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2021 4/1

류비세프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가져야할 본질적인 것은, 자신의 신념이다.

이 신념은 당시 과거 학자들에게 가진 필수적 덕목일 것이다.

이 학자들은 자신의 과학, 철학, 사회 그리고 음악과 같은 것 뿐만 아니라 사상가들로서 사람들을 계몽시킨다.

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은 필수적으로 문학을 좋아한다.

한 예로)

18C 실리 독일 작가가 보낸 편지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용구를 적다 자신도 모르게 그 한 장면 전체를 썻다. 라는 부분이 나온다.

좋아하는 문자을 옮겨 쓴다는 즐거움에 빠져 정신없이 몰두하게 된 것이다.

과거의 지식인들은 바로 그려했을 것이다.

절제되고 근면하고 학자로서 자신의 신념으로 옳바른 자세로 삶에 임했다.



학자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고찰

학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오타쿠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몇 십년 몰두하며 세상에 놀랄만한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학자라 하면 자기절제, 견건한 자세, 근면성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였다.

학자는 세계의 대양(大洋) 같은 지식을 흥미를 가진 일반인이다.

곤충체집 부터 역사, 정치, 철학 등 한사람이 흥미를 가지고 깊게 파고들어 정리, 분석, 대안을 내놓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여러 내용들을 분석, 정리 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세상을 보는 시점은 나와 다르다. 세계속, 역사속에 내가 있을 뿐인데, 학자들은 내가 세상의 역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자의 분류하는 사고는 이성적이며, 논리적일 수 밖에 없다.

어떠한 편협된 사건이 일어난다면 자신이 진리로, 불이익을 받게 되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 시킨다. 이게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그런가? 생각하지만, 학자들은 본질적 사고하는 자신의 진리는 일반인보다 더 강렬해서 아무리봐도 합리적이여야하는 일에서도 비합리적으로 나온다.

아니, 오히려 냉철한 이성인이기 때문에 어떠한 불협된 사건이 일어나도 자신의 진리를 관철 시킨다.

이게 학자로서의 정신이다.


과거 소련시절 1910년대 사람인 류비세프는 컴퓨터라는 존재는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글로 쓰고, 정리하고, 분류화 하여 보관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원할때 정보를 빠르게 찾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거 지식인들은 자신이 연구한 것이나, 신문, 잡지 등을 오려서 분류, 정리 하고 편철까지 하는 정성까지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현대 시대에서 볼때 정말 효율적이지 못하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만 소모한다고 생각든다.

그러나 [정리하는 뇌]를 읽거나 ,[초서독서법]을 읽으면, 자신이 직접 사고하고 요약하고 글로 쓰고 정리를 하면 뇌가 더욱 잘 기억을 한다는 점이다.


일반인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정리, 분류, 글쓰기, 사진, 잡지, 신문을 오려 붙여 편철까지 하는 정성을 쏟아 붙는 시간은 상상초월이다.

그런 그들은 자연스럽게 사물을 분석, 분류 하는 능력은 상상 초월하게 발달 되었을 것이다.

왜 현대 시대 문학보다 과거 문학이 더 뛰어나고, 왜? 현대시대 철학, 세계를 흔들만한 위대한 과학이 과거에 더 발생했을까?

적은 인구이면서도?

그건 바로 컴퓨터가 없고 한정된 정보지만, 어느 누구보다 그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사고를 꿰뚤을 정도로 구시대적 분류화 작업을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현대시대 사람보다 통합, 분류, 해석능력과 같은 뛰어난 능력으로 세계를 흔들만한 성과가 나온다. 아인슈타인을 봐라


학자로서의 류비세프, 70대인 할아버지가 곤충채집, 잠자리체를 잡고 매일 어린아이처럼 뛰어다니면서 곤충을 잡는것을 상상해라

그의 얼굴에는 행복감이 가득하다.

이게 학자로서의 마음가짐이다.

학자는 어떤 것이든 자신이 흥미로운 일 이외에 절대 신경쓰지 않는다.

아주 하찮고 어린이 같은 놀이에도 끊임없는 흥미를 가진다.

세계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질듯한 곤충종류의 분류화나 곤충체집을 하니 말이다.


이게 인간의 궁극적 지구를 지배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흥미

마치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정복자의 마음과 같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