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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에 앞서, 나는 진성 하루키빠는 아님

2.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노르웨이의 숲>,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애프터다크>, <해변의 카프카> 정도 읽은게 전부임

3. 독붕이라면 그정도는 다 읽었제?


4. 항상 믿음과 자신감이 도전받지만 내 꿈은 소설가임... 그러니까 안 읽을 수가 없잖아? 

5. 표지도 깔쌈함. 현대문학사 기준 정면을 꼬라보는 갤주? 무발기사정 쌉가능 아ㅋㅋ

6. 총 12개의 챕터와 한 편의 후기로 구성된 이 책의 두께는 대략 335쪽쯤 된다. 335쪽 동안 갤주 에세이를 읽는다? 부랄찢고 동서남북으로 울었다

7. 사실 갤주 에세이는 이거밖에 읽어본게 없는데 그정도면 충분한듯 ㅋㅋ


8. 가장 재미있었던 챕터들 몇 편만 꼽아볼거임.

9. 1장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 4장 <오리지낼리티에 대하여>, 6장 <시간을 내편으로 만든다ㅡ장편소설 쓰기>, 10장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이렇게 4 챕터정도.

10. 그런데 이제 스포를 살짝 곁들인... 

11. 각 장의 간략한 요지와 그에 대한 내 단상들을 쓰는 데에 주력할 거라, 이하 관심없는 사람들은 마지막 문장만 읽으면 됨.


12. 1장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는 '소설가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이다.

13. 이 '자질'은 단순히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능력'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키의 말에 따르면 '그건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14. 그것과 더불어, 좀 더 현실적인 얘기들을 풀어낸다. '저출력의 효율성에 만족'하고 '시간을 버텨내는 깡다구'가 있어야 한다. 

15. '저출력의 효율성에 만족'한다는 건, 쉽게 말해서 소설만큼 투입한 노동량 대비 성과가 후진 일도 잘 없다는 뜻이다.

16. 참 공감이 가는게, 내가 소설을 쓸 때면 몇 시간 씩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도 나오는 게 A4 서너장이 전부다. 그것도 잘 써질때만.

17. 장편 소설으로 인정받는 분량이 보통 원고지 800매 쯤으로 환산되니까 러프하게 A4 150장은 일단 넘겨야 하는 셈인데...

18.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쓴다고 쳐도 최소 50일은 쉬지 않고 집중하면서 글을 써야한다. 그 책이 잘 팔린다는 보장도, 인정받는 보장도 없는 채로.

19. 그 시간에 일을 했으면 월급이라도 받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대목이다. 그러한 '저출력'을 감당해내는 힘이 '깡다구'이다.

20. 깡다구는 내 표현이고, 원문에서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힘'이라고 나와있다. 

21. 어느 일에서나 중요한 힘이지만 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특히 중요한 자질인 것 같다. 

22. 영겁처럼 느껴지는 창작의 시간은 흔히 말하는 '창작의 고통'을 낳는다. 내 생각에 그건 '지루함'과 동치라고 생각하는데, 지루한 나날을 견뎌내고 성과물을 비축하는 힘이야말로 대업(大業)을 일구는데에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굳이 거창한 표현을 안 써도, 쉽게 말하자면 장편 하나 쓰는 데에는 지루함에 대한 내성이 필요한 셈이다.

23. 이상과 같은 이유로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에 대해 하루키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24. 그정도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내놓은 상품들은 상호적대적이지 않으니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다고 톨스토이를 안 읽는 건 아닌 것처럼.


25. 4장 <오리지낼리티에 대하여>에서 하루키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스'에 대해 언급한다.

26. 그가 인용한 <뉴욕 타임스>의 비틀스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27. "그들이 창조해낸 사운드는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들 자신의 것이었다."

28. 하루키는 이것을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가장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정의로 제시한다.

29. 이 쉬운 정의는 그러나 가장 어려운 정의이기도 하다. 해석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실천하기 어렵다는 뜻으로서.

30. 새롭고, 설득력있고, 소유권이 명확한 창작물? 이건 거의 상상의 동물이다.

31.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생각은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내가 독창적으로 해낸 생각이 사실은 옛날 사람들이 했던 고민이었다'라는 상황처럼.

32. 비틀스도 블루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로 전환되던 시기의 로큰롤 음악들로부터 수없는 레퍼런스를 취했을 것이다.

33. 다시 말하자면 좋은 레퍼런스를 취한다면 설득력은 보장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좋은 레퍼런스를 새롭고 명확히 소유 가능한 것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하루키는 이에 대해 '즐거운 조합'을 제시한다.

34. 하루키는 '라이터스 블록', 그러니까 글이 안 써지는 상황을 겪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작업이 즐거울 때에만 글을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35. 동시에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방식을 '캐비넷'에 비유한다. 캐비넷에 많은 레퍼런스를 담아놓고, 생각날 때 편리하게 꺼내서 쓴다고 한다.

36. 나도 종종 라이터스 블록을 겪는데, 이 방식은 일견 낯설고도 거부감이 좀 든다. 나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라 하루키처럼 '캐비넷'을 운용할 여유가 없고, 따라서 글을 쓰기 위해서 글의 흐름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놓으면 그걸 다 까먹는다.

37. 정리하자면 하루키는 오리지낼리티를 취하는 방법으로써 '좋은 레퍼런스를 자신에게 즐거운 방식으로 조합'할 것을 제시한다.


38. 6장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ㅡ장편소설 쓰기>는 1장에서 말한 '시간을 버텨내는 깡다구'에 대한 긴 주석과도 같다.

39. 이 장에서 하루키는 장편소설을 쓸 때의 루틴에 대해 얘기한다. 여기에서 내가 주목한 대목은 퇴고에 관한 것이다.

40. 하루키는 주변 사람의 조언을 통해 퇴고의 가닥을 잡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자신이 짜증을 느낀다는 사실을 쉽게 시인한다.

41.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기(또는 않기) 때문이다. 나도 누가 내 글에 피드백을 달면 강박적이고도 과민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물론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예의상). 그리고 그것때문에 괜히 고집이 생겨서 글을 안 고치고 내버려둔다.

42. 이게 프로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짜증을 느끼면서도 퇴고를 수없이 반복한다고 한다. 수십 번, 수백 번.

43.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쓸 때 수백 번은 퇴고를 했다던데, 퇴고는 좋은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를 구별하는 큰 기준인가보다.

44. 사설을 좀 풀자면, 최근 합평 모임에서 내 글이 조금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색은 안했지만 나름 짜증이 났다. 나름대로 몇 주를 공들여 쓴 단편 소설이었는데 그게 부정당하면 누구라도 짜증이 나지 않을까.

45. 사실 그런 짜증때문에 퇴고를 잘 안하는 나쁜 버릇이 생겼는데, 하루키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46. 그냥, 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루키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를 퇴고의 반복에서 느껴지는 지루함을 잘 견뎌낼 줄 아는 것으로 생각하나보다.


47. 마지막으로 10장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48. 하루키는 솔직하게도(또는 대담하게도) '나를 위해 쓴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주위의 어떤 반응에도 초연할 수 있는 듯하다.

49. 단편적인 예로 하루키는 글을 쓴 시점을 기준으로 약 25년 전부터 '하루키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50. 하루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좀 억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긴 하는데, 하루키 스타일이 워낙 확고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51.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있는가 하면,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고 한다.

52. 한 예로, 어떤 할머니가 보낸 팬 레터에 따르면 삼대가 하루키의 글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와! 온 가족이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야스 소설!

53. 나는 이런 반응들에 좀 민감한 편인데, 그러니까 부정적인 반응에는 쉽게 짜증을 내고 긍정적인 반응에는 쉽게 자만하는 스타일이다.

54. 좀 안 그러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이 챕터를 읽고 많은 반성을 하게 됐다. 나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쓴다. 이건 스스로도 잘 인식하고 있는 목표의식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남들 반응 하나하나에 신경쓰게 된다.

55. 하루키한테 배울 점이 많지만 아무래도 이게 가장 큰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위해 글을 쓰고, 그렇기에 타인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곤조대로 나아갈 수 있는 깡다구.


56. 글을 쓰다보니 느낀 점인데, 하루키는 얼핏 보기에 소심하고 유약한 성격일 것이라고 궁예 당하기 쉬운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꽤 깡다구가 센 사람이다.

57. 수십 년 동안 자기 색을 잃지 않고 일관적으로 장편, 단편, 에세이, 번역 등 이것저것 '글'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58. 그런 자세는 강인한 마음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자라날 수 없는 자세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59.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하루키가 동시대 작가들과 교류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60. 흔히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을지 못받을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나는 반반인 입장이다.

61.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탈현실적'인 작풍이 도피적이라는 인상을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그런 도피성이 조금 덜하다마는.

62. 하루키의 문체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참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키라는 타이틀의 명성이 유지됐을 수도 있다마는.


63.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결국 소설가로서 덕목에 대한 하루키 나름의 답안지라고 볼 수 있겠다.

64. 이 답안지를 참고하고 오답노트를 작성하면서 더 뛰어난 후배 작가들이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하루키에게 참 감사하다.

65. 근데 이 글을 어떻게 끝낼 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무거나 생각나는 말 하나 던져놓고 도망가야겠다.



66. <노르웨이의 숲> 레즈 보빔 섹스 씹머꼴 아니냐? 하루키는 진짜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