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올해의 문제소설 중 서장원의 <망원> 가지고 쓴 건 데 피드백 해주심 감사하겠읍니다...

너무 매몰차게만 말하지 않아주심 뭐든 받아들일게요 :)


-


연극의 마지막 날, 막이 내린 뒤에도 몇몇 배우들은 그대로 남아서 멍하니 서서 텅빈 관객석을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한다. 정말로 연극이 끝났다는 걸 실감하지 못해서, 다음 연극은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 말이다. 우리는 항상 변화를 부르짖지만 정작 그 변화가 부닥쳤을 때 가장 멍청해진다. 우두커니 서서 파국의 파도를 가만히 맞으며 부식되어간다. 다시 망부석에서 사람이 되기 위해선 누군가 그 자리에서 끌어내거나, 그 변화 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가 변화 속에서 인생의 다음 막으로 넘어갔을지라도 우리에겐 어떤 흔적들이 남는다. 그렇지만 그 흔적은 전처럼 고통스럽지 않다. 그저, 그땐 그랬더랬지라는 회상만을 남길 뿐이다.


그렇지만 무뎌지는 것과 묻어버리는 것은 다르다. 묻어버리는 것은, 결국 다시 터져나온다. 주인공 역시 그랬다. 묻어버리려고 떠났지만, “메일 한 통에 무너졌다.” 묻어버린 감정들은 언젠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시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돌려버리고 만다. 이석을 만나자마자 주인공은 예전에 그랬듯 자연스레 손을 뻗어 이석의 머리를 정리해주려다가 그만둔다. 아직도 나는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다. 묻어버린 것이 다시 기어 올라왔다. 아마 이석이 다시 사귀자고 하면, 기꺼이 사귈 것이다. 아직 변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모두 동일하지 않다. 주인공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석은 변했다. 이미 주인공과의 일들은 무뎌진 지 오래다. 다음 막인 누군가의 남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과거를 모두 털어놓고 떠나려 한다. “와이프가 개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개를 버리려는 자신이, 스스로를 개만도 못한 놈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알아봤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개는 사라질 테고 이석을 닮은 아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었다.” 거기에 주인공과 망고의 자리는 없어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흔적은 그저 회상만을 남긴다. 그렇지만 망고는 흔적이 아닌 과거의 시간 그 자체다. 진작에 정리된 주인공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젊은 부부의 눈치를 보는과거 무대의 소품이다. 다음 무대를 위해서 전 무대의 소품은 당연히 치워둬야 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에게는 모욕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은 아직 남아있고 개도 남아있는데, 관계만이 바뀌어 버렸으니까. 자신은 이제 치워지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미 자신만의 이야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주인공 역시 내 것으로 분류된 짐들은 내용물에 따라 다시 한번 버릴 것과 남길 것으로 나눴던 것처럼, 어차피 이석은 이미 버릴 것으로 둔 과거를 어디론가 치워버리려 할 것이다. 이제는 그저 귀찮은 것이 되었으니까.


시간의 매정함은 단지 이석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모 역시 시간의 희생양이 되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쯤”, “길을 건너 내게로와 과거에 갇혀서 망부석이 되어버린 주인공을 끌어내 준 진경 이모는 이제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이렇게 시간은 잔혹하다. 쉴 새 없이 우리를 앞으로 떠민다. 무대를 떠나고 싶지 않은데도, 무대를 떠나게 만든다. 오로지 추억만을 남긴 채 진경 이모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그것은 서글프면서도 행복하다. 진경 이모의 마지막은 누군가에게 돌봄받고, 가족들과 친구도 찾아오는 사이에서의 마무리다. 그렇기에 이 관계의 단절은 금새 무뎌질 것이다. 금세 씻겨나갈 것이다. 아름다운 기억만이 향수처럼 남으리라. 다만, 이 아름다운 기억은 너무나도 강렬해선 안 된다. 그러면 미래까지 집어삼켜 버리면서, 과거의 시간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단지 잠시 묻어버리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주인공은 더더욱 향이 진하지 않은 향수를 찾아다닌 것일지도 모른다. “짙고 독한 기억이 아닌, 은은한 기억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짧은 커트머리를 고수했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 그런 수수한 모습으로.


어쨌거나 그렇게 무척 닮았다고하는 이모가 이제 떠나간다. 다만 아직 시간은 남아있고, 그동안 주인공은 결국 향수를 사지 못했지만 이석에게 주려고 샀던 것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주인공 역시 점차 이석과의 기억에 무뎌져 간다. 어쩌면, 그렇게 무뎌진 후에 이석은 다시 주인공과 만날지도 모른다. 연인이 아닌, 그저 친구로. 마치 자신의 남자친구를 낚아채 간 이모의 친구처럼. 10년 전 이모는 미련이 남아 결혼식장에 가서, “모두의 눈에 띄는 짓을 하다 마지막까지 어쩌면 자신의 자리가 되었을 그 식장의 텅 빈 구석을 바라보았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러 무뎌진 채 그 식장을 걸었던 친구와 함께 마지막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것을 화해라고 정의할 순 없을 것이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며 서로 무뎌졌고 그러다 다시 관계가 이어진 것일 뿐이다. 어쩌면, 이 모습이 <굴 드라이브>의 주인공과 반장 사이 관계의 미래상일지도 모른다. 어떤 정의로는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그저 삶의 한 모습 말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고, 그저 남아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아있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능이고 그렇기에 어떤 계기 없이는 다시 일어날 수 없다. 이모에겐 그 계기가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면서 웃고 떠들면서 이모는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과거의 상흔에 무뎌질 수 있었다. 10년 전의 이야기는 흘러갔고, 이젠 주인공이 멍하니 남아있다. 이번엔 이모 덕에 주인공이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결국 다시 걸어가야 한다. 걷다가 만난 또 다른 순간에 이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모와의 추억, “망고를 다시 만난 이야기를 나눈 그 추억은 남아있을 것이다. 이석과의 과거가 이모와의 현재를 통해 무뎌지는 것과 반대로, 좋은 추억이 남은 과거가 변화에 마주친 현재를 무뎌지게 만들어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리고 외로운 주인공에게 손을 내민 주인공처럼, 주인공 역시 늙은 망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관계는 이어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우리에게 그것을 말하고 있진 않다. 다만 이야기를 내밀고 있을 뿐이다. 사유를 통해 이런 다양한 생각들이 열리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 소설은 하나의 잔잔한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주인공과 이모의 시간이 엇갈리면서, 주인공과 이석의 마음이 엇갈리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의미장 속에서, 어떤 맥락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마음이다. 그렇게 맥락을 느끼면서 독자는 사유하고, 그 사유는 나선으로 넓어져 간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느낌은 마음속에 남고, 우리는 걸어간다. 어쩌면 읽기 전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