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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고 싶어요. 겁쟁이라고요!
인류를 구하셔야 합니다, 박사님.
너 나 구함, 이유 질문?
그야 넌 내 친구니까.......
한줄요약
선의는 공포를 이겨내고, 우정은 더 큰 선의를!
앤디 위어의 우주 3부작이자 신간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아르테미스까지 읽고 앤디 위어에 반해버렸는데 신작을 어떻게 참냐고~~~ 그렇게 해서 곧바로 사고 이틀 만에 완독해버렸다. 정말이다. 687페이지를 이틀 만에 읽어버릴 수 있을 만큼 프로젝트 헤일메리(이하 헤일메리)는 정말이지 감격 그 자체다.
나중에 추가로 쓸 앤디 위어의 우주 3부작에 대한 비교총평을 위해 말을 아껴두겠지만, 헤일메리는 기본적으로 마션+아르테미스의 상위호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고 마션과 아르테미스가 헤일메리에 비해 떨어지냐? 그것도 아닌 게 각각의 특화된 매력이 존재한다. 이건 비교총평 때 쓰도록 하자.
헤일메리의 서사는 크게는 두 갈래로 나뉘고, 실제 구성은 현재와 과거 회상의 반복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서사는 "태양의 표면 온도를 낮추는 외계미생물 아스트로파지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헤일메리 호에 탑승한 라일랜드 그레이스"의 이야기와, "타우 세티에서 만난 외계인과의 접촉, 대면"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인류를 구해야 하는 와중에 외계인까지 만나는 거다. 거의 SF 소재로선 치트키 수준이다.
구성도 나쁘지 않다. 마션의 정적인 구성을 따라가는 대신 아르테미스의 스토리텔링을 이어왔다. 기억을 잃은 라일랜드 그레이스가 헤일메리 호에서 깨어나고, 이후 자신이 여기 탑승하게 된 그 모든 과정이 드문드문 떠오르며 때때로 현재에 처한 문제나 의문을 해결해준다.
과거 회상의 내용은 세계적 재앙에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생존 투쟁을 개인의 시점으로 담아냈다. 특히 이 과정에 개입된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흔히 생각하는 거시적 결정에 대해 수용하거나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인물이 아니란 점에서 독특하다. 오히려 그런 인물인 스트라트에 비해 그저 "과학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을 뿐인 소심겁쟁이에 가깝다. 스트라트와 라일랜드의 갈등이 깊어질 때 스트라트가 라일랜드를 향해 내뱉은 독설이 바로 라일랜드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라일랜드의 정체성이 정말로 소심겁쟁이 과학자에 불과했다면 이 소설은 다소 허무했을지 모른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실패했을 것이다. 라일랜드의 정체성에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선의'다. 사실 선의야말로 위어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다. 마션에선 마크 와트니를 향한 인류의 선의가, 아르테미스에선 아르테미스와 가족을 향한 재즈의 선의가, 그리고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선 인류와 친구를 향한 라일랜드의 선의가 돋보인다.
외계인(에리디언) 로키에 관해선 여러분이 즐겁게 읽으라고 큰 소개를 하지 않겠지만, 위어답다고 해야 할까. 위어의 상상력의 결정체라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조우 못 한 외계인이지 않은가. 그러니 위어가 상상한 외계인 에리디언 로키는 그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첫 만남부터 마지막까지, 주인공과 로키의 우정은 정말 가슴 찡하도록 감동적이다.
어쩌면 이 우정 서사에 대해선 흔하디 흔한 클리셰라고 지적할 수 있다. 어쩌면 식상하기 그지없다고 말할 수 있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적당히 뭉개서 말하면 이미 다 나온 이야기들일 테니까. 난 그런 걸 가지고 위어를 폄하할 생각이 없다. 위어의 강점은 특이한 서사, 충격적인 반전보다 고전적인 가치를 재치있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철저한 조사와 고증 아래에 구현해내는 것이니까.
그렇다. 마션도, 아르테미스도, 그리고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전부 고전적인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갈등의 형태도 고전적이다. 그런데 소재, 발상, 이야기는 가장 현대적이고, 미래적이기까지 하다. 유머야 말할 것도 없고! 참으로 아이러니한 조화 가운데 내가 왜 위어에게 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천지였다.
위어는 특출난 연출을 잘 써내는 편이 아니다. 뭐랄까, 빵 터지는 느낌은 아니다. 위고나 도끼처럼 불탄다거나, 혹은 오 헨리처럼 기막힌 반전을 터트려주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스토리텔링은 다른 고전 작가들에 비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 드라마식 연출에 특화돼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어의 스토리텔링엔 힘이 있다. 탁월하게 구현된 인물성과 설정, 서사가 차곡차곡 쌓여서, 라일랜드의 그 작은 결정 하나에 울며 웃고, 결과에 미소 지으며, 그러면서도 위어의 유머에 어쩔 수 없이 웃어서 기쁜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게 된다. 정말로 위어의 유머는 위어에게 있어서 덕트 테이프 수준이다. 헤일메리 기준으로 말하자면 제노나이트인 셈이다.
소심하고 겁쟁이인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순수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비록 겁이 많은 게 단점이었지만, 그마저 과학자로서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이, 그리고 선의가 매번 그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는 끊임없이 생존을 갈구했고, 생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마지막 갈등 앞에선 생존보다 우정을 택했다. 겁쟁이의 우정은 그 자신조차 뛰어넘을 선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그 결말은......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ㅎㅎ
마무리에 대해선 정말로 마션과 아르테미스를 거쳐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마션에서 느낀 훈훈함이 아르테미스에서 감동으로 발전했고, 헤일메리에 와선 그야말로 깊고 진한 여운까지 남겼다. 그야말로 고전적 가치와 현대적 고증, 그리고 유머의 승리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등급표
필력: A+++
독서 과정에서 느끼는 총체적인 평가, 곧 작품 자체에 대한 인상. 나머지 6개의 기준을 모두 합친 또 하나의 전체적인 기준.
가독성: S
문장을 읽을 때 글이 얼마나 잘 읽히고 술술 넘어가느냐를 기준으로 삼음. 본인 어휘력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으니 주의.
인물: A+++
주인공을 비롯한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개성, 매력, 혹은 대사 센스, 유머까지, 곧 작중 인물을 얼마나 잘 살려내고 잘 써내고 잘 활용하느냐에 대한 기준.
설정: A++
장르별로 기준의 정의가 다르게 작용하겠지만, 공통적으로는 배경되는 시공간과 전후상황 등의 설정들이 가지는 매력과 활용도가 기준.
분위기: A
말 그대로 작품에 깔리는 분위기. 전체적인 분위기, 각 파트별 분위기, 분위기 전환 등의 '장면 인상' 위주의 기준.
구성: A
책 자체의 구성(목차), 문단 구성, 사건 구성, 사건의 흐름, 배치, 플롯으로 퉁칠 수 있는 부분까지. 소설의 골격에 대한 기준.
문장: A
필력이 소설이라는 군집적이고 총체적인 문장의 인상이라면, 문장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부분을 가리키며, 흔히 부르는 묘사도 여기에 포함.
유머: SS
위어의 유머 감각에 비견할 만한 작가는 개인적으로 꼽을 때 오 헨리 밖에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 헨리의 유머는 점잖은 것에 가깝다. 이번 작품에선 마션보다도 순한 맛이지만 여전히 유머 감각은 빛이 난다. 작가의 말조차 재밌는 위어는 정말이지......
나도 오늘부터 읽기시작했는데 넘 재밌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