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요 몇년간 유행을 타고 있는 듯하다. 책의 수준은 천차만별이긴 하나, 인문학의 위기니, 멸종이니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감사해야할 듯 하다. 최근 인문학 유행의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강신주? 채사장? 마이클 샌델? 사회적 현상의 원인을 특정 저자에게서 찾는 것은 대한제국 멸망의 원인이 이완용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일 것이다.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강신주 50명이 있었어도 인문학 서적이 유행하진 않았을 것이다.(비슷하게 말하자면, 대한제국이 멀쩡한 나라였다면 을사오적이 아니라 을사오십적이 있었어도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는 인문학 서적을 요구한다. 너무 어렵지는 않고 적당히 시간 내서 읽을 수 있는, 읽고 나면 뭔가 자기가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문학 서적을. 독자들의 수준낮음을 욕해야 할까? 제목에서부터 삼류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책들(이런 책들은 어찌 제목도 엇비슷하다)일랑 집어치우고, 세계적 석학들의 진지한 정치철학 서적을 읽으라고 충고해야 할까? 누구에게? 주말 특근과 회식, 부장님의 썰렁한 농담과 야근에 지친 회사원들에게?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흔히 종교의 유해성을 강조하는 말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종교가 아편으로서 요구되는 인민들의 절박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비틀어 인용해보자면, "인문학은 회사원들의 아편이다." 인문학 서적을 읽는 이들의 연령대는 폭넓게 분포되어있지만, 대체적으로 30대에 집중되어 있다. 30대 직장인들에게는 특유한 조건이 만들어낸 정조가 서려있다. 80년대에 태어나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겪고, 처음으로 '대중문화'와 IMF를 겪었으며, 지옥같은 취업전쟁을 이겨내 겨우 사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존재들. 동시에 이들에게는 완성된 민주주의와 그 완성된 민주주의 속에 근원적으로 내재한 균열 역시도 주어졌다. 그들 세대가 처음으로 뽑은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이며 바로 다음에 당선된 대통령은 바로 이명박과 박근혜였다. 


또한 이들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낙후된 상태에서 자라난 세대들(부모세대)과 달리, 모든 것이 완비된 상태에서 태어나 그것이 사라지는 경험을 해야했다. 경제적 풍요로움(설령 그것이 그들이 직접적으로 향유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과 경제적 결핍이 공존하는 시대, 마천루의 전광판에서 경제난의 뉴스가 방송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자립적 개인으로 태어났지만 동시에 그것을 스스로 해명해야 할 임무를 띠고 있다. 그들은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세대이다. 30대는 독재자들의 이데올로기(반공, 발전우선 등)와 유교적 전통이 사라진 시대에서 태어났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은 삶의 이유, 존재의 이유를 전통이나 특정 이데올로기에서 끌어올 수 없는 세대이다. 스스로 스스로의 존재를 규정해야하는 세대이다. 여기에서 그들에게 세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동시에 자기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대답해 줄 수 있는 세계관이 필요해지는데,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인문학 서적이다. 인문학은 모든 문제를 해명해 줄 수 있는 마스터키다. 


현재의 인문학 열풍과 비교해볼만한 현상은 과거 직장생활과 삼국지, 손자병법을 엮은 책들이 유행했던 현상이다. 삼국지 열풍과 인문학 열풍은 정확히 정확히 세대론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한 세대(현 4~50대)는 직장을 의리와 권모술수, 암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이해했고, 다른 한 세대(현 30대)는 그런 것을 떠나 세계 전체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 두 세대의 차이는 열악해진 현재의 조건에서 기인한다. 현세대에게 직장은 더 이상 추구해야할 무언가로 이해되지 않는다. 직장에 자기 인생을 걸어봤자 얻는 것은 병이요, 쥐꼬리만한 월급 뿐이다. 계층 상승은 언감생심이고 짤리지나 않으면 다행인 세상이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가 유비나 관우가 아니라 황건적에게 단칼에 목이 날아가는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YOLO족의 유행도 이런 맥락에서 읽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