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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재 시점에서는 상업성이 부각되는 대중매체이다. 지금은 할리우드를 필두로 한 전 세계 영화계에서 상업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재건기인 50년대와 60년대에는 국가선전과 계몽이영화의 주 목적이었다.사전검열제도 등으로 지나치게 성적인 영화와 상업적인 영화는 상영이 금지되었고, 국가가 원하는 반공이나 민족 등의 구호를 담은 영화가 주로 상영되었다. 


물론 상업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범위는 제한되었고, 문화의 다양성은 탄압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적 재건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였으며, 당시 대한민국의 국가체제가 얼마나 잡혀 있지 않았는지에 대한 방증이었다. 


영화로 지속적으로 반공이나 국가재건 등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경제적, 사상적 재건이 어려울 정도로 대한민국은 허역한 국가였고, 제대로 된 문화조차 없었다. 


선전을 위해 군사정부가 세운 '국립영화제작소' 덕분에 한국의 영화기술이 발전한 것은 이를 보여준다. 그 당시 문화(선전) 영화의 수준이 그리 높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정부 측에서 들여오는 새로운 기기가 아니면 좋은 영화제작을 못하는 것이 당시 저개발국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5~60년대의 기간동안 영화는 국가선전의 도구로 이용되었는데, 이는 일제의 선전전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사실상의 전시상황에서 국민에게 메시지를 던지거나 국가를 홍보하여 북한과의 재건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정부의 다급함이 미국을 상대로 어떻게든 총력전을 벌여야 했던 일본 군부의 조급함과 닮아 보인다.


현재 대한민국의 영화산업은 상당한 궤도에 올랐다. 망작들도 많이 나오지만, 어느 정도 세계에서 인정하는 영화시장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그러한 개판에서 50년 만에 이 정도 수준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한편으로 감격스럽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은 비단 경제 분야만의 말이 아니라 문화 분야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