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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드 픽션, 코즈믹 호러, 극단적 인종차별, 대책없는 만연체까지, 러브크래프트 작품을 수식하는 어구는 흔히 생각하는 고전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건 작품이건 모순적이다. 또한 단점이 뚜렷하다.

그러나 그 단점을 고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유의 혐오력(?)과 폐쇄적 문체가 사라지면 곧 러브크래프트의 매력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단점이 이미 작품에 뿌리로 작용하였고 특징으로 승화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적 작가 러브크래프트를 분석한 문제적 작가가 있다. 바로 미셸 우엘벡이다. 그는 대표작 "소립자"로 유명하며 현재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쓴 러브크래프트 전기가 국내에 들어왔다. 사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이렇듯 열정적으로 구매했지만(스티커까지 말이다)연재가 바빠 정작 그 독서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 읽었다. 요 근래 날을 잡아 그 날 하루만큼은 러브크래프트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것은 본문 못지않게 재미난 서문을 써 준 스티븐 킹과 너무도 매력적인 문체로 러브크래프트를 분석해준 우엘벡 덕분이었다.

물론 스티븐 킹이 서문을 썼다는 것은 진작에 널리 홍보된 이야기였다. 그가 러브크래프티안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동안 킹의 책을 읽지 않았으므로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잊고 있었다. 킹이 공상한 "러브크래프트의 베개"는 팬으로서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러브크래프트가 어두운 방에서 머리를 벴을 베개, 그가 우주를 꿈꿨을 베개라니, 생각만 해도 성유물로 써서 러브크래프트를 캐스터로 소환하고 싶...아니, 온갖 흥미로운 상상이 피어오른다.

러브크래프트의 고향인 프로비던스에 방문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프로비던스는 러브크래프트가 결혼 후 뉴욕에 살았던 몇 년간(후술하겠지만 이때의 경험이 꽤 중요하다)을 제외하면 평생 거주했던 지역이다. 언젠가 내가 프로비던스를 방문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면, 러브크래프트의 무덤 앞에서 적막한 하늘을 올려다보리라. 부디 그 날은 맑지 말기를. 크툴루 신화의 성지 순례이지 않은가. 햇살보다는 창백하게 흐린 구름이 어울릴 것이다.

잡설이 너무 길었다. 우엘벡의 책은 일반적인 위인전 형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러브크래프트의 일생 전체를 조명하기보다는 그의 작품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엘벡은 시종일관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들에 "그랑 텍스트"라고 프랑스적인 찬사를 던진다. 그러나 주된 관심사는 찬사가 아니다. 해당 "그랑 텍스트"를 통해 본 러브크래프트의 심리와 그의 일생이다.

솔직히 말하면 읽으면서 꽤 자부심을 느꼈다. 내가 단행본에서 분석한 러브크래프트의 성향과 우엘벡의 분석이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똑같이 팬으로서 작품을 통해 작가를 보았으므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독서하며 느꼈던 감상을 여기서도 똑같이 언급하는 바람에 반갑기도 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재산과 성관계에 대한 묘사가 조금도 없다는 부분을 읽고는 육성으로 "맞아맞아맞아!!"했을 정도니까.

그러나 나는 어쨌든 리뷰를 한 것뿐인지라, 러브크래프트의 일생사나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대강으로밖에 알지 못했다. 따라서 이 전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러브크래프트가 최소한 겉으로는 평생 동안 철저히 신사였다는 것, 노동하지 않는 전통적 부르주아 생활에 익숙했다는 것, 극히 내성적이고 염세주의적이지만 아내만큼은 사랑(하려고 노력)했었다는 것 등등.

이렇게 말하면 너무 미화하는 것 같지만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과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다룬다. 의외였던 점은 그가 처음부터 이리도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향에서 시골 신사(러브크래프트는 내면적으로 너무 늙어 있어서인지 고작 서른 안팎의 나이에도 "노신사"로 호칭된다)로 살던 시기에는 차별의식 역시 일반적인 백인 수준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소니아와 기적적으로 결혼(...)한 이후 그는 뉴욕으로 온다. 의기소침한 사내가 처음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신혼살림을 꾸렸으니 매우 건전한 해피엔딩이 기다릴 것만 같다.

하지만 서른 넘도록 사회경험도 없고 인싸력은 마이너스에 수렴하고 고집은 존나쎄고 이력서 문체마저 기묘한 만연체로 써놓은 러브크래프트가 뉴욕에서 가질 수 있는 일자리는 없었다. 불황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 우엘벡이 강조한다. 불황도 아니란다. 참 섬세하게 잘 패는 양반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신사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공포감, 자신보다 아래로 여기던 타 인종(특히 흑인)한테마저 사회적으로 밀린다는 절망감이 시너지 효과를 낸 듯하다. 러브크래프트가 평소 지니던 자페적 요소와 맞물려서 말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실제로 극단적 인종차별은 대개 위기감과 열등의식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백인이라는 점 외에 현실적으로 다른 인종보다 나을 게 없어지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러브크래프트는 그가 본래 지니던 몽상적 기질 때문인지, 결국에는 흑인 및 동양인을 기괴하게 왜곡된 미지의 생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덧붙여 완전 흑인보다는 혼혈들을 더 싫어했다나.(여기서 던위치 호러의 실마리가 나온다!)

기묘한 점은 소위 "그랑 텍스트"로 통칭되는 러브크래프트의 명작들이 이 뉴욕 시기 이후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러브크래프트는 타 인종(혹은 타 문화권)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우주적 스케일로 승화한 셈이다. 그렇다. 병신같지만 인정은 하자. 일반인 기준 인성버린 뉴욕 시절이 결국에는 크툴루 신화의 기반이 된 것이다.

또 하나 기묘한 점은 러브크래프트가 어쨌든 텍스트 외적으로는 신사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평생 흥분하며 화낸 적도 없고 크게 웃은 적도 없고 흑인이 가까이 와도 그냥 좀 창백해지는 게 전부였다니 말이다.(...) 편지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항상 친절했다나.

글쎄, 이미 말했듯 이 모든 것은 우엘벡의 분석이므로 러브크래프트의 내면을 철저히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양면성은 다시금 조명됐다. 예의바른 신사이면서 속으로는 공포와 혐오를 품고 산 사람. 근데 그렇다고 면전에서 혐오했냐면 그건 또 아닌 사람. 그리고 그 혐오를 작품 속에서 우주적 공포로 승화한 사람...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은 분명 그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결코 선하다고는 못하지만 그의 일생과 내면은 기묘한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한편으로는 그 아이러니가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작가"로서 마음 한구석에 담아둘 것이다.

한편 이 책을 읽고서 "소립자"를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더불어 작중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과 함께 언급된 작가들의 책도 구매했다. 리처드 메시슨의 단편집과 아서 매켄 단편집이 그것이다. 곧 다가올 여름은 고전 호러 작가들과 함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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