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었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솔직히 말해서, 야해서 읽었다. 그래서 40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음에도 후딱 읽었던 것 같다.


와타나베가 다음엔 누구랑 어떻게 섹스할까?, 순전히 이런 호기심으로 열심히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는 하루키의 문장력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그땐 몰랐지만, 다시 읽을 땐 문장력에 놀랐다. 가벼우면서도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 스케치하는 것만 같은 문장이었다.


그럼 두 책의 문장을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아래는 문학 사상사의 『상실의 시대』, 번역가 유유정, 2009년 판 기준과,

민음사 『노르웨이의 숲 30th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번역가 양억관 (용의자 X의 헌신 번역가)의 2016년 판 기준이다.


『상실의 시대』 p13.

그때 서른일곱 살이던 나는 보잉 747기의 한 좌석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비행기는 두터운 비구름을 뚫고 내려와,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하려 하고 있었다.

11월의 차가운 비가 대지를 어두운 장막으로 감싸고 있었고, 비옷을 걸친 정비공들과, 민둥민둥한 공항 빌딩 위에 나부끼는 깃발들 하며, BMW의 광고판 같은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이 플랑드르파 화가들의 음울한 그림의 배경처럼 보였다. 드디어 또 독일에 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비행기는 착륙하자 금연등이 꺼지고 기내의 스피커에서 조용한 배경 음악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어떤 오케스트라가 감미롭게 연주하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나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아니, 다른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격렬하게 내 머릿속을 흔들어 놓았다.



『노르웨이의 숲』 p9

서른일곱 살, 그때 나는 보잉 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기체가 두꺼운 비구름을 뚫고 함부르크 공랑에 내리려는 참이었다. 11월의 차가운 비가 대지를 어둡게 적시고, 비옷을 입은 정비사들, 밋밋한 공항 건물 위에 걸린 깃발, BMW 광고판, 그 모든 것이 플랑드르파의 음울한 그림 배경처럼 보였다. 이런, 또 독일이군.

비행기가 멈춰 서자 금연 사인이 꺼지고 천장 스피커에서 나지막이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오케스트라가 감미롭게 연주하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늘 그랬듯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상실의 시대가 유려하고 서정적이라고 느껴지는 반면,

노르웨이의 숲은 문장이 짧아지고 단순해졌지만, 보다 젊어진 것 같다.


아마 번역가의 나이 차이 때문일 것이다.


유유정 번역가가 1922년 출생의 시인인 반면,

양억관 번역가는 1956년 생으로 수많은 책들을 전문적으로 번역한 유명 번역가이다.

두 번역에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부분을 살펴보자. 아마 이 부분에서 확 와 닿을 것이다. 다음은 와타나베가 요양원의 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이다.『상실의 시대』 p15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버린 지금에 와서도 나는 그 초원의 풍경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가 있다. 며칠인가 계속된 부드러운 비로, 여름 도안 쌓였던 먼지가 말끔히 씻겨 내려간 산은 깊고 선연한 푸르름을 머금고 있었고, 10월의 바람에 억새풀 이삭이 한들거리고 있었으며, 기다란 구름이 얼음장처럼 투명한 창공에 떠 있었다. 하늘이 너무나 높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 올 지경이었다. 바람은 초원을 건너 그녀의 머리카락을 잔잔히 흔들고는 잡목 숲으로 빠져 나갔다.


『노르웨이의 숲』

열여덟 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초원의 풍경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다. 며칠 계속된 부드러운 빗줄기로 여름 내내 덮어썼던 먼지를 깔끔히 씻어 내린 산 능선은 깊고 선명한 파랑을 띠고, 억새 꽃을 흔들며 불어 가는 10월의 바람 속에서 길고 가느다란 구름이 파란 하늘에 차갑게 달라붙어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노라면 눈이 아릴 만큼 높은 하늘이었다. 바람은 초원을 가로질러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고 숲으로 달려갔다.



확연히 느껴진다.



『상실의 시대』가 감수성을 무기로 하여 이삭, 나뭇잎, 구름이 얼음장처럼 투명한 창공에 떠 있었다는 식으로 표현했다면.


『노르웨이의 숲』은 하루키가 썼던 문장 그대로를 옮겨온 것만 같다. 억새 꽃, 구름이 파란 하늘에 차갑게 달라붙어 있었다는 식으로.



『상실의 시대』 p15

나뭇잎들이 사각거리고,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다른 세계의 입구로부터 들려오는 것만 같은, 희미하고 어렴풋한 울음소리였다. 그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어떤 소리도 우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와도 마주치질 않았다. 다만 빨간 새 두 마리가 초원에서 무엇인가 겁먹은 듯 날아올라, 잡목 숲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걸어가면서 나오코는 내게 우물 이야기를 해주었다.


『노르웨이의 숲』 p11

우듬지의 잎이 사락사락 소리 내며 흔들리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다른 세계의 입구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작고 쉰 듯한 소리였다. 그것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어떤 다른 소리도 우리 귀에 닿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 곁을 지나가지 않았다. 새빨간 새 두 마리가 초원에서 무엇에 놀라기라도 한 듯 황망히 날아올라 숲 쪽으로 날아갔을 뿐이었다. 걸으면서 나오코는 나에게 우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상실의 시대』의 번역이 조금 더 마음에 드는 것 같다. 번역가의 노력의 흔적 같은 것이 보인다. 단어 하나를 고를 때도 굉장히 고심해서 고른 것만 같다.


그럼에도 현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와 닿지는 않는다. 스물한 살의 대학생들이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대화에서도 와타나베가 스물한 살에 걸맞지 않게 애늙은이처럼 나온다.


만약 보다 젊고 세련된 것을 선호한다면 양억관 번역가의 『노르웨이의 숲』을, 어지럽지만, 시적이고 표현과 아름다운 문장을 좋아한다면 『상실의 시대』를 추천하고 싶다.


출처: https://blog.naver.com/rlawlgjs2222/220908709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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