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imo Rosselli, 시스티나 대경당의 [The Crossing of the Red Sea], 1482
오늘의 독회 본문 : 출애굽기/탈출기 14장 1절 ~ 31장 18절
모세가 홍해를 가르다 (14장 ~ 15장)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다 (16장)
광야를 여행하는 이스라엘인들 (17장 ~ 18장)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받은 각종 율법과 규례 (19장 ~ 다음 독회 내용까지)
10계명 (20장 1절 ~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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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독회 일정 : 2021년 6월 6일 일요일 19시
다음 주 독회 본문 : 출애굽기/탈출기 32장 ~ 레위기 ~ 민수기 10장
다음 주 주요 사건 : 이스라엘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내리다, 이스라엘인이 인구조사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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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인의 불평을 들어보면 사람 사는 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듦. '이집트에는 묫자리가 없어서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끌고왔냐?' '이집트에서는 배불리 먹기라도 했지, 우리를 굶겨 죽이려고 그러냐'. 그리고 이를 말리며 믿고 따르라는 모세의 모습을 보며, 이러한 부분은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듦. 2. 재밌는 점은 이런 불평을 하는 이스라엘인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기적을 보고 살았음. 홍해바다도 가르고, 쓴물도 단물로 바꾸고, 이집트에서 10가지 재앙도 겪고, 아멜렉과의 전투나, 놋뱀 사건이나, 등등... 그럼에도 믿지 않고 불평한다는 게 결국 사람의 본질적인, 본성적인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 같음. 3. 홍해를 가른 사건이 각종 미디어에서는 한 순간에
바다가 갈라지는 멋진 모습으로 나오는데, 성경에는 막상 '밤새도록 거센 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었다고 되어 있음. 3. 구약을 읽다 보면 영지주의자들이 구약의 신은 잔인하고 성격 더러운 신이니까 인정하면 안된다고 했던 게 어느 정도 이해가 감. 신약에서 보여주는 느낌과 달라도 너무 다름. '당시 이스라엘의 표현 방식이 그랬다~'거나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려다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하기는 한다만 감안하더라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기는 함. 야훼와 엘 가설이 거의 정설처럼 된 게 이런 이유인 것 같음. 4.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니게 하여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했다는데, 그렇게 기적을 많이 보면서도 경외하는 마음이 안 생기다니 어이가 없음. 5. 24장에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다고 되어 있는데, 여러전승이 섞이며 집필된 흔적인가 싶음. 6. 모세의 장인은 정말 현명한 사람이었음. 7. 우림과 툼밈.
1은 읽으면서 좀 웃었는데 1이나 2, 만나 이야기에서 언제나 사람들은 믿음이나 대의 이런 것들보다 당장 눈 앞에 급급한 것, 눈 앞에 확실한 것에 더 안심한다는걸 보여주고, 그런걸 보여줄수록 더 믿음을 공고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함. 여기까지 내용이 다 어렵더라도 너의 주 하나님을 믿어라, 믿으면 구해주신다니까 잖음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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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도 분야가 넓어서 그런데, 혹시 관심 있는 분야 말해준다면 아는 선에서 열심히 추천해드릴게요.
[철학자의 신학 수업]이라는 책이 입문용으로 적당하기는 한데 대학교 교양 수업 느낌이라서 내용이 그렇게 깊지는 않구요,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도 괜찮아 보여요. 내용의 깊이나 범위 면에서 적당할 것 같네요.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과 [일곱 ... 신약] 두 권은 핵심적인 중요 구절을 바탕으로 서사적으로 교리를 잘 풀어냈구요, 많이 두껍기는 하지만 [신 :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도 좋아요. 철학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요소도 같이 자세히 설명하거든요.
조금 자세한 서적으로 들어가자면, [그리스도교와 만나다]라는 책이 있는데, 이건 저도 아직 못 읽어봤는데 괜찮다는 평이 많더라구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을 바로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신플라톤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다' 같은 제목의 챕터도 있기도 하고, 아무래도 중세 기독교 신학을 세운 거장이기도 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정말 사랑하는 책이에요. 좀 난이도 있는 서적으로는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라는 책이 있는데 절판되었을 것 같으니 도서관에서 찾아보세요. 완전 옛날 책이기는 한데 어느 정도 베이스가 있다면 재밌게 읽으실 듯합니다.
제가 신학을 모두 다 공부하고 말하는 입장이 아니라서 그다지 좋은 추천은 아닐 거예요... 제가 아는 선에서,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괜찮았던 책 위주로 추천해드려요.
소돔 멸망을 막으려던 아브라함 부분 읽으면서 한 생각이기도 하고 지난주 독회 부분,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 부분, 그리고 홍해 갈라서 탈출하기 직전까지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보통 문학이든 신화든 역사든 읽으면서 가치판단을 '나'나 보통 사람의 기준에서 하잖음. 나라면 이랬을텐데 혹은 일반적인 경우는 이런게 정상인데. 근데 지금 읽고 있는건 성경이고, 믿던 안 믿던 신의 이야기인데 인간의 기준으로 신을 판단하는게 맞는가 생각이 듬.
예를 들어 이집트 땅의 모든 맏이를 죽여버린 열번째 재앙은 인간 기준에선 잔인한 짓임. 그것도 "주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인들을 안 보내줬고 열째 재앙이 일어난거니까 사람 기준으론 싸이코패스 같은 짓인데, 인간 기준으로 신의 성격을 판단하는게 맞나, 아니면 어떻게 판단해야하나 의문이 생김. 옛날에는 나도 구약 신은 성격 더럽고 마음에 안 든다고 깽판쳤다고 욕했고 또 인간이 필요에 의해 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런 생각이 드네. 좀 진지하게 읽고 있어서 그런가
같은 고민을 기독교인들도 하는데, 이거에 대한 반응도 몇 개로 갈리는 듯. 1) 신은 무한한 존재이므로 유한한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2) 그럼에도 우리가 아는 선에서 신의 행동을 변호해보겠다. 3)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은 같은 신이며 이들은 조화롭게 해석될 수 있다. 세 주장 다 읽어보고 생각해보는데도 나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참 어렵더라... 죽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모를 듯.
1. 출애굽기 읽고 기독교에 대한 환상이 깨짐. 한국인들이 개독 개독 하면서 욕해도 성경 속 신은 신성하다는 막연한 느낌 있었는데 이스라엘 인 말고는 그냥 죽여버리고 자기한테 선물 갖고 오라 하고 계속 증명하려 하고 뭔가 쫌생이 신같음; 대인배 면모가 없음. 좀 깬다 - dc App
2. 기독교는 유일신 믿는다길래 성경 속 신이 야훼만 잇는 줄 알았는데 다른 신의 석상도 깨부수라 하고 신들끼리 세력 다툼 모양새 나는 거 보니 다른 신들도 존재하는 듯 함. 그럼 이스라엘인이 아닌 다른 인종들른 굳이 성경을 믿을 이유가 없는거 같은데, 서양을 지배한 종교라는 게 의아함. 당시 사람들은 성경을 안 읽은거 같음. - dc App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달 이후로 성경이 보급됐나?? 그런게 떠오르긴 하는데 성경은 원래 집마다 하나씩 잇는거 아닌가. 이런거 읽고도 야훼신을 믿고 싶을까? 이스라엘 인 말고는 다 외국인이잖아 - dc App
댓글로는 설명하기엔 많이 긴데... 좀 요약해서 말하자면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 이런 말이 있잖음. 서양의 현대 기독교 전통은 모세오경에서만 비롯된 게 아님. 모세오경에서만 비롯된 거면 유대교지, 기독교(가톨릭, 동방정교, 개신교 등)가 아님. 당장 구약만 해도 가톨릭 기준 41권의 책이 더 있고, 기독교에서 가장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기독)와 관련한 책이 27권이 더 있음. 그리고 그 이후에 2천 년을 이어오면서 수많은 교부들과 철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소위
'전통'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잔뜩 있음. 이 내용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관련된 내용을 볼 때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초 정도로만 생각하길 바람. 1.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는데 드는 생각들 일단 다 써보겠음. 1) 기독교의 주류 해석 중 하나가 '신은 무한하기에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성경은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쓰였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임. 좋은 비유는 아닌데, 사람이 개를 키울 때 '하지 마'라거나 '안돼' 같은 식으로 말하잖아, 개한테 '이 가구는 비싼 가구니까 물어 뜯으면 안돼' 같은 식의 복잡한 형태로 말하지 않고. 신이 우리한테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임.
2) 성경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한테는 성경 번역본도 여러 개 읽으라고 권함. 왜냐면 개정개역이나 많은 성경 번역본은 영어 중역이고,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문에서 바로 번역한 판본은 최근 들어서 나와서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음.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의미 왜곡이 일어남. 가령 '지옥', '죄', '마귀', '영혼', '유혹', '은혜', '찬양', '영생', '계명', '천사' 등의 용어는 불교에서 차용해온 용어임. 한국에 기독교가 전해지면서 당시 있던 민간 신앙, 불교, 도교적 전통과 적당히 융합되면서 생긴 일임. (한국 기독교사 같은 책 읽어보면 나옴) 당장 '죄'만 해도 너가 생각하는 죄의 의미와 성경적 의미의 죄와는 많이 다를거임. 히브리어의 죄는 '카타'라는 말, 그리스어의 죄는 '하마르티아'나
'아디키아'의 번역어인데, 셋 다 우리말의 죄와는 뉘앙스가 다름. 3) 신학적인 부분에서 떠나 종교학적인 면으로 볼 때, 이런 '쫌생이' 같은 면모가 이미 현대적인 개념의 신이 아니라는 이야기임. 2천~3천 년 전에 쓰인 책인데 사람들의 윤리 의식이나 도덕성, 사회문화적인 개념들이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음. (애초에 사회 문화 이런 용어도 근대에 되어서야 나왔고) 그 당시 사람들의 기준으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쓰인 책이다보니 우리와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음. 이래서 성경을 읽을 때 공부를 더 해야하는거고, 독회 열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함. 가령 창세기를 더 잘 이해하려면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해 당대 다른 근동지역의 문화나 신화를 이해해야함. 왜냐면 창세기는 '너네들이 믿는 신과 우리 신은 이렇게
나 다른 신이다'는 식으로 쓰인 책이거든. 지금은 믿기 힘들겠지만 다른 신화 읽고 창세기 읽으면 오히려 창세기의 신이 더 현대적이고 인간적인 느낌이 들 거임. 대표적으로 나오는 예시가 인간의 창조인데, 다른 신화에서는 인간은 다른 신을 위해 노동하는 존재거나 신들이 인간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그런 존재로 묘사됨. 그런데 창세기에서는 신이 직접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만들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함.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성경'만' 읽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잖음.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음.
2.도 이어서 먼저 답변하자면, 2천년 동안 그 전통이 이어오고 아직도 인류의 30% 이상이 기독교를 믿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임. 지금까지 수백 억이 넘는 사람이 성경을 읽었을 텐데 그 중에 성경을 이렇게 각잡고 읽은 사람이 없을 것 같냐 ㅋㅋㅋ 이렇게 독회에 참여해서 알만한 내용이면 꽤 많은 기독교인들도 알고 있을 거임. 물론 문맹률이나 활자 보급 등의 이슈가 있기는 한데, 이에 대해서도 역시 할 얘기는 많음. 가령 1세기 기독교에서는 '공동 읽기'와 같은 활동을 하면서 같이 공유한 부분이라든지... 이 얘기도 할 게 많은데 여기서 줄이고
2. 이 부분에 좀 더 첨언하자면, 이를 유대교가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은 신화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음. 마치 단군신화를 보고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이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드는 다른 예가 '야웨'라는 말과 '엘', '엘로힘'이라는 식으로 '신'을 가리키는 히브리어가 다르다는 것이 있음. (한국 성경에서는 '하느님'이나 '주님' 정도로 번역됨) 야웨라는 유대인들의 전쟁의 신과 엘이라는 가나안 토속 신이 섞였다...는 주장인데 이거에 대해서도 찾아보면 꽤 재밌을 거임. 구약에서 아이까지 모조리 죽여라고 명령하고, 질투하는 그런 신의 모습이 전쟁의 신 '야웨'의 모습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는 주장임. 대충 말하면.
이스라엘 말고는 다 외국인인데 성경을 믿는 이유는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신약에 있고, 구약에도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옴. 가령 신명기 14장 29절 등에 보면 십일조가 '이방인'과 과부, 고아 등을 먹여살리는 그런 돈이라고 나옴. 기독교에서는 구약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이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잃지 않았음. (적어도 교리적으로는) 이방인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 흘러들어온 난민이거나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들까지도 품어줘야한다는 게 요지임. 신약으로 가면 오히려 이런 얘기가 넘쳐남. 누가복음 독회하면서 실컷 얘기했으니까 이 부분은 생략함. 근데 여기서 많이 의아하기는 할거임. 왜 갑자기 이런 태도 변화가 생겼는가?
많이 나오는 예시가 '유대인은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보이기 위해 대표로 택한 민족일 뿐이지, 그것이 유대인이 특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임. 당장 모세오경에만 해도 멜키체덱이라는 신비로운 제사장이 먼저 하느님을 믿고 있었고(아브라함과 동시대 사람이라 유대인이 없던 시대임), 요셉이 총리로 들어간 그 파라오는 하느님을 인정하고 요셉을 적극 지원해줬었음. / 혹은 일반은총(보편은총)과 특별은총 이런 얘기로도 갈 수 있을거고...
구구절절 썼는데 아무튼 답변을 요약하자면, 1. 그런 부분이 있어보이기는 하는데, 모세오경 단 하나, 그것도 한국어 번역본 하나만 읽고 판단하기는 좀 섣부른 것이 아니냐. 2. 그럼에도 믿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임. 늦게라도 항상 독회 참여해줘서 고맙다. 참여하는 사람 없어서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댓글이 늘 힘이 되네 ㅠ 좋은 하루 보내시길.
게을러서 독회를 못 따라가니 내가 되려 고맙지. 항상 댓글로 상세한 설명 해줘서 고마워 참고 하고 계속 읽어내려가 볼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