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 저자가 극찬해서 유명세를 탔다.
이 책은 정말... 아니 존나게 싸구려같지만 신기하게도(?) 매우 훌륭한 직관과 진솔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엠제이 드마코의 부의 추월차선을 읽으면서 메모해 놓았던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품고 있던 의문에 대한 해답 내지는 정리의 글을 간략하게 끄적여보려 한다.
인간이 부를 쌓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저다.
부모의 상속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가장 전통적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다.
이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기에 순전히 운에 달린 일이며, 이 때문에 원망해봤자 아무런 소득이 없는 요인이다.
내가 1인당 GDP 3만 불짜리 나라에서 태어나 주머니 사정과 상관없이 세계 최상급 의료복지를 받는 것이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듯이 자연은 불공정하다.
동정받는 삶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인제 와서 태생이 금인지 흙인지 따지는 일은 시간 낭비에 가깝다.
둘째는 시대가 요구하는 재능이다.
기독교 성서에서는 각자 주어진 달란트라는 표현을 하는데 타고난 재능이 시대적 수요와 맞닿는 순간 부의 길이 열린다.
이 역시 어찌 보면 운이라 할 수 있는데 500년 전 희극인은 아무리 잘나봤자 광대였고 1000년 전의 의료종사자는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동양 의술의 신이라 불렸던 화타조차 자신의 신분을 ‘의사’라 불리길 싫어했을 정도로 대접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연예인과 의사는 선망의 대상이자 대표적인 상위 계층이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지금이야 범죄형 사이코패스가 잠재적 시한폭탄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고대에 태어났더라면 유능한 리더이자 전사였을 것이다.
딱 20년만 더 빨리 태어났으면 잘해야 노숙자나 했을 인간들은 인터넷 개인 방송의 시대의 혜택을 받아 창피한 짓을 대중 앞에서 할 수 있는 재능으로 수억 수십억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내가 가진 달란트가 시대의 수요에 맞는지부터 고려해봐야 한다.
큰 달란트가 없음에도 시대적 가치에 합한 영역에서의 노력이 자기가 지닌 달란트를 최고로 갈고 닦아 살아가는 그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나은 삶의 질을 가져올 수 있다.
셋째는 리스크를 감당하는 선천성이다.
쉽게 말해서 깡이고,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고, 타고난 모험심이다.
인류의 모든 발전과 기득권 세력의 형성은 이 도전의 정신에서 나왔다.
크게는 쿠데타와 혁명일 수도 있겠으나 개인의 수준에서는 보편적으로 투자나 창업이다.
워렌 버핏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미국이 발전할 것을 무조건 믿는다. 그렇기에 미국 주식에 투자한다.’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말하는 투자 원칙이 ‘어쨌든 우상향’이다.
사실 도전이라는 것은 미래를 향한 막연한 낙관이 기본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대공황이 오건 전쟁이 터지건 어쨌든 인류는 발전할 것이고 부의 채산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확실한 신앙.
그것이 있어야 인간은 미래에 투자할 수 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는 이 무조건적인 우상향을 단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다.
(망해도 25년 존버하면 된다.)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되 그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와 비판적이기에 유동성을 정지시켜버리는 삶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부자가 될 수 있는 마지막 조건은 이 막연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믿기에 투자할 수 있고, 투자하기에 성공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누군가는 ‘100%의 확률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면서 잘난척하며 깝죽거리지 마라.’ 비웃을 수 있다. (보통 흙수저들이 그렇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도전이 장려되는 시대는 인류 역사상 없었다.
이전에는 도전하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남들은 동물들이 먹다 남긴 썩은 고기나 떨어진 열매 쪼가리를 주워 먹으며 연명할 때 배부르고 행복한 삶을 위해 동굴에서 뛰쳐나온 원시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사냥에 도전했던 원시인들은 역으로 본인이 잡아먹힐 수도 있는 리스크를 감당했어야 했다.
문명이 태동한 이후, 평민들은 타고난 신분을 뒤집기 위해 자기가 만든 무기와 갑옷을 입고 최전선에 나가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지금까지 인간의 도전은 대부분의 리스크가 죽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지 않는다.
경제적 사망 선고가 떨어질지언정 법정파산과 재기의 기회가 있다.
제 3세계 출신이 아니고서야 아무리 망해도 문명을 누릴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다.
누군가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인간은 도전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는 수준까지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계층 향상을 찬미하는 글을 이렇게 쓰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렇기에’ 우리 세대의 흙수저가 계층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흙수저로 태어나 고향의 흙수저 친구들끼리 대화하고 있자면 나는 그런 위화감을 종종 마주한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대적 요구에 적합한 재능을 지니고 리스크를 견딜 수 있는 선천적 낙관을 지녔으나 전쟁, 재앙급 금융위기 등의 외부 요인으로 흙수저가 된 ‘똘똘한’ 인간들은 지난 30년간 계층 이동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렇다면 지금도 흙으로 남아있는 이들의 존재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아마도 시대에 맞지 않는 달란트를 지녔거나 달란트의 수준이 평균보다 낮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자식은 부모로부터 그들과 동류의 달란트를 물려받는다.
단순히 시대에 맞지 않는 달란트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보통은 낙관을 물려받지 못한다.
나는 이게 오늘날 흙수저들에게 가장 큰 좌절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비관 역시 생존에 중요한 자질이다.
지금이 원시 시대였다면 말이다.
최악을 상정하며 극도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본능이 그 당시에는 생존에 더 적합한 재능이었겠지만 오늘날은 패널티에 가깝다.
그래서 비관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불평하고 불평하고 불평한다.
비관에 예민한 천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불행을 토로하면서도 불행에서 벗어나려는 행위에 소극적이고 이내 계층에 갇혀버린다.
위의 책들을 읽으며 계속해서 고민하고 자문자답해봤지만 솔직히 이들을 도와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유발 하라리가 주장하는 ‘사피엔스 종말의 때’가 아니고서야 말이다.
(인간이 기계적 방식이던, 유전적 조작이던, 자멸하여 Ai에게 유산을 남기던 스스로 인류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
그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재능이 출중하진 않더라도 시대에 맞는 수요를 찾아 투자하던가 의도적 수련을 통해 비관의 정도를 중화시키는 정도일 것이다.
비관 10, 낙관 0으로 태어났어도 노오오력하면 못해도 7:3정도는 가능할 것 아닌가.
모두가 행복한 꿈과 희망의 세계는 이런 형태에서나 가능할지도.
잘 읽었습니다 결국 운빨망겜이란 거구나 탓하거나 그러지 말아야 겠네요 - dc App
글을 읽으니 '세상에 나면서부터 정해지는 주변환경을 보고 들으며 생성되는 비관과 낙관 성향'이 소위 흙수저와 금수저의 유일한 불공평 아닐까 싶기도... 실패 이후 세컨드찬스가 있다없다의 차이도 엄청날 것이고.
솔직히 선천성에 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울에만 매몰되는 기분임
그렇긴 해
부의 추월차선 어떰???? 살까말까 했던 책인디 살만함?
살거면 후속작인 언스크립티드가 나을듯. 전반적으로 비슷한 내용인데 전작의 지적받던 부분을 해명하는 파트도 있고 생것 같이 엄청 거칠던 글도 되게 매끈하게 잘 다듬어져있음.
언스크립티드만 사도 전작이 부의 추월차선 내용 커버 가능함???
ㅇㅇ 알맹이는 똑같음
흥미로운 글이군요
재미있게 읽어줘서 고마워용
갑자기 낙관 비관 얘기로 정리되는 것 빼면 괜찮은 글 같아요 - dc App
슬프구만 누구나 부자가 되길 원하고 그런 자질을 갖고 태어나길 바랐을텐데 우린 그저 태어남 당한 존재니
징징대봐야 어쩔 수 없으니 노오력해야 한다는 끝없는 타협의 프레임에서 빠져나오는 철학이 절실히 필요해
사회적 구조 속에선 부를 향한 도전이 많을 수록 좋긴한데 개인에겐 글쎄다? 결국 이 글도 모두에게 도전의 기회가 있다지만 쓸 수 있는 기회의 차이에 대한 해명을 전혀 못해주고 있음
게다가 표본의 오류도 의구심이 들게 함 흙수저에서 개천용으로 나온 사람은 항상 있어왔다? 달리 말하면 흙수저에서 성공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라는 건데 그 비율을 따저 놓고보면 이미 부자인 자가 더 부자로 간 자의 비율이 더 높을 수 있지 않을까?의 의문점이 남음
너무 염세적으로 쓴 거 같은 데 결국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개인들끼리 협동을 통한 도전이 중요하다 생각함 그럼 그 단체는 단체의 인원수만큼의 달란트와 도전기회를 갖는 것과 비슷할 테니까
흙수저의 문제는 흙수저 부모의 알고리즘, 즉 사고방식을 어릴 때 주입받는다는 것이고,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그 알고리즘을 탈피하기가 어려움
정성글추 - dc App
간만에 인터넷 글 정독했네. 재밌게 잘 읽었다. 글 자주 써줘 ㅎㅎ
나도 흙수저 알고리즘 탈피하기 어렵네. 아 나도 성격 비관적이고 감정 기복 개심한데.. 좋을 때는 너무 좋은데 나쁠 때는 끝이 없음. 여태까지 살아온 환경 자체가 비관적인 일도 많았고 좋은 일도 많기는 했지. 나는 존나 의지박약이다. 대학교 겨우 들어와서도 내가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것만 성적 잘 나오고 열심히 함. 스스로도 나는 병신이라고 생각함. 와 나 진짜 어떻게 살아야 되나. 요즘은 하기 싫고 귀찮은 걸 해낼 의지가 없음. 그런 게 뭐였나 싶다. 진짜로 느낌이 그럼.
감동받았어요 - dc App
지수추종투자 추천글이네
정성글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