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찐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찐따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일단 지금 디씨를 하고 있는거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른들은 공부를 하라고 했다. 어른들에게 공부를 안하는 놈들은 죄다 인생의 낙오자였다. 나는 그걸 믿고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만 존나게 했다. 공부만 하다 보면 길이 저절로 생길 줄만 알았다.

성적도 잘 나오고, 친구도 많았다. 좋았다.

일반고, 남녀공학을 간 친구를 속으로 비웃었다. 나중에 어떻게 되려고 공부도 안하고 저럴까, 하고.

컴퓨터도 접고, 티비도 치우고, 휴대폰도 바꿨다.

그리고 책도 많이 읽었다. 훌륭하다는 책, 유명하다는 책. 문학, 비문학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읽어댔다.


나는 내가 언젠가 성공할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며칠전에 남녀공학을 간 친구를 만났다.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던 놈이었다. 핸드폰을 달고 살며, 롤 다이아를 찍었다며 나에게 자랑하는걸 보고는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는 것을 3줄 이상을 읽지도 못하고, 역사나 정치같은 것에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는 놈.

그런데 그 놈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더라. 여친이랑 이랬고, 누가 아빠차를 몰고 갔다가 교통사고를 냈다든지. 누구랑 누가 떡을 쳤다더라. 그런 얘기들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오는 동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여친같은 건 우리같은 학생들에겐 참 멀리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나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행복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책 따위 읽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자신의 삶이 소설보다 더 즐거울테니까.


그 날 이후로 책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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