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문체 연습'을 보고 레몽 크노를 떠올렸는가는 모르겠지만, 내 얘기였다능. 디시 다른 갤엔 글질 잘 안하고 주로 독갤에 연습삼아 다른이 문체 흉내내서 쓰는데, 주로 쉼표 팍팍 찍어가며 요설체로 나불나불 거리는 다자이 오사무의 문체를 따라 써보는 편. 왜냐믄 그게 쓸 때 좀 재밌거든.
근데 다자이처럼 능청스럽게 글 쓰면 어째서인지 비추수가 졸라 많은 것입니다. 여기에 책홍보까지 더해지면, 그러니까 주절주절 문체와 책홍보가 콜라보로 이어지면 비추수가 어마어마하여, 아무리 재미 삼아 쓴 글이라 하더라도 글쓴이로 상처를 받는 달까. 쳇.
어제 그렇게 올린 글엔 심지어 나더러 틀딱내 난다고 해서 상처 많이 받았다. 아니, 뭐, 그래, 내가, 좀, 늙긴, 했다만.
이제 문체 연습과 책홍보 따위 때려치우고 책 이야기나 해야되겠다, 뭐 이런 생각이 든다능. 반성합니다.
요즘 박태원 단편선 본다. (봉준호 외할아버지죠?)
하루에 아주 조금씩 찬찬히 읽는데, 그 유명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재미난 문장이 있다.
'스물 여섯해를 길렀어도 종시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자식이었다. 설혹 스물 여섯해를 스물여섯 곱하는 일이 있었더라도, 어머니의 마음은 늘 걱정으로 차리라.'
이거 엄마가 아들 나이 암만 처묵어도 걱정한다는 내용 아닌가.
스물 여섯짤 아들이 아니라, 자식 새끼 나이가 26*26 = 676세라도 엄마는 자식을 걱정한다는 내용 아닌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머니 은혜와 사랑은 깊고도 깊어, 자식 새끼 걱정하는 어미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26세도 아닌 676세 먹은 자식을 걱정하는 어미의 마음.
이 문장을 핑계로 나는 책은 에라 모르겠다 덮어두고 용필이형이 부른 <한오백년>이나 찾아 들었다.
676세는 좀 너무 긴 거 같고, <한오백년> 들을 때마다 사람의 수명이 오백년 정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백세시대라지만 100년 살지 못하는 것이 대다수이고, 오백년이라 해봐야, 월드컵 125번, 올림픽 125번 보면 끝나는 거, 작년이나 올해처럼 빌어처먹을 코로나 같은 거 생기면 동경 올림픽마냥 건너뛰기도 하는데, 500년을, 그것도 젊음을 가지고 한 480년 살다가 막판 20년 정도 노인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 사람 모두 오백년 살면 인구가 포화될 테니, 그때는 뭐 한 집 건너 하나 키우기라든가, 화성 이주라든가 뭐 그런 거 본격적으로 생기겠지.
사람이 진짜 한오백년 살면, 500세 먹은 어미가 480세 먹은 자식 걱정하고 뭐 그렇긴 하겠다.
모르긴 몰라도 박태원은 어머니에게 사랑을 되게 많이 받고 자란 게 아닐까 싶더라. 이런 문장을 쓴 걸 보면. 소설 초반에 나오는 내용인데 좀 인상적이었어. 박태원도 사람 한오백년 살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싶고. 뭐 아님 말고.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읽기 전에는 이거 약간 한량 스타일의 소설가가 종로 바닥 하룻동안 돌아다니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자아분열 오지는 소설이네...
아직 완독은 못했다... 찬찬히 읽어봐야지.
책이야기 조금 더 하자면 레몽 크노 <문체 연습> 재밌는데 많이들 봤겠지요?
주말에 좋은 책들 많이 읽으시기들.
제가 아는 분은 95넘은 할아버지가 70된 아들보고 뭐뭐 말하시면 그 할아버지 역시 아직도 네네 하고 그럽디다. 나이를 그렇게 드셔도 할말은 계속 생기시나봐요. 물론 전번에 있었던 일. 같은 말을 많이 하신다고는 합니다.
뭔가 따뜻하면서도 슬픈 댓글이네요. 많은 문학 작품의 주요 주제가 '인생무상'인데요. 요즘들어 늙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죠. 80대 노모와 60대 아들이 지하철표를 끊는데 할머니가 창구에 하는 말이 "어른 하나, 애 하나 주세요"였다는. 옛 서구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소재인 거로 봐서는 전세계 어머니들 공통 아닐까 싶네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