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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것의 종류와 크기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연 중에 조연인 쥐스탱은 에마가 죽자 무덤 앞에서 흐느낀다.
소설 전반에 걸쳐 쥐스탱은 주인공 뒤 풍경 중 작은 한 부분처럼
나오기에 그의 욕망 또한 소박하게 보였다.
그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하녀는 쥐스탱의
욕망을 나이가 어리다고 나무라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에마의 무덤 앞에서 비춰진
쥐스탱의 욕망 또한 그의 관점에서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어떤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인간의 욕망에 대해
최대한 가감없이 써내려간 느낌이다.
에마의 그 광폭하고 무절제한 욕망은
삶을 파멸로 이끌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도덕적 교훈을
얻기가 쉽지 않다.
없진 않지만 도덕적 교훈을
정면에 내세우는 소설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욕망이란 것이
권태와 맞물리면
광폭해지고 절제하기
힘든 면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절제하고 권태를 묵묵히 견뎌내는 정상적인
사람들 또한 그것을 완전히 극복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무분별한 탈선 정도는 아닌
소박한 일탈 정도로 참아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마의 분별력 없는 행동은
이해 가지 않지만
근저에 깔린 제어하기 힘든 욕망이라는
내면적 동기에는 공감이 간다.
에마의 욕망이
폭주기관차가 된 이유에는
에마의 허영심과 예민한 기질과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 있다.
만일 그의 아버지 루오 영감처럼
그 시골에서 다른 삶을 알려하지 않고
상상할 수 없는 채 묵묵히 살았다면
에마의 욕망이라는 불에
장작은 없었을 텐데
에마는 독서를 통해
귀부인들의 극적인 삶을
'알게'되었고 상상하게 되었으니
그 상상과 기대는
소진되지 않는 장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 시대에 더
'보바리즘'을 겪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
이유는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이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모든 극적인 삶과 극적인 것들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고
간접적으로라도
읽고 볼 수 있다.
에마에겐 신용 대출이 뢰뢰씨 하나였지만
지금은 온갖 신용 대출과
할부시스템이 넘쳐난다.
에마의 치밀하고 광폭한 욕망과 대조적으로
남편 샤를의 욕망은 아둔하고 은은하다.
'에마의 욕망'은 그녀의 삶을 파멸로 이끌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샤를의 욕망'이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진 못했다.
마찬가지로 샤를 또한 처참하게 비극을 맞는다.
상반되는 형태의 욕망의 파멸을 보여주며
욕망이라는 것이
너무나 복합적이고
다루기 힘들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약사 오메는 자신의 욕망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처세술도 뛰어나고
사회적으로 보기에
행복한 경제적 생활과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지적 시점으로 보여지는
그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한 비열하고 비굴한 인간성을
보면 욕망을 잘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꼭 좋아보이는 것도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외면적으로 내면적으로
욕망을 잘 다스리는 것이지만
이것이 과연 인간의 영역일까?
진리는 도달할 수 없고
최대한 가까이 가는게 최선이라는 말처럼
(누가 했더라?)
욕망은 손 위에 불처럼 완벽히
다룰 순 없고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 인식되지만
소설에 나오는 모든 욕망의 다양한 형태와 크기를
쭉 지켜보고 느껴보면 인간이 얼마나
그 욕망에 휘둘리기 쉬운 존재인지가 느껴져서
도덕적 교훈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책은 더욱 인간사를
객관적으로 그린 것 같아 가치가 높아 보인다.
젊은 베르트르는 로테라는 아주 명확한
욕망의 대상이 있었지만
에마는 세상 모든 극적인 것
욕망 그 자체를 원했다.
둘 다 비극적이지만
에마쪽이 훨 씬 더 비극적이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죽었다.
소설에서
에마의 딸은
유일하게 순수하고
아무런 욕망도 없어보이지만
딸은 엄마가 안보이자
엄마를 찾았다.
에마는 항상 다른 삶에서
욕망을 찾고 극적인 삶을 원했지만
그녀 자신이
가장 강렬한 욕망이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항상 곁에 있었다.
은유적으로 묘사한 마차 카섹 장면이 떠오르네.
사건들의 연속에서 벗어나 단조로운 일상을 무대로 삼은 것도 대단하지만 그걸 떠나 모든 이의 무의식에 잠재된 보편적인 욕망과 우스꽝스런 어리석음을 캐치해낸 걸작이지 ㄹㅇ
마지막 부분 괜찮넹
아아ㅡ 이것이 《근대적 속물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문학에 관한 문학, 스타일을 이용해 스스로 만들어진 소설. 그저 경탄스러울 뿐인 치밀한 교향곡 그리고 인물을 향한 플로베르의 지독한 냉소. 문체와 구조는 완벽하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