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0년대에는 서양에서 상업혁명을 거쳐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농업혁명을 통해 농업 생산성도 급격히 올라가는 시기였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사회의 지도층이 생산활동을 기피하면서 소득이 없어 가난하니 세금을 못 내겠다고 반발했다. 문제는 다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장된 통계이기는 하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양반이라 해서 생산활동을 기피한다면 국가의 생산체제에 중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임금을 비롯한 국가의 최고 정책 결정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기된 문제인데도 이를 통상적으로 처리할 뿐, 심각한 논의를 하지도 않았다. 양반의 체면과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그리도 중요했는가? 굶어 죽더라도 농공상의 직업에 종사할 수 없는 사회적 족쇄가 있었는가?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지위가 박탈되면 상공업에 뛰어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중국의 사대부들도 벼슬길에 들어설 기회가 없으면 지역에 거주하며 농장을 경영하거나 상공업에 종사했고 지역의 부자들 중에 사대부 출신이 많았다. 엄격한 신분제를 견지했던 프랑스에서도 상업의 유용성을 인정해 17세기에는 귀족들의 도매업 종사를 허용했다. 이어 18세기에는 새로 작위를 받는 도매상인들이 계속 상업에 종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유독 조선의 양반은 굶주리더라도 책 읽는 것, 관직 이외에는 다 하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조선의 양반들은 허례허식에 목을 매고 상공업을 천시했고 체면 때문에 차라리 가난을 택했다. 한 세기 후에 조선이 강대국들에게 휘둘린 것은 경제력이 빈약했기 때문인데 조선의 조정과 양반 지배계층은 18세기 후반에도 경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돈까스도 사무라이가 만들었다더라 - dc App
이 개새끼는 꼭 한번씩 개짖는 소리 하더라
돈까스를 뭔 사무라이가 만들어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