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묶인 자들의 비루함으로, 수고롭고, 부끄럽게>
김애란의 잊기 좋은 이름, 이라는 산문집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고 있는데, 이 문장이 나오네.
어느 소설가는 밥벌이의 지겨움? 이라고 했지만, 왜 밥을 벌어먹어야하는
직장에선 나는 비루해지고 수고로워지고 부끄러워지는지 모르겠다.
독붕이들아, 니들 집에 돈 많으면 직장같은 거 갖지마라. 책만 읽어. 책만 읽는 삶도 괜찮아.
아니 될 수 있으면 좋은? 직업을 가져라. 꼬옥.
아래쪽 직업은 인간의 밑바닥을 보고, 보게 하고, 보이게 한다.
자신의 바닥이든 남의 바닥이든. 삶은 체험하지 않을 것들은 안해도 돼.
인간은 고통을 견디면 성장해지는 게 아니라 일그러지는 거야.
좋은 직업은 없음. 조직은 조직대로 그 속성상 반드시 폭력적이고, 내 능력과 자긍심에 일치하는 직장은 대부분 매우 높은 수준의 업무 강도를 요구하고 그건 바로 이어서 생물학적 피해를 유발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법. 몸이 상해도 즐겁고 보람있게 할 것이냐 무능한 사람이 되도 속편하게 살 것이냐. 직장 생활은 그 선택이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