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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계의 허다한 기만자들과는 달리, 내츄럴 본 "찐"이었기 때문


- 나름 프랑스에 실존주의를 최초로 들여온 학자인데, ntr 당해서 사르트르가 더 유명해짐. 사르트르도 레비나스의 공을 인정하긴 했지만, 정작 레비나스가 편지 보냈을 땐 답장도 안 함.


- 1932년에 그는 코브노에서 이웃집 처녀였던 라이사 레비와 결혼했다. 그들은 이웃에 살았지만 주위사람들은 그들이 교제한다는 낌새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들은 편지로만 교제를 했던 것이다. (135)
연애도 순둥순둥하게 편지로만 함.


- 그는 한동안 레비나스 기숙사 아파트에서 체류하다가, 49년 어느 날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렸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난 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우루과이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그들이 함께 공부했던동안 레비나스는 비중 있는 저서를 한 권도 출간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스승의 비판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209)

스승이 혼내는 게 무서워서 책도 안 씀.


- 레비나스는 처음 몇 회의 콜로키엄에서 자신의 발표에 따른 지적에 대답했던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침묵을 지키는 편이었다. 그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훌륭한 즉석 연설가는 아니었다. (244)

회의에서도 대체로 침묵으로 일관함. 농담도 안 함. 때때로 상대방에게 지나친 경의를 표해서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지인을 몰라보는 등 허당 짓도 많이 함.



난 예전부터 사교성이 너무 좋은 사람보단 좀 서툰 사람에게 더 매력을 느꼈는데, 레비나스가 딱 그런 타입임. 기만자가 아니라 좋다 이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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