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시는 몰라도 비상상황에는 좀 유리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짤에 나온 페이지 읽다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더라. 가지고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걸 오히려 방해하는 측면도 강한 듯.
댓글 45
분명 독서가 효율적일까로 읽고 들어왔는데.. 독재네
면도날(ehrtjrofwpcnfdyd)2021-05-24 18:00
답글
그런 어그로는 굳이 내가 안 끌어도 다른 분들이 많이 끌어주니까ㅋㅋ
일락서산(wangpyeong12)2021-05-24 18:03
답글
면도날(ehrtjrofwpcnfdyd)2021-05-24 18:04
히틀러만 보면 답나옴ㅋㅋ
익명(58.232)2021-05-24 18:00
답글
퓨러는 규격 외잖아ㅋㅋ
일락서산(wangpyeong12)2021-05-24 18:04
답글
불란서에 불났서~
익명(58.232)2021-05-24 18:05
우리의 가상의 독재자, 혹은 (철인왕이라고 부르기로 한 약속대로)철인왕이, 비록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지만, 복잡성, 개인 의지 간의 투쟁, 부하들의 저항, 모든 복잡, 대규모 사회에서 진화할 권력 추구 집단이나 체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방법을 찾아냈다고 가정해보자. 설령 이런 비현실적인 가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근본적인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FC(jmhan)2021-05-24 18:03
첫번째 문제는: 누가 철인왕을 고를 것이며 어떻게 그에게 권력을 줄 것인가? 대규모 사회들은 수많은 목표들과 가치들(“개인 의지 간의 투쟁”)을 갖고 있음을 고려하면, 어떤 철인왕의 통치가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목표와 가치, 심지어 엘리트 계층(말하자면 지식인들, 과학자들, 아니면 부자들)의 목표와 가치와 일치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어쩌면 철인왕이 일단 권력을 쥐고나서, 프로파간다나 인간공학 같은 기술을 이용해 다수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와 일치시킬 수는 있다. 현실 정치를 고려하면, 누군가가 실제로 철인왕이 된다면, 그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싱거운 양반이 되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전투적인 파벌을 이끄는 무자비한 지도자가될 것이다. 후자의 경우 그는 오직 자신의 권력만을 추구하는
FC(jmhan)2021-05-24 18:03
추구하는 무책임한 사람이거나(히틀러), 자신이 추구하는 대의의 올바름을 추종하는 광신자일 것이다(레닌). 하지만 어느쪽이든 그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할 것이다.
FC(jmhan)2021-05-24 18:03
따라서, 철인왕이라는 발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시민이 있다면, 그는 그 자신은 철인왕을 고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철인왕이 나타난다면, 그가 상상하거나 기대했던 철인왕이 아닐 것이다.
FC(jmhan)2021-05-24 18:04
또 하나의 문제는 철인왕이 죽었을 때 어떻게 후임자를 결정하냐는 것이다. 각각의 철인왕은 자신과 동일한 목표와 가치를 갖고 있는 믿을만한 후임자를 지명해야할 것이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첫번째 철인왕은 사회를 이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고, 두번째 철인왕은 사회를 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고, 세번째 철인왕은 또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인 사회 발전은 일관적인 방향이나 정책을 따르지 않고, 무작위로 떠돌게될 것이다.
FC(jmhan)2021-05-24 18:04
역사적으로, 로마 제국 같은 절대 군주정의 사례들을 보면, 그럭저럭 유능하고 양심적인 군주를 확보하는 것 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유능하고, 양심적인 군주들은 무책임하고, 부패하고, 잔인하고, 무능한 군주들로 대체되었다. 유능하고 양심적일 뿐만 아니라 전임자와 유사한 목표와 가치를 지닌 군주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나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잊어도 좋다. 추가로, 이 모든 논의들은 철인왕 뿐만 아니라, 엥겔스가 말한 “수많은 개인 의지들의 투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소규모 철인 과두정에도 적용된다.
FC(jmhan)2021-05-24 18:0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단 하나의, 안정된 영구적인 가치 체계를 따라 통치할 철인왕들을 오랜 기간 이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자. 그 경우에는… 잠깐… 잠시 멈춰서 우리가 세운 가정들을 확인해보자. 우리는, 무엇보다도, 전능한 지도자가 복잡성, 카오스, 부하들의 저항, 지도자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전적으로 기술적인 요소들 뿐만 아니라,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하는 권력 추구 집단들을 모두 극복하고 사회를 합리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우리는 지도자를 합리적으로 정하기 위해 사회 내부의 “수많은 개인 의지들의 투쟁”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고 있다. 우리는 정해진 지도자에게 절대 권력을 주고, 모종의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가치 체계에 따라 통치해줄 유능하고 양심적
FC(jmhan)2021-05-24 18:04
양심적인 지도자들을 영원히 이어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사회를 합리적으로 조종할 가상의 가능성을 통해 위안을 얻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그러한 사회가 따르는 가치 체계가 자신의 가치와 최소한 약간이라도 일치할 것이라는 상당히 대담한 가정을 해야한다.
FC(jmhan)2021-05-24 18:05
이제 우리가 환상의 영역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회 발전을 충분히 유의미한 시간에 걸쳐 합리적으로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을 수학적인 확실성 수준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 지도의 가능성을 얻기 위해 세운 일련의 가정들이 너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므로, 우리는 사회 발전이 영원히 인간의 합리적 통제 너머에 있을 것이라고 간주해도 괜찮다.123
FC(jmhan)2021-05-24 18:05
답글
이거 누구 글이야? 포퍼?
일락서산(wangpyeong12)2021-05-24 18:05
답글
씨발 이게 뭐노
익명(58.232)2021-05-24 18:05
답글
하아 퍼거 새끼 괘씸하거든요
익명(8.38)2021-05-24 18:06
답글
시어도어 카진스키
FC(jmhan)2021-05-24 18:06
답글
이 새끼 갤로그에 진보좌파랑 나치랑 같이있노 시발ㅋㅋ
익명(58.232)2021-05-24 18:07
답글
좋은글ㄱㅅㄱㅅ
롤리타(belhommee9229)2021-05-24 18:24
독재 자체가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높은건 사실임. 저런 식으로 예시 하나만 들어서 독재가 비효율적이라고 하기엔 로마 공화국 위기 동안 힘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아서 서로 죽고 죽인걸 예로 들면 공화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반론할 수도 있음
키릴로프(polovtsiandances)2021-05-24 18:09
답글
이건 좀 경제학 문젠데, 의사결정의 효율성이라는 부분에서 다수의 동의와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반비례함. 즉 다수의 동의를 얻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반대로 소수의 동의만 필요하다면 적은 비용이 들어감. 물론 이 비용에 독재자의 숙청이 포함되지는 않지만, 결국 이 '사회/경제적 비용'이라는 것의 무게를 가늠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움. 저 글에서 예시로 든 연개소문만 해도 저때 연개소문이 정권 장악에 실패하고 내전 내지는 권력 누수 상태가 지속됐다면 저항 한번 못해보고 당나라에 먹혔을걸?
키릴로프(polovtsiandances)2021-05-24 18:13
답글
맞네. 로마에도 독재관이 있었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 당제국이 역대급 추진력과 인재풀로 반드시 먹겠다고 덤비는데 고구려에서도 반작용이 있었겠지. 의견 ㄱㅅㄱㅅ
일락서산(wangpyeong12)2021-05-24 18:22
임용한책이지? 그 양반 조선초기 정치사 학자가 여기저기 많이 건드려서 오류 많으니까 곧이 곧대로 듣지마라. 고구려 망한 가장 큰 요인은 그냥 당이 무슨수를 써서든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신라와 손잡았기 때문이지 다른데서 찾아봐야 변죽만 올리는 꼴 되기 십상임
익명(58.238)2021-05-24 18:09
답글
조선시대에 정치인 숙청되면 관련있는 무사들 다 죽이거나 쫒아냈다 이것도 순 지어낸 이야기고 시대가 고대 왕정시대인데 왕도 지금으로치면 독재자 아닌가? 말도 안되는 소릴 하고 있어
익명(58.238)2021-05-24 18:11
답글
아, 물론 저자 전공이 조선사인건 감안하고 읽어야지. 그렇지만 네 말대로 당이 아무리 을밀대에 깃발 꼿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어도 고구려 통치체제가 다른 형태였다면 역사가 어떻게 굴러갔을지 상상할 수는 있잖아.
일락서산(wangpyeong12)2021-05-24 18:13
답글
왕이어도 개인 능력이나 당시 정권 역학관계에 따라 휘두를 수 있는 권력에 제약이 있으니까. 그리고 왕권이 전제화되기 이전의 왕과 이후의 왕은 위상 차이가 엄청나잖아.
일락서산(wangpyeong12)2021-05-24 18:18
답글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1911년까지, 모든 중국 왕조들은 “국가의 유일한 입법가이자, 절대적인 행정가이자, 최상위 법관인 황제의 치하에 있었다. 황제의 명령은, 말 그대로, 법률 그 자체였다. 그리고 황제는 자신이 만든 법률로부터 자유로웠다.”60 이론상 황제는 “유교적 규범과 엘리트 사대부들의 가르침”을 따라야 했다.61 하지만 이를 집행할 구체적인 법률이나 강제력이 없었기 때문에, 몇몇 용감한 신하들이 목숨을 걸고 조언을 하는 것 외에는 황제를 제약할 방법이 없었다. 신하들이 조언을 하는 경우에도, “황제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그렇게 해야했다.”62
FC(jmhan)2021-05-24 18:19
답글
따라서 황제가 맞닿뜨리는 실제적 한계가 더 중요하다. “거대한 정부조직의 지도자로서… 황제는… 정부의 반복적인 업무들을 대신해주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위임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전 왕조에서 물려받은 조직이 황제가 권력을 위임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었다.”, “이전 왕조와는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해도, 중국 바깥에는 참고할만한 사례가 없었다.”63 두말할 것도 없이, 황제가 실제로 쓸 수 있는 권력은 그 시점에 정부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능력에 달려있었다.64 하지만 언제나 그 권력은 황제의 말이 곧 법이라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권력보다 훨씬 약했다.
FC(jmhan)2021-05-24 18:19
답글
황제의 권력의 실제적 한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는, 송나라 황제 신종(神宗)이 있다. 1069년 지혜로운 정치 전략가 왕안석(王安石)을 알아본 신종은, 그를 부재상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그의 생각을 황제의 이름으로 집행할 전권을 위임했다.65 왕안석의 개혁은 철저한 조사에 기반한 것이었지만, 그와 황제 모두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이익을 위협받게된 사람들의 격렬한 저항을 고려하지 못했다.66 “개혁으로 인해 발생한 파벌 싸움은 순식간에 큰 피해를 가져왔다.”67 왕안석에 대한 반대가 너무나 극심해서, 그는 1076년 영구적으로 사임했다. 1085년 신종이 사망한 이후 8년만에 대부분의 개혁안들은 철회되거나 철저하게 수정되었다.68
FC(jmhan)2021-05-24 18:19
답글
두 명의 후임 황제들, 철종(哲宗, 재위 1093년~1100년)과 휘종(徽宗, 재위 1100년~1126년)의 치하에서, 몇몇 개혁안들이 복구되었다. 하지만 “왕안석의 협력자들은 사라졌고, 그의 정책들은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다.”69 “비록 휘종 치하에서 몇몇 개혁안들이 복구되었지만, 왕실의 분위기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았으며,”70 왕실은 “천박한 정치행태”를 보였다.71 “고위 관리들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리들의 탐욕으로 인해 “궁지에 내몰린 민중이 이들에게 맞서 심각한 반란을 일으켰다.72 1126년~1127년 북송 왕조의 붕괴는 왕안석의 개혁안의 숨통을 끊었다.73
FC(jmhan)2021-05-24 18:20
답글
노버트 엘리어스는 “절대왕정” 시대 유럽의 “절대” 군주들 그다지 절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74 예를들어, 프랑스 왕 루이14세는 “절대” 군주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 목이든 잘라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의 권력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FC(jmhan)2021-05-24 18:20
답글
루이 14세가 갖고 있던 인적 네트워크는 루이 14세가 존중할 수 밖에 없는 고유의 운동량과 무게중심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과 집단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가며 전체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자기통제력이 필요했다.75
FC(jmhan)2021-05-24 18:20
답글
엘리어스는 루이 14세가 자신의 왕국을 아주 좁은 한계 내에서만 “조종”할 수 있었으리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가장 절대적인 정부조차도 사회 발전의 역학 앞에서는 무력하다...”고 적었다.76
FC(jmhan)2021-05-24 18:20
답글
2차 고당전쟁때 도행군 절반 갈아버린 것만쳐도 역대급 전공이고, 고구려 요동과 압록강 방어선은 연남생이 투항의사 밝혀다고 바로 항복한게 아니라 당 대군한테 수차례 두들겨 맞다가 맞다가 항복하거나 무너진거임. 그냥 중원에 통일왕조가 자리잡으면서 압력이 전에없어져서 망한거지
익명(58.238)2021-05-24 18:23
답글
빨리 병원 보내야겠네 어후;;
익명(8.38)2021-05-24 18:30
답글
이놈의 갤에는 왜 주기적으로 정신병자 출몰하냐. 독서에 정신병자 끌어들이는 마력이라도 있나?
익명(58.238)2021-05-24 18:32
답글
그저 독재자들의 권력조차도 현실앞에서는 무력하다는걸 지적했을 뿐입니다.
FC(jmhan)2021-05-24 18:42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2026-07-23 14:11
답글
정당화의 문제가 아니라 '못 써먹을 건 알겠는데 그래도 찾아보면 써먹을 만한 점은 없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음. 의견 ㄱㅅㄱㅅ
분명 독서가 효율적일까로 읽고 들어왔는데.. 독재네
그런 어그로는 굳이 내가 안 끌어도 다른 분들이 많이 끌어주니까ㅋㅋ
히틀러만 보면 답나옴ㅋㅋ
퓨러는 규격 외잖아ㅋㅋ
불란서에 불났서~
우리의 가상의 독재자, 혹은 (철인왕이라고 부르기로 한 약속대로)철인왕이, 비록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지만, 복잡성, 개인 의지 간의 투쟁, 부하들의 저항, 모든 복잡, 대규모 사회에서 진화할 권력 추구 집단이나 체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방법을 찾아냈다고 가정해보자. 설령 이런 비현실적인 가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근본적인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첫번째 문제는: 누가 철인왕을 고를 것이며 어떻게 그에게 권력을 줄 것인가? 대규모 사회들은 수많은 목표들과 가치들(“개인 의지 간의 투쟁”)을 갖고 있음을 고려하면, 어떤 철인왕의 통치가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목표와 가치, 심지어 엘리트 계층(말하자면 지식인들, 과학자들, 아니면 부자들)의 목표와 가치와 일치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어쩌면 철인왕이 일단 권력을 쥐고나서, 프로파간다나 인간공학 같은 기술을 이용해 다수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와 일치시킬 수는 있다. 현실 정치를 고려하면, 누군가가 실제로 철인왕이 된다면, 그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싱거운 양반이 되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전투적인 파벌을 이끄는 무자비한 지도자가될 것이다. 후자의 경우 그는 오직 자신의 권력만을 추구하는
추구하는 무책임한 사람이거나(히틀러), 자신이 추구하는 대의의 올바름을 추종하는 광신자일 것이다(레닌). 하지만 어느쪽이든 그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할 것이다.
따라서, 철인왕이라는 발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시민이 있다면, 그는 그 자신은 철인왕을 고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철인왕이 나타난다면, 그가 상상하거나 기대했던 철인왕이 아닐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철인왕이 죽었을 때 어떻게 후임자를 결정하냐는 것이다. 각각의 철인왕은 자신과 동일한 목표와 가치를 갖고 있는 믿을만한 후임자를 지명해야할 것이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첫번째 철인왕은 사회를 이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고, 두번째 철인왕은 사회를 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고, 세번째 철인왕은 또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인 사회 발전은 일관적인 방향이나 정책을 따르지 않고, 무작위로 떠돌게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로마 제국 같은 절대 군주정의 사례들을 보면, 그럭저럭 유능하고 양심적인 군주를 확보하는 것 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유능하고, 양심적인 군주들은 무책임하고, 부패하고, 잔인하고, 무능한 군주들로 대체되었다. 유능하고 양심적일 뿐만 아니라 전임자와 유사한 목표와 가치를 지닌 군주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나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잊어도 좋다. 추가로, 이 모든 논의들은 철인왕 뿐만 아니라, 엥겔스가 말한 “수많은 개인 의지들의 투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소규모 철인 과두정에도 적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단 하나의, 안정된 영구적인 가치 체계를 따라 통치할 철인왕들을 오랜 기간 이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자. 그 경우에는… 잠깐… 잠시 멈춰서 우리가 세운 가정들을 확인해보자. 우리는, 무엇보다도, 전능한 지도자가 복잡성, 카오스, 부하들의 저항, 지도자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전적으로 기술적인 요소들 뿐만 아니라,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하는 권력 추구 집단들을 모두 극복하고 사회를 합리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우리는 지도자를 합리적으로 정하기 위해 사회 내부의 “수많은 개인 의지들의 투쟁”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고 있다. 우리는 정해진 지도자에게 절대 권력을 주고, 모종의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가치 체계에 따라 통치해줄 유능하고 양심적
양심적인 지도자들을 영원히 이어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사회를 합리적으로 조종할 가상의 가능성을 통해 위안을 얻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그러한 사회가 따르는 가치 체계가 자신의 가치와 최소한 약간이라도 일치할 것이라는 상당히 대담한 가정을 해야한다.
이제 우리가 환상의 영역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회 발전을 충분히 유의미한 시간에 걸쳐 합리적으로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을 수학적인 확실성 수준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 지도의 가능성을 얻기 위해 세운 일련의 가정들이 너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므로, 우리는 사회 발전이 영원히 인간의 합리적 통제 너머에 있을 것이라고 간주해도 괜찮다.123
이거 누구 글이야? 포퍼?
씨발 이게 뭐노
하아 퍼거 새끼 괘씸하거든요
시어도어 카진스키
이 새끼 갤로그에 진보좌파랑 나치랑 같이있노 시발ㅋㅋ
좋은글ㄱㅅㄱㅅ
독재 자체가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높은건 사실임. 저런 식으로 예시 하나만 들어서 독재가 비효율적이라고 하기엔 로마 공화국 위기 동안 힘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아서 서로 죽고 죽인걸 예로 들면 공화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반론할 수도 있음
이건 좀 경제학 문젠데, 의사결정의 효율성이라는 부분에서 다수의 동의와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반비례함. 즉 다수의 동의를 얻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반대로 소수의 동의만 필요하다면 적은 비용이 들어감. 물론 이 비용에 독재자의 숙청이 포함되지는 않지만, 결국 이 '사회/경제적 비용'이라는 것의 무게를 가늠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움. 저 글에서 예시로 든 연개소문만 해도 저때 연개소문이 정권 장악에 실패하고 내전 내지는 권력 누수 상태가 지속됐다면 저항 한번 못해보고 당나라에 먹혔을걸?
맞네. 로마에도 독재관이 있었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 당제국이 역대급 추진력과 인재풀로 반드시 먹겠다고 덤비는데 고구려에서도 반작용이 있었겠지. 의견 ㄱㅅㄱㅅ
임용한책이지? 그 양반 조선초기 정치사 학자가 여기저기 많이 건드려서 오류 많으니까 곧이 곧대로 듣지마라. 고구려 망한 가장 큰 요인은 그냥 당이 무슨수를 써서든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신라와 손잡았기 때문이지 다른데서 찾아봐야 변죽만 올리는 꼴 되기 십상임
조선시대에 정치인 숙청되면 관련있는 무사들 다 죽이거나 쫒아냈다 이것도 순 지어낸 이야기고 시대가 고대 왕정시대인데 왕도 지금으로치면 독재자 아닌가? 말도 안되는 소릴 하고 있어
아, 물론 저자 전공이 조선사인건 감안하고 읽어야지. 그렇지만 네 말대로 당이 아무리 을밀대에 깃발 꼿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어도 고구려 통치체제가 다른 형태였다면 역사가 어떻게 굴러갔을지 상상할 수는 있잖아.
왕이어도 개인 능력이나 당시 정권 역학관계에 따라 휘두를 수 있는 권력에 제약이 있으니까. 그리고 왕권이 전제화되기 이전의 왕과 이후의 왕은 위상 차이가 엄청나잖아.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1911년까지, 모든 중국 왕조들은 “국가의 유일한 입법가이자, 절대적인 행정가이자, 최상위 법관인 황제의 치하에 있었다. 황제의 명령은, 말 그대로, 법률 그 자체였다. 그리고 황제는 자신이 만든 법률로부터 자유로웠다.”60 이론상 황제는 “유교적 규범과 엘리트 사대부들의 가르침”을 따라야 했다.61 하지만 이를 집행할 구체적인 법률이나 강제력이 없었기 때문에, 몇몇 용감한 신하들이 목숨을 걸고 조언을 하는 것 외에는 황제를 제약할 방법이 없었다. 신하들이 조언을 하는 경우에도, “황제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그렇게 해야했다.”62
따라서 황제가 맞닿뜨리는 실제적 한계가 더 중요하다. “거대한 정부조직의 지도자로서… 황제는… 정부의 반복적인 업무들을 대신해주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위임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전 왕조에서 물려받은 조직이 황제가 권력을 위임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었다.”, “이전 왕조와는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해도, 중국 바깥에는 참고할만한 사례가 없었다.”63 두말할 것도 없이, 황제가 실제로 쓸 수 있는 권력은 그 시점에 정부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능력에 달려있었다.64 하지만 언제나 그 권력은 황제의 말이 곧 법이라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권력보다 훨씬 약했다.
황제의 권력의 실제적 한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는, 송나라 황제 신종(神宗)이 있다. 1069년 지혜로운 정치 전략가 왕안석(王安石)을 알아본 신종은, 그를 부재상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그의 생각을 황제의 이름으로 집행할 전권을 위임했다.65 왕안석의 개혁은 철저한 조사에 기반한 것이었지만, 그와 황제 모두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이익을 위협받게된 사람들의 격렬한 저항을 고려하지 못했다.66 “개혁으로 인해 발생한 파벌 싸움은 순식간에 큰 피해를 가져왔다.”67 왕안석에 대한 반대가 너무나 극심해서, 그는 1076년 영구적으로 사임했다. 1085년 신종이 사망한 이후 8년만에 대부분의 개혁안들은 철회되거나 철저하게 수정되었다.68
두 명의 후임 황제들, 철종(哲宗, 재위 1093년~1100년)과 휘종(徽宗, 재위 1100년~1126년)의 치하에서, 몇몇 개혁안들이 복구되었다. 하지만 “왕안석의 협력자들은 사라졌고, 그의 정책들은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다.”69 “비록 휘종 치하에서 몇몇 개혁안들이 복구되었지만, 왕실의 분위기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았으며,”70 왕실은 “천박한 정치행태”를 보였다.71 “고위 관리들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리들의 탐욕으로 인해 “궁지에 내몰린 민중이 이들에게 맞서 심각한 반란을 일으켰다.72 1126년~1127년 북송 왕조의 붕괴는 왕안석의 개혁안의 숨통을 끊었다.73
노버트 엘리어스는 “절대왕정” 시대 유럽의 “절대” 군주들 그다지 절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74 예를들어, 프랑스 왕 루이14세는 “절대” 군주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 목이든 잘라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의 권력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루이 14세가 갖고 있던 인적 네트워크는 루이 14세가 존중할 수 밖에 없는 고유의 운동량과 무게중심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과 집단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가며 전체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자기통제력이 필요했다.75
엘리어스는 루이 14세가 자신의 왕국을 아주 좁은 한계 내에서만 “조종”할 수 있었으리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가장 절대적인 정부조차도 사회 발전의 역학 앞에서는 무력하다...”고 적었다.76
2차 고당전쟁때 도행군 절반 갈아버린 것만쳐도 역대급 전공이고, 고구려 요동과 압록강 방어선은 연남생이 투항의사 밝혀다고 바로 항복한게 아니라 당 대군한테 수차례 두들겨 맞다가 맞다가 항복하거나 무너진거임. 그냥 중원에 통일왕조가 자리잡으면서 압력이 전에없어져서 망한거지
빨리 병원 보내야겠네 어후;;
이놈의 갤에는 왜 주기적으로 정신병자 출몰하냐. 독서에 정신병자 끌어들이는 마력이라도 있나?
그저 독재자들의 권력조차도 현실앞에서는 무력하다는걸 지적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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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화의 문제가 아니라 '못 써먹을 건 알겠는데 그래도 찾아보면 써먹을 만한 점은 없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음. 의견 ㄱㅅ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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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 이렇게 댓글이 많이 달릴 글일까 싶네ㅋㅋ
이 갤이 문제야. 정신병자 꼬이긴 쉬운데 차단은 잘 안해서 조금 지나면 상주함
58.238 // 뻔히 당사자 앞에서 정신병 정신병 ㅇㅈㄹ 하네 가정교육을 좆으로 받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