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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판 표진갑다. 난 꽤 맘에 든다. 워크룸에선 더 이쁘게 나오길...

참고로 난 영역본 그로브 프레스 쓰리 노벨로 읽었다. 번역은 나와 구글 번역기가 했다. 발번역 ㅈㅅ




워크룸프레스에서 국역본이 나오면 다시 읽고 감상문 쓰려고 했는데,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고~ 기왕 읽은 거 까먹기 전에 대충이라고 써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써본다.



일단 말론 죽다를 살펴보기 전에, 잠깐 몰로이를 되짚어봐야겠다. 이럴 때면 저번에 썼던 몰로이 감상문을 지운 게 무척 후회된다. 아무튼, 몰로이는 말론 죽다의 전작으로, 베케트 소설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몰로이 1부는 몰로이가 어머니를 찾아헤매는 과정을, 2부는 탐정 모랑이 몰로이의 흔적을 쫓아가는 과정을 회상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시간상 2부가 먼저 쓰이고, 뒤에 1부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2부에선 모랑이 몰로이를 찾아 헤매다 숲 속에서 한 철을 보내고 돌아와 사건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때 모랑의 모습은 점점 몰로이의 모습과 닮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모랑은 몰로이가 되고, 자신이 모랑임을 잊게 됐을 쯤, 모랑이 몰로이를 찾아 헤메던 이야기를 어머니를 찾아가는 자신의 모습으로 변주한다. 이게 몰로이 1부의 내용이다. 



연습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 이게 어디에서 왔을까? 모르겠다. 난 그냥 찾아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마침 필요했을 때 말이다. (...) 첫 장에는 암호와 여러 가지 기호와 도표들이 있었고, 여기저기 짧은 문구들이 쓰여 있었다. 계산들이겠지, 하고 추측했다. 그것들은 갑자기 중단된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들이 너무 성급하게 말이다. (...) 나는 줄을 긋고, 아니, 줄조차 긋지 않고, 마침내 나는 곧 완전히 죽게 되리라, 등등 하고 써내렸지만, 뒷장은 공백이었는데도, 거기까진 쓰지 못했다 – p.203



그리고 두 번째 작품 말론 죽다에서 몰로이는 죽음을 앞두고 전신마비에 가까운 상태로 침대 위에 누운 말론이 되어 나타난다. 이는 몰로이 1부와 매우 닮은 p.176의 장면과, 말론이 우연히 노트를 찾고 앞에 쓰여진 내용들에서 알 수 있다. 이 기호와 도표들에 대한 내용은 몰로이가 자기가 글을 쓰고 있는 노트에 대한 묘사와 일치하고, 너무 성급하게 중단되어 버린 이야기라는 묘사에선 제1권인 몰로이의 결말부분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말론은 그 이야기들 뒤에 줄조차 긋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쓴다. 이렇게 몰로이와 말론 죽다가 이어진다. 



기다리는 동안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자,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지금까지와 똑같은 이야기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전분다. 아름다운 이야기도, 추한 이야기도 되지 않을 것이다, 차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추함도 아름다움도 열정도 그 안에선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거의 생명력이 없는 이야기가 되겠지,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내가 뭐라고 했지? 상관없다. - p.173


하지만 내가 어둠 속에 홀로 있다는 걸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놀이을 하려는 생각을 끊고 형체 없음과 묵언으로, 호기심을 잃고, 어둠속에서, 손을 뻡고 비틀거리며, 숨는 것으로 나 자신을 몰아갔다. 나는 그런 엄숙함 속에서, 거의 한 세기 가까이, 결코 헤어날 수 없었다. 지금부터는 달라 질 것이다. 지금부터는 놀이을 하는 것 외엔 그 무엇도 하지 않겠다. 아니다, 시작부터 너무 과장하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부턴, 마음껏 놀이을 즐기겠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보다 더 잘 못 할 수도 있다. 아마 지금까지처럼 암흑 속에서, 놀 거리도 없이, 홀로 내버려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상대로 놀이을 하겠다. 이런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된다. - p.174



말론은 자신의 임종을 기다리는 동안 따분함을 견디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하지 못했던 어떤 놀이를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바로 이 놀이가 이제까지의 이야기와는 다른, 상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말론은 사포, 맥맨, 레뮈엘의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말론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사포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결국 사포의 이야기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돼버렸다며 탄식한다. 그러면서도 말론은 계속해서 사포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진행되면 될수록 이야기가 계속해서 첨삭되고 수정되며, 너무 지루하다는 말론의 불평불만이 삽입된다. 게다가 이야기가 점점 말론 자신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자신과 사포의 이야기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결국은 사포의 이름을 맥맨으로 바꿔버리고, 나이와 배경까지 180도 변경시키기까지 한다. 하지만 모랑과 몰로이가 동일인이었던 것처럼 사포와 맥맨도 이름만 바뀐 동일인에 불과한다. 게다가 숲속을 헤매다 누군가에 의해서 집으로 옮겨진 몰로이처럼 맥맨도 숲속을 헤매다 누군가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옮겨진다. 말론은 또다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버린 것이다. ‘거짓말이 아닌 것은, 스스로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챌 수 없도록 계산되지 않은 말은 하지 않겠다.’(p.201)라고 맹세하기도 했지만, 말론은 번번히 실패하고 괴로워한다. 



또는 도끼로도 또는 망치로도 또는 지팡이로도 또는 주먹으로도 또는 상상 속에서도 꿈 속에서도 내 말은 절대로 그는 절대로

또는 연필로도 또는 지팡이로도 또는

또는 빛 빛 내 말은

절대로 그는 절대로

절대도 그 무엇도

그곳엔

아무것도 – p.280



말론의 임종이 가까워질수록 연필은 점점 짧아지고,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서두르게된다. 결국 마지막엔 모든 것에 질려 자기 이야기의 인물들을 모두 죽여 없애버리겠다 다짐하고, 레뮈엘이란 인물을 만들어 모두 살해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결국 실패할 뿐이라는 깨달음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 그렇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레뮈엘이 다른 이들을 죽인 것을 다시 부정하는 장면으로, 작중 유일하게 긴박한 느낌도 나는 장면이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선 말론도 점점 정신을 잃어가면서 글을 쓰다가 깜빡 잠에 드는 것처럼 문장이 완성되지 않고 중간에 끊겨버린다. 마침내 말론은 문장의 파편들만 남기면서 죽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이 대충 말론 죽다의 스토리다. 내가 워낙 영어를 못하는 탓도 있고, 애초에 책 자체가 워낙 어려워 별로 이해한 게 없다. 그래도 대충 추측하건대, 몰로이에서는 작가가 되는 과정과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경험을 그린다면, 말론 죽다는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과 무언가를 기다리는 경험을 그렸다고 생각된다. 



이 얼마나 지루한가. 더군다나 이게 내가 말하는 게임이란 것이다. 결국 나는 또다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끝끝내, 나는 다른 이야기로 거짓말을 하는 게 불가능한 것인가? - p.182


오늘 밤엔 기필코 거짓말이 아닌 것은, 스스로의 진정한 의도를 의심하도록 계산되지 않은 말은 하지 않겠다. - p.201


크게 실패하고, 위안을 받고, 휴식을 취하고, 나는 다시 시작한다, 시도하고, 살고, 살게하고, 나에게 있어서나, 타인에게 있어서나, 타인이 되도록 노력했다. 이 모든 게 얼마나 헛된 일인지. 설명할 시간은 없다. 나는 다시 시작한다. 이번엔 조금씩 조금씩 목적을 바꿔서, 이제부턴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하기 위해서. - p.189


전부 변명일 뿐이다, 사포와 새들, 몰, 농부들, 서로를 찾아다니지만 서로 엇갈리는 도시의 사람들, 더 이상 날 즐겁게 하지 못하는 의심들, 내 상황, 내 재산들까지, 주제에 도달하지 않고 벗어나 있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 p.269



앞서 말했듯이 말론은 자신의 임종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이야기를 짓는 일종의 놀이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결국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결국 모두 헛된 변명이며, 계속해서 실패만 반복할 뿐이다.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행위 자체가 실패할 수밖에 없고, 글 쓰는 목적은 결국 조금 더 나은 실패를 목표로 할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애초에 글쓰기의 동기조차 임종 때까지의 무료함을 덜기 위해서였듯, 말 또는 이야기의 의미는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내 이야기는 모두 헛소리니까,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는, 비록 매일 매일이 반증으로 넘쳐나지만,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 숨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 그냥 농담 따먹기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질 게 뻔한 게임을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 그편이 건강에 더 이롭다. - p.227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끝나는 순간까지 기고 뒹굴어도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사람이라면 영원히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나고 허튼 짓임을 알면서도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 온다. 그리고 (예를 들어) 당신이 죽는다 해도, 너무 늦은 것이다,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당신은 포기할만한 기력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 p.234


공포에 질려 흐릿한 눈빛이 오래도록 간절히 바란 모든 것들 위에 비참히 매달린 채,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린다, 진실된 기도를,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 기도를. 그리고 희미한 만족의 숨결이 죽어있던 동경을 되살리고 침묵의 세계에서 한 속삭임이 태어나, 이제서야 절망하다니 너무 늦었다며 나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 p.270



하지만 이야기는 자기 삶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계속 살아가기 위한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기다림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다림이 곧 이야기라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말론이 숨을 거두는 순간 말을 끝맺지 못하듯, 우리가 침묵하는 건 죽음의 순간뿐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엔 항상 실패로 돌아가겠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와 질 게 뻔한 게임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 편이 더 이롭다.


또 이러한 대목은 고도를 기다리며나 엔드 게임 같은 희곡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포스트 아포칼립스 스러운 배경으로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곳에서 그저 시간만 죽이고 앉아있는 함과 클로브.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함과 클로브의 경우엔 기다릴 것 조차 남지 않았다. 이런 인물들이 마구잡이로 내뱉는 말들은 결국 자신들의 무기력한 상태를 위로하는 일종의 진통제 같은 역할이기도 하다. 함이 끝임 없이 찾아대는 진통제도 결국 클로브와의 대화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려 이제 포기할 수 없지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지금 절망한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자살한다 치더라도 이미 너무 늦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다릴 수밖에 없고, 죽음의 순간까지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잠들 듯이 죽은 말론, 불행 속에서도 유머를 찾아 웃으며 죽은 넬처럼 이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결국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런 병적인 문제들은 접어두고, 내 기억이 맞다면 2,3일 내로 찾아올 내 임종에대해 이야기해보자. 그 순간에야 말로 머피, 메르시에, 몰로이, 말론의 이야기가 끝나게 될 것이다, 무덤 너머에서도 이야기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 p.229



베케트는 이 소설 3부작을 쓰면서 받은 스트레스 풀이로 취미삼아 고도를 기다리며를 썼다고 밝혔다. 정확하게는 말론 죽다를 쓰고 이름붙일 수 없는 자를 구상하던 단계였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내 감상에 따르면 기다리는 대상은 곧 죽음인데, 이 무덤 너머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마 작가도 이 무덤 너머의 이야기를 연기하고, 아직은 살아서 기다림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어서 고도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부작의 마지막인 이름붙일 수 없는 자에선, 비록 말론은 죽었지만 영혼만은 남아 고독한 독백을 이어갈 것이다. 




아직은 불확실하고 단편적인 감상밖에 없지만, 3부작을 끝까지 다 읽고, 해설도 꼼꼼하게 읽고 나서, 완전한 3부작 감상문을 쓰는 게 목표다.


말론 죽다는 영어판으로 읽는다고 날림으로 했지만, 이름붙일 수 없는 자는 기쁘게도 번역본이 있다 ^^ 


귀찮지만 열심히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