨달음과 sambodhāya
열반으로 nibbānāya
인도한다. saṃvatt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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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안목을 만들고'로 옮긴 cakkhukaraṇī는
cakkhu (눈) + karaṇī (만들다)로 이루어진 합성어임.
나는 이 부분을 '눈을 트이게 하고' 로 번역했으면 좀 더 자연스러웠을 거 같았음.
이번엔 '최상의 지혜와'로 옮긴 abhiññāya를 보겠음.
abhiññā는 신통지, 초감각적 지각을 뜻하는 단어임.
그러니 최상의 지혜라는 번역도 맞는 말이긴 함.
근데 최상의 지혜라는 번역어를 보고서 역으로 아빈냐를 떠올리긴 어려워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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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부분도 보겠음. p.385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
원문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yāyaṃ taṇhā ponobbhavikā nandi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ṃ—kāma taṇhā, bhava taṇhā, vibhava taṇhā.
번역 대응
1.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yāyaṃ
2.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taṇhā ponobbhavikā nandi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3.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
seyyathidaṃ—kāma taṇhā, bhava taṇhā, vibhava taṇh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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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리어 문장을 한국어 문장으로 옮기려고 하니까, 2에서 '그것은 바로' 같은 표현이 추가되었는데, 차라리
'갈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으로 번역했다면 더 간결했을 거 같긴 함.
자꾸 스님 번역에 고나리질 하는 거 같아서 좀 그렇네..
암튼,, 여기서 나온 ponobbhavikā라는 표현은 주목할 만함.
먼저 책의 주석을 인용해보겠음.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ponobbhavikā)’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다시 태어남을 만든다.’는 뜻이 ‘뿌놉바와’(punobbhava)이고,
‘습관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만드는 것’이
‘뽀놉바위까(ponobbhavikā,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것)’이다.” (DA.iii.799) 라고 함.
가끔 부처님께서 윤회를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아니 그럼 갈애가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부처님 말씀은 어캐댄거임?? 하고 따지고 싶어지기도 함.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짜증내는 것은 좋지 않다
타인을 향한 감정이 그렇게 공격적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나나 그 사람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마음이 내 안에 자리잡히도록 놔두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하고 마음을 거듭거듭 챙김.. 생각보다 도움이 되더라
화라는 게 사실
나도 모르게 과속을 하고 있는 형식으로 자주 나타나거든.
그래서 그때마다 방지턱을 하나씩 세운다는 생각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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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잡소리하는 김에 하나만 더 하겠음.
빠알리어를 소리내서 읽으면 진짜 머리가 어질어질함.
발음이 ㄹㅇ.. ㅋㅋ 말도 안댐
이거 까라니야 멧따 숫따라고 스리랑카에서 우리나라의 반야심경만큼 자주 독송되는 경인데 함 들어보셈
까라니야 멧따 꾸살레나 양땅 상땅 빠당 아비사멕짜~ ㅋㅋ
그래도 먼가 계속 듣다보면 정들게대더라 마음이 편해짐
이제 머리깎고 절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