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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결정론은 인간 사고의 내용과 구조가 그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다. 북한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오직 친애하는 수령님을 향한 사랑만이 존재한다. 그 것은 로맨틱한 사랑이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 것의 가능성조차 배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 사람들은 사랑을 로맨틱한 사랑으로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로맨틱한 사랑을 하지도, 그 것이 가능한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는 어느 날 한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그녀는 곧 그 것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예고 없이 나타난 정체불명의 외계인들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고 그들이 지구에 온 이유를 밝혀내라는 임무를 국무성으로부터 부여 받는다.

거울처럼 투명한 공간에서 나타나는 두 외계인을 상대로 루이즈와 물리학자 게리, 다른 학자들, 군 관계자들은 그들과 소통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팔다리 역할을 하는 칠지를 가졌기에 헵타포드 (Heptapods)라 이름 붙여진 외계인들은 표음문자를 사용한다.

그들의 언어체계는 인류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인류가 정형적으로 문자를 적는 것 (예를 들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과 비교해, 그들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한번에 여러 획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하나의 문양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류의 문자로 문장을 적어 나갈때는 목적어든 서술어든 문장을 적어나가며 수정을 할 수 있지만, 헵타포드의 문자는 표현하기 전부터 이미 표현의 시작과 완결을 한 문양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읽을 수 있는 문양을 말이다.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4차원 이상의 외계에서 온 생물들이기에 이러한 언어체계가 가능한 것이다.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기에 시작과 완결은 공존한다)

이런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며 점점 루이즈는 그들의 언어체계를 체득하게 되고, 과거를 보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게 된다. 그녀의 남은 반 세기와 딸의 반의 반 세기 인생을 포함하여서 말이다.


본 작은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헵타포드와 루이즈의 이야기 사이에 루이즈의 딸, 그리고 게리와 관련된 미래의 에피소드들이 끼어든다. 책의 말미에 가서야 이 것이 헵타포드처럼 사고할 수 있게된 주인공의 의식적인 흐름을 따라간 형식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다소 어렵고 학술적으로 느껴지는 헵타포드 이야기 사이에 들어간 루이즈의 딸과의 에피소드들은 작품에 인간미를 더 한다. 그것이 딸의 마지막을 포함할 지라도 말이다. 게리와 관계가 깊어진 루이즈는 게리 사이에서 아이를 갖기로 하는 걸로 작품은 끝이 나고, 같은 내용으로 책이 시작한다. 루이즈는 이미 게리와의 관계의 끝을 알고 딸의 이른 죽음을 안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꺼이 운명을 따른다. 여기에서 그녀가 느끼는 건 무력감이 아니라 삶의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겪는 여정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녀의 선택에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언어결정론이라는 이론을 캐릭터가 외계의 언어를 배워 시간을 넘나드는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라는 모티브와 결합한 작가의 발상이 너무나 참신하다.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다. 나는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한다. 영어를 구사할 때 나는 더 외향적이고, 낯가림이 적어진다. 다른 사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 구사자들 사이의 나와 영어 구사자들 사이의 나는 다르다. 영어 구사를 할 수 있게된 이후로 나라는 사람 자체가 변화한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다른 언어 체계를 배워 인간이 변화한다는 설정은 그런 점에서 나도 공감이 되었다. 가장 처음 읽게된 테드창의 단편인데, 앞으로 다른 단편들도 쭉 읽어볼 계획이다. 정말 인상적으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