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왕 장구 하
양혜왕 장구 하편은 제 선왕을 만나 이야기 하는 전반부와 추나라,등나라,노나라같은 중소국가 군주를 만나 이야기하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선왕과 만나 이야기 하는 장면은 주로 제선왕이 저는 이러이러한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도 되겠습니까?하고 묻고 맹자는 백성과 같이 한다면 무엇을 한들 좋지 않겠냐고 답하는 부분이 주가 되는데 자세하게 살펴보면
1장에서는 제 선왕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그의 신하가 맹자에게 음악을 좋아해도 되느냐고 물어서 맹자는 음악을 좋아한다면 잘 다스려질것이라고 대답해. 이에 대해서 제 선왕은 부끄러워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옛날 음악이 아니라 요즘 노래가 좋다고 말해. 비유하자면 대통령이 내가 좋아하는건 클래식 같이 보통 배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아니고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좋아한다고 대답하는거겠지. 이에 대해 맹자는 오히려 좋아. 백성들과 함께 요즘 노래를 즐긴다면 더 즐겁지 않겠냐고 대답하는거지.이 내용을 설명할 때의 방식이 처음엔 혼자 즐기는것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것을 비유하고 다음은 소수와 즐기는 것과 다수와 즐기는 것으로 확장시키면서 비유한게 주요하다고 생각해.
음악은 유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보통 예와 악이 묶여. 예는 위와 아래를 나누는 규범을 악은 위와 아래가 같이 즐기는 것을 말하는데 유교에서는 악을 통해서 백성과 지배계층의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했던거 같아. 묵자는 비례비악론과의 차별점이라고 볼수 있겠지.
2장은 사냥터에 대한 얘긴데 주문왕과의 비유로 말해. 제 선왕이 주문왕의 사냥터는 사방 70리인데도 사람들이 좁다고 여기고 자기 사냥터는 사방 40리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크다고 하니까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물어. 이에 맹자는 문왕은 70리여도 통행이 되고 나무베고,풀베고 꿩잡고 토끼잡는게 허용됐는데 선왕은 통행을 금지시키니 사람들이 크다고 여기는게 당연하다고 대답하는 내용으로 양혜왕 장구 하의 주된 내용인 백성과 함께하라는 말이지.
3장은 이웃나라와 사귀기 위해서 큰나라가 작은나라를 섬겨야 한다고 맹자가 말하는데 제선왕이 자기는 용기를 좋아하여 그와 같이 이웃나라와 사귀기 어렵다고 해. 이에 맹자는 그것은 필부의 용기고 주문왕, 주무왕은 한번 화내서 천하를 편안하게 했으니 진정한 용기란 그런 것이다라고 대답해. 이 장을 보면서 든 생각은 바로 우리 주변나라인 중국은 왜?라는 생각이야. 역시 중화인은 국공내전때 다 죽은게 분명해..
4장,5장 또한 놀러다녀도 좋은가요? 여색을 밝혀도 좋은가요? 네 맘대로 하세요. 백성과 함께하면 뭐든 좋습니다. 인 내용인데 앞에 많이 나온 패턴이니까 패스 여담으로 여색을 밝혀도 된다는 부분은 좀 신기하긴 하네. 보통 유교라 하면 성적으로 꽉막혀있다고 생각하는데 의외인데서 풀어주네.
6장은 1장에서 보여준 비유의 확장처럼 친구가 맡긴 처자식을 굶긴 사람, 그 부하직원을 못다스린 관리로 확장하여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누구를 벌해야 되냐고 비유해서 제선왕이 다른 말로 돌린 내용인데 짧지만 맹자의 언어를 잘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
7장은 관리 등용에 관한 말로 주변사람이나 몇사람의 말을 듣지말고 모든 사람이 그사람에 대한 좋은 평가를 내릴때 등용하라는 건데 사실 이 부분이 후대의 과거제로 연결된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으니 객관적인 시험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거겠지. 서양에서는 근세에 와서도 매관매직이나 귀족에 의한 등용이 주가 되고 시험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 구절이 참고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어.
8장은 역성혁명론인데 왕이 인의를 해쳤는데 그걸 벌한다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내용으로 충효가 핵심인 유교에서 주 무왕과 은 탕왕의 고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반박이지. 이 말을 물어본 제선왕 또한 제나라가 강씨에서 전씨로 넘어간게 증조 할아버지대이기 때문에 역성혁명론에 대한 명분론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겠지.
9장은 비슷한 내용이니까 패스
10장,11장을 보려면 우선 연나라 왕인 자지와 태자가 서로 권력다툼을 하여 제선왕이 이걸 명분으로 쳐들어 간 것으로 자지는 연나라 재상이었는데 멍청한 전왕이 신하가 자지에게 선양하면 주변에서 성군으로 볼것이고 자지는 이걸 거부할 것이다라고 말한걸 믿고 선양했다가 자지가 ok해버려서 전왕의 태자와 서로 싸운거야. 맹자는 연나라 백성들이 좋아하거든 점령하고 좋아하지 않거든 점령하지 말라라고 말했는데 제 선왕은 군사들의 약탈을 막지않고 완전 점령도 아닌 형태로 물러가는 바람에 연나라와는 완전 척을 지게 되버렸고 이에 아들인 제민왕때 연나라 합종군에 의해 나라가 망할뻔 해. 만약 맹자의 말대로 연의 정치싸움을 막고 그대로 완전점령을 하거나 태자에게 왕위를 확실히 주어 외교적인 아군을 만들었다면 훗날 그런 멸망에 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데 아쉬운 부분이지. 이 사태로 이전까지 서의 진나라, 동의 제나라라는 균형이 깨져버리고 진나라 독주체제로 완전히 굳혀지게 돼.
여기까지가 제선왕과의 이야기인데 전편 양혜왕과 비교하면 어떻다고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네?
우선 내생각은 첫째로 맹자의 태도가 다르다고 생각해. 양혜왕때는 더 가르치는 방향, 문제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말했다면 제선왕과는 이것도 좋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대신 왕께서 백성과 함께 하십시오라고 설득하는게 다르다고 생각해. 내 생각은 우선 국력의 차이. 위나라는 당시 쪼그라들때로 쪼그라든 상태인데 제나라는 전성기라 부를 정도로 강대한 상황이기 때문에 왕도정치가 가능하리라 봤다고 생각해. 두번째로는 왕의 자질차이라고 보는데 양혜왕은 오십보 백보에서 나온 것처럼 보여주기식 애민을 하지만 제 선왕은 이에 비해 상당히 솔직하다고 보여지는데 1장의 음악도 나 클래식 좋아해라고 있어보이는 척 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중가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3장에서 자기는 용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부분도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거 같아. 이런 솔직한 군주가 왕도정치에 적합하다고 여기고 맹자는 끈임없는 설득을 통해 왕도로 이끌어가는 모양새라고 생각해. 결국 연나라 정벌로 실패한다고 보여지지만.
12장은 지금의 한국이 생각나는 구절인데 소국인 추나라의 왕이 중견국인 노나라와 싸워 졋는데 장교가 30여명 죽었는데 병사들이 대신 죽지 않았다. 이는 웃사람을 우습게 여긴것이니 벌을 주려 해도 다 줄수 없고 벌을 안주려 하니 의리없는 놈들을 살려둘수가 없다고 말해. 이에 맹자는 흉년에 백성들 수탈해서 임금의 양곡창고가 빵빵하게 차있는데 잘도 대신 죽어주려 하겠다고 대답하는데 요즘 우리나라 군대도 많이 좋아졌다지만 계속 폭로가 나오는 걸 생각하면 지도자는 이 구절을 읽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먼저 병사들을 잘해주면 당연히 열심히 일하지 않겠어?
13,14,15장은 뒤에도 나오는 소국의 왕 등문공을 만나서 하는 얘기로 등나라는 소국으로 제나라,초나라 중 어디에 붙어야 하는가? 또 제나라가 국경에 성을 쌓으니 두려우니 묘책을 내달라, 강대국을 섬겨도 결국 침략을 받아 멸망할 것이니 어쩌면 좋을까? 같은 내용이야, 여기서는 아주 쪼잔하고 겁쟁이 같지만 나름 등문공 편에서는 맹자가 칭찬하는 부분이 있는 괜찮은 왕이었다고 하더라. 자세한 내용은 뒤에 등문공 편에서 보자.
16장은 중견국인 노나라(공자출신국)얘긴데 노나라 왕을 만나려 하지만 노나라 왕이 총신이 맹자는 군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이를 만나지 않는 내용이야. 나라가 못크는 이유가 다 있는거라고 생각해.
양혜왕 장구하편의 주된 내용은 백성과 함께하면 뭘해도 가능이라는 문장으로 정리 된다고 생각해. 다음편인 공손추 상편은 맹자의 제자인 공손추와의 대화로 시작해서 공손추 편이야.
질문이나 소감 환영이고 참가하거나 안하거나도 자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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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유교의 허례허식같은 부분도 돌이켜보면 이런 원래 유교의 뜻을 버리고 간 느낌도 없잖아 있지. 3년상하다가 죽는다거나 제사지내는데 돈 많이 쓰는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