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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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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성리학은 안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이제현으로부터 전래된 주자성리학과 북송성리학을 구분한다. 이미 고려 중기 송과의 문물 교류를 통해 북송의 학자들과 교류했고  따라서 성리학에 대한 감각은 있었다는 것이다. 


성리학 자체도 우리는 주자가 집대성한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는 주돈이와 정이. 정호 등의 학자들에 의해 조금씩 발전해 오던 것을 주자가 집대성한 것이다. 


북송 성리학이 고려 중기 이후부터 조금씩 고려의 식자층에게 전해지게 되면서 주자 성리학 수용을 위한 배경이 생겨났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며 새로웠던 점은 불교계의 동향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승유억불 정책으로 불교와 성리학은 대비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불교를 대부분의 유학자(성리학자)들이 긍정적, 혹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즉 정도전의 불씨잡변처럼 극단적 불교배척론은 오히려 주류가 아니었던 것이다. 


승려의 유학 이해 수준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고려 승려 중에는 유자로서 과거에 합격했다가 승려가 된 사례도 있고, 유 불 일치론 등이 주장되어 크게 융성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교과서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이분법적이었는지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또한 무신집권기에도 유학의 발전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충선왕 대 신진사대부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신진사대부의 성장에 관한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공민왕 대 개혁정치로 신진사대부가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충선왕의 개혁정치와 사림원 설치로 성리학을 수용한 신진사대부가 정계에 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책이 1997년에 출판된 만큼 아쉬운 점도 많았다. 원 간섭기를 단순한 암흑기로 표현하거나, 삼국유사를 민족적으로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는 근래 새로운 관점의 연구가 많이 나왔음에도 이를 반영 못한 점은 어쩔 수 없는 한계라 하겠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앞에서 말한 교과서 문제는 늘 아쉽다. 교과서의 서술은 학계의 논의보다 20년은 뒤쳐져 있다. 물론 사회인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기르는 데 조점이 맞추어져 있는 교과서에 학계의 최신 학설들을 반영하기는 어렵겠지만 1997년에 나온 책에서도 반박하고 있는 혹은 새로 밝힌 사실들이 아직까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