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유의 범위를 무차별적으로 확장해서, 내 앞뒤로 있었을 긴 선형의 시간축을 상상하고, 나는 그 중에 하나의 점보다도 작은 존재임을 생각할 때가 있어
그러자면 정말 참기 힘든 공포, 즉 거대한 자연의 전체성(Allheit) 앞에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그 기분이 몰려오더라

나는 여기에 이렇게 대응해 : 나의 세계의 크기는 변형 가능하다고 믿는 것
마치 슬라임처럼
요컨대 나는 무한히 확장 또는 축소 가능한 슬라임의 가장 중심에 들어 있는 쇠구슬 같은 것이고, 이 슬라임의 크기가 곧 제가 그때그때 인식하는 세계인 것이지
그리고 이 세계의 크기는 내 감각에 의해 통제를 받는데- 예컨대 힘든 일을 하며 고통스러울 때라거나, 맛있는 음식/좋은 음악/훌륭한 그림 따위에 몰입할 때, 무언가를 깊이 생각할 때 등등, 즉 나의 매 경험의 순간의 감각의 크기가 곧 제 세계의 크기와 일치하는 거야(질적으론 다르겠지만)
이러면 내 세계의 크기를 더 큰 세계의 크기와 비교하며 공포스러워 할 이유가 없지

독붕이들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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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새벽 공기 선선할 때 옥상에 올라가 책 읽었던 날
갈 땐 어둑했는데 나올 땐 어슴푸레 햇빛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더라
아마 가장 행복했던 날이야
여기 새벽엔 대부분 사람들이 다니질 않아서
난간에서 내려다보면 도로 전조등 몇 개만 보이고 차 다니는 소리만 들리는데, 헤드폰 끼고 음악을 들으면 그마저도 들리지 않아
정말 좋았어서 그곳을 감싸던 습기 머금은 공기의 향 듣던 음악 작은 소음들이 지금도 선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