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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아서 나열 불가...

그중에 카프카가 리스트에 있는 대표적 인물인데 내가 봤을 때 나보코프에 부합하는 가장 가까운 천재라고 생각.

카프카는 우화의 세계를 만드는 데 특출난 재능이 있던 것 같아.

사람의 머릿속에 한 번쯤 스쳐 지나갔던 생각을 구현하는 능력은 정말 경탄스러움.

이는 마치 내가 어렸을 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틀스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내가 작곡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비틀스의 노래를 들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임. 묘한 쾌감과 동시에 압도적 질투심이 느껴짐... 그러곤 다시 인생 재개하다가 문득 멜로디가 떠오를 때면 그 순간 아름다움이 스며드는 거지.

누군가는 마음에 안 들어 할 감상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변신은(변신에 대한 내 짧은 주관이 마음에 안 들지라도 이해 부탁, 그만큼 다양한 해석을 품는 작품이기에 그저 카프카에 감사할 뿐임):

예술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함. 지독히도 끈질긴 심미적 아름다움이 결국 잠자를 한층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켰지만, 카프카가 우리 눈에 조심스레 올려둔 단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진 프리즘은 우리가 잠자를 벌레로 인식하게 하지 않았나 어렴풋이 생각이 들었음. 작중 인물들이야말로 우둔한 벌레들이었고, 감히 아름다움에 상종하지 못하여 마치 때껄룩이 바퀴벌레를 매혹하듯 그저 경제와 풍요라는 걸레짝에 열렬히 매달리게 되는 잠자 가족, 그들의 모습을 보면 벌레 보는 듯이 참으로 징그럽게 느껴짐...

등에 박힌 사과:

Q). 예술적 몽상은 피처럼 붉은 현실의 달콤한 상처에 이토록 연약하단 말인가?

A). 아니다.

조국에서 영원히 추방당했던 이방인 카프카는 아버지의 기준에 벌써 미달한 미숙아 카프카는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 영원히 처리당한 벌레 카프카는 의외로 강한 ‘사람’이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확신할 것이다!):

글에서 맞이한 Samsa의 최후는 생각보다 따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겪은 심각한 우울과 괴로움은 분명 깊은 상처였을 것이다. 카프카는 아마 자신을 벌레처럼 인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본질을... 자신의 본질을... 아름다움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그 아름다움을 묵상하고 끊임없이 고뇌하여 마침내 변신한 그 고귀한 모습은 영락없이 한 위대한 ‘예술’의 모습이다. 잠자는 뒤숭숭한 꿈 속에서 깨어나 새로운 변신을 맞이하였다. 이번엔 진짜다. 이번엔 그의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가늘게 보이는 다리는 결코 징그럽거나 혐오스럽지 않다. 카프카는 예술로 새롭게 변태되었다...

Kafka
Samsa

마지막으로 폴 클레멘스의 변신에 대한 한 줄 평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잠자, 이제 그 허물을 벗어 던지고 카프카의 모습으로 어서 우리에게 오시지요. 그대의 아름다움은 깊고 놀라워 당신이 겪은 매우 고통스러운 괴로움까지 받아들이며 당신을 끌어 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