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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에 갇혀 있다고 치자. 당신은 의자에 앉아있고, 옆에는 권총 한 자루가 있다.
2. 모종의 이유로 이 방의 문은 방 안에 살아있는 것이 없을 때까지 절대 열리지 않는다.
3. 방 안에 있는 당신을 죽이려는 무리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거나, 믿어 의심치 않던 친구가 사실은 당신을 여기에 밀어넣었다거나 하는 플롯은 부차적이다.
4. 중요한 사실은 이 상황이 암시하는 무언가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죽기 전까지 이 방을 나설 수 없다.
5. 이렇게 생각한다면 <세끝하원>은 굉장히 시니컬하고 리얼리스틱한 소설이다.
6. 다양한 상징적이고 환상문학적인 요소와 장치들이 대거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굉장히 현실주의적이다.
7.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체념'에 대해 다룬다.
8. 민음사 합본판 기준 약 8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소설의 모든 과정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목적지에는 어떤 종류의 수긍이 있다.
9. '나'가 의식의 죽음을 맞이하고 '세계의 끝'으로 넘어가게 될 운명에 대한 수긍이 그것이다.
10. 모든 소설은 본질적으로 문제 상황과 그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일으키는 문제들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11. 이 연속이 얼마나 매끄러운가는 소설의 질을 가늠하는 일차적인 기준이다. 그 연속이 암시하는 메세지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12. 내가 '체념'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보다 부정적임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고, 그래서 플롯들의 자연스러움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
13. 하루키가 허무주의적인 운명론을 어설프게 내밀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거부반응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셈이다.
14.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키의 이야기는 환상적이고 재미있다.
15. 1985년을 산 사람의 입장에서 도입할 수 있는 모든 미래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활용했다.
16. 그 미래적인 요소들의 아날로그한 감성, 예를 들면 '계산사'라는 업(業)의 존재가 그런 적극적인 노력을 반증한다.
17. 그 노력이 볼품없게 끝나지도 않는다. <1Q84>를 암시하는, 병렬로 배치되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은 훌륭한 유기성을 갖고 하나의 꼭짓점으로 수렴한다.
18. 말을 쓸데없이 길게 늘이는 것 같은데, 요약하자면 '이야기가 재미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19. 그렇다면 그가 플롯들의 배치에서 의도한 메세지는 정당한가? 정확히는, 납득 가능한 수준인가?
20.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처음에는 '아니다'였다. 단순한 이유에서였는데, 앞서 말했듯, '체념'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세끝하원>이라는 이야기의 재미는 그런 나의 부정적 태도를 재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22. '체념'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있음을 무의미, 무쓸모하게 만들어버리는 비정함 때문이다.
23. 체념은 운명에의 순응을 암시한다. 다가올 운명이 나를 무자비하게 뒤흔들 것을 납득하는 것은 인간중심주의의 전통에 배치된다.
24. 그런데 인간 역사의 최근에 들어 우리가 경험한 것은 소위 '부조리'라고 불리는, 23에서 말한 '납득'을 정당화하는 세계의 원리이다.
25. 부조리를 끌어오는 것은 <세끝하원>에 묘사된 '나'의 노력과 발악이 수포로 돌아가버리는 허망함의 감정을 근거로 한다.
26. 카뮈나 사르트르는 앙가주망과 반항을 주장했다. 그러니까,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배척한다.
27. 하루키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부조리를 대한다. <세끝하원>에서 그는 부조리의 침범에 체념해버리는 인물을 묘사했다. 겨울밤처럼 침잠해버리는 체념.
28. 그것을 옹호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반대하려는 것일까?
29. 이는 <세끝하원>에서 답변될 수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세끝하원>이 문제 의식의 제기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0. 세계와의 대결에서 무력함을 체감하고 그것을 납득해버리는 현대인의 모습이 <세끝하원>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31. 그에 대한 답을 하루키는 생애의 단계마다 다르게 대답하는 것 같다.
32. 뭐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그렇고, <노르웨이의 숲>과 <해변의 카프카>, <1Q84>의 세 단계에 걸쳐 그 답이 표현되는 것 같다.
33. 그 표현들의 변화는 마치 허무주의 감성의 대표 주자였던 20대 청년에서 역사 의식에의 관심을 갖게 되는 70대 노인으로의 성장과도 같다.
34. 여느 때와 그렇듯이 장황한 오독과 잡념의 가지치기로 점철된 단상들이다.
35. 정작 내가 그런 단상들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36.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짤막하게 읊조리는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독갤에 수시로 나타나는 것일테다.
37. 독갤럼들의 관심을 원하는 것도 없잖아 있겠지만, 아무래도 하루키를 배우고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38. 그래서 오늘도 하루키를 모티프로 하는 수십 편의 글을 쓰고 하루키의 글에 대한 수십 편의 독후감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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