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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고

그래서 파멸했으며

그래서 충실했으며

그래서 비극에 빠졌다

한줄요약
무너져가는 몸과 명석한 두뇌의 아이러니, 무너진 일상과 해결된 사건의 비극.


마이클 로보텀의 조 올로클린 시리즈 일곱 번째. 북로드 출판 기준으로는 다섯 번째 작품이다. (앞선 2권은 용의자 1, 2권인데 사라져버린 다른 출판사에 절판된 책이다.) 그리고 사실상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시리즈의 마지막이기에 역대 시리즈에 비해서 변주도 있고 다른 시리즈와 연관성도 강하다. 무엇보다, 책장을 덮은 나는 몰입의 후유증으로 회한이 밀려왔다. 이게 내가 사랑하고 애정하던 시리즈의 결말인가.

사실 마지막이라고 공식적으로 표기된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첫 시작부터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읽다보니 확신으로 바뀌었고, 책장을 덮을 땐 이게 마지막이어야만 하는 이유만 몇 개를 나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차차 설명하기로 하자.

우선 읽기에 앞서, 이 작품은 다른 앞선 시리즈에 비해 독립적이지 않다. 이전 작품들과 강하게 연결돼 있고, 따라서 전작을 읽어야만 이 작품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안 읽고 그냥 읽는다고 해서 몰입을 아예 못할 건 없는데, 로보텀이 아무리 친절하게 언급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어서 전작을 모르면 일단 납득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너무 많다.

따라서 선행할 작품으로는 "산산이 부서진 남자"가 있고, 부수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해"가 있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이 작품에서 나오는 조의 일상의 측면에서 기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 작품이다. 여기서 조는 아내인 줄리안과 별거했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시점이 바로 이 작품의 시점이다. 미안하다고 말해는 그냥 부수적인 이해를 돕는 작품이라 읽지 않는다고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읽으면 결말부의 조의 심리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외에 내 것이었던 소녀, 널 지켜보고 있어는 훨씬 더 부수적인 작품으로 연관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몰라도 이해에 지장은 없다. 하지만 산산이 부서진 남자-내 것이었던 소녀-미안하다고 말해-널 지켜보고 있어-날 쳐다보지 마 순서로 다 읽은 독자라면...... 조의 가족애, 부성애, 그리고 아내를 향한 사랑 등이 마지막 작품에 이르러서 얼마나 처절하게 빚어지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스릴러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이 맞이할 결말이 얼마나 비극적으로 끝나는지, 이 작품은 조의 감성을 빌려 냉혹하게 제시한다. 6년 사이에 5개의 사건을 겪은 조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사건을 해결하는 조가 초인은커녕 그조차도 안 되는, 그저 선의를 가졌을 뿐인 한 가족의 아버지였음을 보여주며, 그렇기에 그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처절하고, 비극적이다. 슬프다.

추리물로서 재미는 이전 시리즈에 비하면 다소 심심한 감이 있다. 이는 조의 가족애를 부각시키는 드라마의 성격이 부각되면서 추리/스릴러 장르로서의 성격이 다소 위축됐기 때문이다. 사건의 성격도 이전과 달리 이미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하고, 모순을 찾아내고, 진실을 들춰내고, 거짓말을 가려내는 거라 크게 동적이지 않다.

특히 로보텀의 장기이자 특징이라 부를 수 있는 두 시점의 융합이 상당히 후반부에 일어나기 때문에 클라이막스나 긴장감이 집약돼 있다. 극후반부에선 정말 페이지를 놓을 수가 없어서 순식간에 다 읽었지만, 그 이전까지의 과정이 좀 힘들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이를 드라마로 보충한 건 사실이고, 재미의 총량 자체는 덜어진 게 아니지만...... 추리/스릴러물로선 다소 아쉬운 게 사실이다.

이는 시리즈가 쌓아온 조의 가족, 곧 조의 일상의 회복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나는 좀 더 사건이 조의 일상과 엮어지길 원했고, 뒤표지 때문에 정말로 산산이 부서진 남자의 자체 오마주를 하나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정도까진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시리즈물로선 훌륭했다. 추리/스릴러물로선 다소 아쉬웠다. 결론은 감탄보다는 탄식이 어울리는 작품이 되었다.

이 시리즈를 애정하는 독자로서, 그리고 이 작품을 정말 재밌게 읽은 독자로서 박하다 싶은 평가를 하고 있는데, 그런 것치고 사실 이 시리즈는 이전작에 비해 변주가 많이 들어갔다. 우선 드라마 성격이 많이 들어간 것도 그렇고, 전작과 연결고리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 사건의 성격이 현저히 달라서 이전과 달리 동적이지 않다는 점, 조의 일상과 사건이 미묘하게 얽혀 들어간다는 점 등이 그렇다. 확실히 추리/스릴러이기 보다는 시리즈물이라는 어필이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결말 때문에 심통이 난 거다. 조 올로클린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처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배려를 받기 보다는 자진해서 남들을 돕는다. 자살하는 엄마들을 구하려고 도왔고, 아빠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 받은 딸의 친구를 구하려고 도왔고, 실종된 두 소녀를 찾기 위해 나섰고, 자신이 상담하던 환자를 구하기 위해 도왔으며, 그리고 경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도왔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다면, 도울 수 있다면 마땅히 돕는 사람이었다. 내가 조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인간적이기에 실수도 하며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의 실수 중 하나는 타인을 돕느라 가족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산산이 부서진 남자) 그리고 그 실수는 이 작품에서 다시 반복된다. 저번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는 자신의 선의를 무시할 수 없었고, 그 선택의 결과로 그는 절규한다. 절망한다. 그럼에도 나아가려고 발버둥친다.

그 결말이 이 작품의 결말이다. 하나의 사건으로서의 결말임과, 조 올로클린의 선의와 노력의 결말이다. 양자택일의 상황 속에서 그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어느 쪽이든 해피엔딩은 약속돼있지 않았다. 마치 그의 일상이 회복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손쉽게 낚아채버린 그 결말은...... 내게 허탈한 감정은 물론이고 지쳐버린 여운을 남겨줬다. 씁쓸하게 책장을 덮었다. 조의 선의는 분명 타인을 구원했지만, 조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지 못했다. 그뿐이다.

만일 이 시리즈를 정녕 더 내야 한다면, 그건 조의 딸인 찰리 올로클린이 해야 할 일이다. 조 올로클린이 다시는 사건에 나설 일이 없어야 한다. 이 작품의 결말이 그렇게 단언했기 때문이다. 물론 결말만 놓고 볼 땐 이후 잘 수습된다는 전제로 조 올로클린 차기작이 나올 법하지만...... 이런 비극을 내놓고 또 다시 그를 사건에 밀어넣고 그의 선의를 시험하는 꼴은 시체팔이 수준이 아닌가 싶다.

여담으로 북로드 특징인지 모르겠으나, 마이클 로보텀의 어떤 말도 찾아볼 수 없다. 앞에 ~에게 같은 헌사 말고는. 그런 지나친 담백함이 여운을 더 씁쓸하게 남겼다. 여유가 된다면 로보텀의 작가의 말을 찾아보겠다만(안 썼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없다면...... 로보텀 이 나쁜 자식아!

하여간 애정했던 조 올로클린 시리즈를 이렇게 다 읽게 됐고, 로보텀의 작품은 이제 하나만 남겨두고 있다.(독립작이다) 아직도 성실히 쓰고 있는 작가라 언제 또 신작이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 나머지 하나만 읽고나면 플로우차트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그래봤자 7권 밖에 안 되고 그중 5권은 시리즈물이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재주가 없어서(횡설수설했다는 증거다) 적당히 마무리 짓자면, 마이클 로보텀은 그 간결한 현재형 문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제법 잘 후벼파는 구석이 많다. 그가 우리의 집중력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 때, 우리는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페이지를 넘길 뿐인 기계로 전락한다. 그 짜릿한 흥분의 감각을,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공유하길 원한다. 우선 산산이 부서진 남자부터 시작하자.


나를 쳐다보지 마 등급표
필력: A
독서 과정에서 느끼는 총체적인 평가, 곧 작품 자체에 대한 인상. 나머지 6개의 기준을 모두 합친 또 하나의 전체적인 기준.
가독성: A+++
문장을 읽을 때 글이 얼마나 잘 읽히고 술술 넘어가느냐를 기준으로 삼음. 본인 어휘력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으니 주의.
인물: A+
주인공을 비롯한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개성, 매력, 혹은 대사 센스, 유머까지, 곧 작중 인물을 얼마나 잘 살려내고 잘 써내고 잘 활용하느냐에 대한 기준.
설정: A
장르별로 기준의 정의가 다르게 작용하겠지만, 공통적으로는 배경되는 시공간과 전후상황 등의 설정들이 가지는 매력과 활용도가 기준.
분위기: A-
말 그대로 작품에 깔리는 분위기. 전체적인 분위기, 각 파트별 분위기, 분위기 전환 등의 '장면 인상' 위주의 기준.
구성: A-
책 자체의 구성(목차), 문단 구성, 사건 구성, 사건의 흐름, 배치, 플롯으로 퉁칠 수 있는 부분까지. 소설의 골격에 대한 기준.
문장: A
필력이 소설이라는 군집적이고 총체적인 문장의 인상이라면, 문장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부분을 가리키며, 흔히 부르는 묘사도 여기에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