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회-양혜왕 장구 상
1- 하필왕리
이 편에서 맹자는 양혜왕과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양나라라고 표현하는걸 보면 전주에 말한대로 위가 동으로 서로 남으로 전쟁에서 지고 쪼그라든 상태임을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전쟁에서 진 왕은 이걸 뒤집을 수 있는 이익을 맹자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나라를 이롭게(부강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 물음에 맹자는
"왜 왕께서는 하필 이를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만이 있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한 문장이 맹자라는 책이 무엇을 위한 책인지를 보여주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시대를 끝낸 진나라는 법(여기서의 법은 근현대의 법치국가의 법과는 다른것을 유념해야 합니다.)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 나라와 왕을 부강하게 만듭니다. 이런 부강함을 비유하자면 진나라는 줄기를 세워 거대한 나무가 되었고 주변 6국은 진나라라는 거목에 그늘때문에 클 수 없고 결국 메말라 죽고맙니다. 그러나 그런 진나라는 뿌리(각 나라의 백성)를 튼튼하게 하지 못하고 그저 키만 큰 나무가 되었기에 주변국들이 사라지자 쓰러지고 맙니다. 이 후에 한나라는 유교를 바탕으로 하여 이후 중국에서 한은 하나의 정체성이 됐습니다.
이게 바로 맹자가 표현한 인의가 우선 이는 인의를 바탕으로 하면 따라올 것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여민해락
이 전과 마찬가지로 양혜왕과의 만남을 묘사하는데 왕은 늪가(연못)에서 기러기와 사슴을 보며 맹자에게 묻습니다.
"현자도 이런 것을 즐깁니까?"
현자도 이러한 자연환경을 즐기는지에 대한 가벼운 물음이지만 맹자는 여기서 왕도정치를 끌여들입니다.
"오직 현자가 되어야 이런것을 즐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즐길수 없습니다."라는 말에 덧붙여 주나라의 예시를 말해주면서 주문왕도 이러한 자연환경을 만들고, 폭군 탕도 공원을 만들었지만 문왕은 백성과 이를 함께했기 때문에 즐길 수 있었고 탕은 그렇지 못했다.
가벼운 물음에도 왕 또한 이를 즐기고 싶으면 백성과 함께하라는 것은 양혜왕도 그런 왕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오십보백보
이번에 왕은 자신은 해마다 가뭄이면 백성을 위한 정책을 세우는데 어째서 백성의 수가 늘지 않음을 의아해 합니다. 이에 맹자는 전쟁중에 오십보를 도망간 사람이나 백보를 도망간 사람이나 결국은 같다는 말로 비유하며 왕이 전쟁을 좋아하고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한다면 가뭄은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이기 때문에 결국 백성은 모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이인여정
이 편또한 전편의 연속하여 바라 볼 수 있겠습니다. 몽둥이로 죽이나 칼로 죽이나는 말을 확장시켜 칼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 같다. 지도자는 정치를 통하여 백성을 배불리게 함이 맞는 것이지. 자기 집에 고기를 늘리고 마굿간에 살찐말을 두게 하는 것은 짐승이 백성을 죽인것과 다름이 없다. 곧 지도자로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5- 인자무적
배경에서 말한 것처럼 춘추의 패자 진(晉)은 한,위,조 삼국으로 나뉘고 위나라는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혜왕대에 진(秦)에게 서쪽을 제에게 동쪽을 빼앗기면서 혜왕의 아들도 전사했으며, 남으로도 초나라에게 욕보이는 삼중고를 겪었고 왕은 이에 대해 복수를 하기 위해 맹자에게 묻습니다.
그러나 맹자가 대답한 것은 복수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사방 백리만 있어도 왕노릇 하는데 문제 없다고 합니다. 혜왕입장에서는 답답하겠지만 결국 지금 군사를 일으키면 안그래도 작은 위나라는 이길 방법이 없으니 참고 어진정치를 통해 부강해지면 그때에는 아무도 적수가 되지 못할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6-불기살인
양혜왕이 죽고 양양왕이 즉위한 후 맹자를 만나 누가 통일을 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왕이 물은 심정은 비록 지금 위나라가 미약하나 왕이 통일을 할 수 있을거라는 대답을 원했을 겁니다. 그러나 맹자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람이 통일을 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전국을 통일한건 누구보다 사람을 많이 죽였다 할 수 있는 진나라이겠지만 결국 그 진나라는 이대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버립니다. 결국 혼란스러웠던 중국을 하나로 묶은것이 유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에 수나라의 양제 또한 고구려 침공을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결과 강대했던 제국이 속부터 망해버리고 맙니다. 이만큼 전쟁을 한다 해도 내부부터 단속하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7-불인지심
맹자는 나라를 옮겨 제나라로 갑니다. 여기서 만난 제선왕이 바로 앞서 위나라를 침공해 아들을 죽인 상대입니다. 이 왕은 대단히 자신감에 넘쳐있고 춘추시대의 두 영웅인 제환공과 진문공의 얘기를 듣고자 합니다. 그러나 맹자는 공자의 제자들은 이 두 패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꼭 듣고 싶다면 왕도의 대한 얘기를 하겠다고 하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백성의 왕이 곧 왕자 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에 제 선왕은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냐 물었고 맹자는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왕이 소가 제사에 끌려가는 걸보고 안쓰럽게 여겨 양으로 대신하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부분은 그다지 이해가 안 가기도 합니다. 소는 안되고 양은 된다고 하니 양이 소보다 싸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라고 생각이 들죠. 맹자에서도 이를 말합니다, 가까운 것과 먼 것 본 것과 보지 않은것은 다른 것이다. 소는 왕이 보았기에 그 소가 죽는 것이 안쓰러운 것이지만 양은 보지 못하였으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것이다. 이러한 은혜가 백성에 미치게 한다면 그게 왕도인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가까운것과 먼것의 차이는 당시에 유행하던 묵자의 사상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묵자는 내 아버지도 옆집 아저씨와 같게 대하라는 박애 사상으로 유명했는데 이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왕이 패업에 관심을 갖던 것을 돌려 왕도정치의 배경을 심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이 양혜왕 상편 내용이었고 이에 대해 드는 자유로운 생각이나 의문점에 대해서 댓글로 써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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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왕 하편 배경
첫장에 나온 제나라는 강태공의 후손들이 다스리던 나라로 춘추시대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명재상 관중과 후대의 제 경공을 강대국의 반열에 올린 안중, 그리고 천재 전략가인 손빈등 명신하들이 있던 나라입니다. 이러한 제나라는 강씨에서 전씨로 역성혁명을 통해 왕조를 바꾸었으며 제선왕 대에 이르러 진나라와 거의 양대강국으로 꼽히던 나라입니다. 이 점을 유의해서 읽으시면 될거 같습니다.
양혜왕도 억울한 측면도 있지. 부국강병은 열국들의 당면과제였고 지배층에게 주어져 있던 보편적인 난제였는데 하필 물어본 사람이 맹자여서 영원토록 박제당함.
그런 감도 있긴 하지. 근데 양혜왕은 애초에 평타도 못치고 있던 상황이라 쉴드 못쳐줌ㅋㅋ
평균 이하였다면 뭐 할 말이 없네. 그래도 교과서에 실려서 2,500년 동안 한중일 지식인들에게 비웃음거리 된 걸 생각하면 역시 좀 불쌍함...
나도 이번에 읽으면서 '인의이이의, 하필왈리'를 다시 보게 됐음. 義의 지위가 격상되어 仁義로 묶이는 순간. 그래서 그래서 맨 첫장에 두었나 싶음. 불인지심은 친소의 구분이자 仁의 근본이기도 해서, 뒤에 나오는 측은지심이랑 같이 봐도 좋을 것 같음.
본인은 그동안 유학경전을 자기수양, 인성함양의 목적으로 읽었는데 항산과 항심의 논의는 「맹자」는 물론이고 유학이라는 학문은 개인의 수양이 아니라 치국에 첫번째 목적이 있다는걸 다시 상기하게 됐음. 나한테 적용할때 좀 신중하자는 생각.
다음 독회는 본인 시험 중간에 끼어있어서 늦게 참여할 수도 있을 것 같음. 최대한 참여하려고 함
대학에서 나온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니까 기본적으로 그 두개가 서로 다르지 않은거라고 생각한거일수도. 참여는 자유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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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도 연장선인거 같음. 군사정권이 물러난 이유도 결국 경제성장에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
김재익 수석 아들이 왜 아버지는 군사정권을 위해 일하냐고 묻자 중산층을 키워야 장기적으로 민주화가 된다고 답했다는 일화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