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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우리의 삶을 휘두르고

우연의 폭력 앞에 우리는 쓰러지며

때때로 우연이 없애버린 미래를 가늠하기에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은 얼마나 온전한가?

한줄요약
우연과 신비, 기묘한 구체성 아래 잠긴 세계관


독갤 호감작가 우다영의 밤의 징조와 연인들이다. 읽은 계기야 역시 호감작가라서......다. 읽어보니 빨릴 만하다고 느꼈고, 그렇다고 극찬할 정도냐? 그건 또 아니라고 느꼈다. 그러니까 겉절이 중에서도 나름 자기만의 스타일과 세계관이 독특하고 확 튀는 게 느껴졌고, 그런 스타일이 불안정하지도 않다. 표제작만 읽어도 우다영의 세계관과 스타일을 다 알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다만 우다영의 세계관이나 내용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진 못하겠다. 잘 쓰는 건 알겠는데 좀 꾸역꾸역 읽는 느낌이 많았음.

단편 하나하나 짧게 리뷰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작품 전체적으로 깔린 기묘한 이질감, 곧 우다영의 세계관에 대해 말해야 될 것 같다. 사실 해설 안 읽고 계속 읽었으면 굉장히 뜬구름에 관념적이라고 생각했겠는데, 해설 읽으니 좀 해소된 느낌.

우다영 세계관에서 중요한 건 '우연'이다. 우연은 말 그대로 불가해하고 불가피한 부조리에 가깝다. 하지만 그 부조리가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에 대한 가치 판단은 우연을 겪게 된 당사자들의 몫이다. 우다영의 덤덤한 문장은 이런 상황 연출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며, 독자에게 이질감을 선사해준다.

자, 그러니 이제 하나씩 짧게 리뷰해보자.


밤의 징조와 연인들

표제작이고, 중편이라 분량이 꽤 있는 편이다. 우다영의 세계관과 스타일을 알기에 가장 적절한 작품이 아닌가 싶고, 바꿔말하면 찍먹 전용 작품이다. '나'와 석이의 연애 이야기인데, 석이라는 인물의 탐구와 석이와 '나'와의 관계 탐구 및 변화 양상이 주된 초점이다.

구체성을 가진 묘사와 관념성을 가진 서술로 나뉘어 볼 수 있는 게 특징이고, 둘이 양립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래서인지 '감성적'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감상적'이라고 느껴진다. 묘하게 거리를 두고 있달까. 관조적이고 덤덤한 문장의 인상은 이런 것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구체적인 묘사를 할 때엔 제법 잘 조형해서 상상이 어렵지 않지만, 반대로 관념적인 서술은 우다영의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다소 어렵다. 다소? 사실 많이 어려울 수도 있다. '나'와 석이의 연애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편인데, 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엔 단순하게 표현하기엔 사이에 숨어있는 것들(우연, 징조 등)의 존재감이 크다.

나는 이런 게 직관적으로 와 닿은 편도 아니고, 잘 읽어낸 편도 아니라 무엇인지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다만 마지막 결말부에 인도에서 만났던 남자와 재회하며 그가 길게 털어놓는 부분에서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아마 우다영더러 작위적이라 하면 이 결말부의 긴 대사처리를 두고 말하는 것 같은데, 나도 이렇게 써서 작위적이라고 느끼는지는 이제 처음 알았다(...)


노크

난해했다. 여기 실린 단편 중에서 가장 불친절한 단편이 아니었나싶다. 이영도의 불친절함과는 다른 것이, 이영도의 불친절함은 "파악할 수 있는 근거는 다 깔아놨으니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라면, 우다영의 불친절함은 "여러분이 이 기묘한 우연의 세계를 자의적으로 주무르고 해석해보세요."라는 느낌이다.

호텔에서 인터뷰하는 선배를 따라 갔다가 선배가 취재하는 사람이랑 한 밤 자게 되는...... 이야기다. 사실 이렇게만 두면 대체 뭐 얘긴가 싶지만, 이게 개연성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우연과 기묘한 환상성 아래에 마구잡이로 진행된다. 딱히 상징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지만 묘하게 현실과 의미의 층위가 나뉘어서 그냥 겉으로 더듬었다간 아무것도 이해 못하는 느낌.

해설은 우다영 세계관 열심히 설명해준다고 이게 뭘 말하는지 얘기도 안 해준다. 사실 해설이 제대로 설명해주는 단편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그냥 우다영스러움의 MAX로 생각하면 될 듯.


조커

소개팅이 한 번 꼬였던 얘기다. 정리하면 이런데, 상황 자체는 소개팅하러 나갔더니 여자는 독감 걸려서 빠져버리고 온 걸음이 아까워 카파에 죽치고 앉아있으니 자리가 없어 자기 앞에 앉은 여자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여기서도 우연이 계속 강조되는데, 여자가 푸는 이야기조차 우연이 강조된다. 우연과 우연과 우연의 우연 같은 이야기.

솔직히 거창한 주제의식이 없어서 깊게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독자적인 우다영 세계관을 고려하면 줄거리와 감상만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다영@은 독특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굳이 남을 가르치거나 설파하는 건 없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생각만큼 많지 않다. 아예 없다곤 안 하겠지만, 여태 읽은 겉절이들에 비하면 덜 사회참여적이랄까. 오히려 소재나 이야기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그걸 자신만의 관(觀)으로 풀어내는 것이고.


얼굴 없는 딸들

날라리 여중생들의 이야기다. 성장소설이었고, 1인칭 유사 군상극을 따르고 있어서 다른 작품에 비하면 직관적인 편이다. 여기서도 우연의 개입과 우연이 일으킨 사건들이 나오지만, 노크나 조커처럼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도 적어서...... 개인적으로 페이지 넘기는 재미는 확실히 얼굴 없는 딸들이 상대적으로 좋았다.

날라리 여중생들의 이야기인만큼 고증에도 신경을 썼는지, 아니면 실제 경험담(목격담)인지 몰라도 꽤나...... 리얼하다. 광기인지 모르겠는데 이게 K-여중생인가 싶다. 1전차=2여고생 공식이 떠오르는 단편이기도 했다. 물론 이 단편이라고 덜 우다영스러운 건 아니고, 마무리는 언제나 우다영스럽다.

우다영@은 어떤 예감, 직감, 징조 같은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우연만큼이나 자주 나오는 것인데, 이는 마치 우연의 불가해함과 비규칙성 앞에 흐려진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를 읽어내는 초인적인 감각으로 해석된다. 어쩌면 나름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우연으로 만연한 우다영 세계는 미지의 공포가 피어날 법도 한데, 이런 예감, 직감, 징조 따위가 그런 공포를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하니까.


미래와 밤

기업국가 얘기다. 기업들이 나라를 사고파는 짧은 엽편. 우다영스러움이 가장 덜하고, 솔직히 발상만으로 쓰고 감성으로 마무리하려 해서 별다른 감상은 들지 않는다. 호주가 페라리에게 팔렸다는 건 기억에 남는다. 뭐랄까, 발상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설명하고 서술하는 부분에서 1회성 재미를 느꼈다. 이걸로 더 늘인다고 재미가 있진 않았을 것 같다.


기분에 이르는 유령들

추측할 거리만 무성한 묻지마 염산 테러 당한 딸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이 사건은 평범한 거라고 쿨하게 말하는 이야기다. 독자 마음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라고 쓴 것 같은데, 솔직히 듀나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가 떠올랐다. 마음대로 상상하라고 밑밥 깔아주는데 딱히 그럴 마음이 안 드는......

뭐 여기서 나름 우다영 세계관에 중요한 얘기가 나온다. 우리의 평범한 시각으로는 우연이 점철된 현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는 얘기.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생성된다는 얘기 등등...... 여기서 약간 우다영이 자기 세계관의 설명을 파편화 해서 각각의 작품에 심어놓은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해설도 우다영 세계관 해설하는데 작품들에서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는 것도 그렇고.

우연의 난해함부터 이해하지 못하면 우다영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얼굴 없는 딸들도 그렇고 여성혐오범죄 소재를 덤덤하게 써서 페미니즘 과점으로도 참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좋겠다 싶었다.



"셋이 모이면 비밀이 생긴다."라는 말을 가지고 여자 셋에 남자 여행객 하나가 끼어들어 새로운 셋의 조합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드러나는 또 다른 비밀들의 이야기다. 우연은 이 이야기의 뒷받침을 해주는 빌드업 요소로 나오고, 중간중간에도 꽤 나오지만 그리 신경 쓰이는 건 아니다.

약간 무리에서 한 사람이 자리를 뜨면 그 사람 얘기를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걸 되게 있어보이게 포장했다. 실제 내용도 그냥 여자 셋이 서로의 과거에서 서로를 오해하고 비밀로 숨겨왔던 행동들이다. 막 파탄날 정도의 비밀은 아니고 그냥...... 뭐랄까, 우다영의 덤덤한 문장 때문인지 몰라도 막 큰 감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크림

아빠 식객인 황과 아빠와 아빠 애인 이야기다. 묘하게 궁금한 황이 돈 들고 먹튀한 이유는 안 알려주고 이 셋의 기묘한 관계를 풀어내는데 집중한다. 물론 그 중심엔 관찰자가 되는 '나'가 있다.

가장 마지막 단편이고 그냥 솔직히 다른 단편들과 차이점을 크게 못 느껴서 마지막인데도 인상에 남은 게 별로 없다. 최은영처럼 어떻게 봐야 할지 대충 알게 되니까 내용의 특이성은 눈에 별로 안 들어오더라...... 그래봤자 형식이나 강조점이 비슷비슷해서.


해설은 로고스니 음영의 기미니 나중엔 웜홀까지 언급하는데, 그런 것보다 해설부터가 우다영을 너무 올려치기해서...... 핵심만 이해하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3번 정도 읽으니까 머리에 들어오더라고...... 쉽게 안 쓴 해설 중에선 손으로 꼽을 듯. 그래도 우다영이 우연을 되게 강조하는 걸 알았으니 됐다ㅎ

여기까지 리뷰 쓴 거 돌아보니까 굉장히 박하게 평가한 것도 같은데, 이건 내 취향을 벗어난 책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젊작상이나 정세랑 같은 작가보단 훨배 잘 썼으니......ㅎㅎ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별로 좋아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우다영의 불친절함은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불친절함이 아니었다.

앨리스 앨리스는 장르라는데 읽어보고 싶으면서도 거기서도 우연 타령이면 되게 빨리 질릴 것 같아서 고민 중이다. 그전에 2019 젊은작가상부터 읽고 리뷰해야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