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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은편, 저자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목민서로 여러 판본이 있다. 다만 정호훈이 번역한 선각은 1794년 본이다. 선각은 중국 목민서인 목민심감의 내용을 기초로 이원익의 편지를 수록한 것인데, 이원익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남인계 목민서로 분류된다고 볼 수 있다. 선각은 3자어로 기본 덕목을 설명하고 있는 목민서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내용 상으로는 필자가 이전에 리뷰했던 목민고보다 보수적인 것이 눈에 띠는 점이다. 목민고가 법치와 변통을 강조했다면 선각은 수령의 자기절제와 상대적으로 ㅈ도를 인정하는 보수적 운영방침을 강조한다.


이는 근기남인의 영향으로 개혁적인 줄만 알았던 남인 계열이 실제로는 크게 개혁적이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대놓고 작은 폐단은 못 본척 해라 라는 내용이 선각에 등장하는 것은 사대부층 스스로 제도 개혁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것과 같았다.


대부분의 정치가는 현실주의자이고 이는 조선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기존의 법, 제도를 유지하며 최대한 개인의 부지런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는 성리학이라는 조선후기 기준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으로 국가를 통치하고자 했던 조선시대 치자들의 한계가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