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으면 나쁘진 않다.

나는 속독을 배우진 않았지만 소설책 한 권 정도는 1시간 내에 읽을 수는 있다.

말 그대로 '빠르게' 읽는 것일 뿐이다. 모든 활자를 눈에 찍으머 머릿 속에 인풋하기는 하지만 시뮬레이팅 되는 내용은 한정적이다.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면 그를 상상하는데 어느 정도는 걸릴 것이고, 물의 촉촉하고 싱그러우면서도 비릿한 계곡의 향기를 떠올리는 데에도 몇 초는 걸릴 것이며, 거대한 아름드리나무의 바닥에 자란 나무의 귀 같은 이끼와 버섯들의 눅눅하면서도 친근한 평화를 떠올리는 데에도 몇 초는 더 걸릴 것이며, 주인공이 입고 있는 린넨 셔츠의 질감이 길이 든 옷이라 때가 탔으면서도 부드러울지, 여인을 만나기 위해 나왔으므로 목이 까슬까슬 할 정도로 아리지만 하얗게 빛나고 있을지 떠올려 보는 것도 한참이 걸릴 것이다.

속독은 이런 과정을 무시한다. 가끔은 이를 온전히 음미하기 위해 책갈피를 대신해 오른손으로 책을 괸 후 왼손으로 책 표지를 쓰다듬으며 작가의 묘사를 경탄하면서도, 상황들에 몰입하여 희열을 느낄 시간이 필요되곤 한다. 이는 정독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이며, 속독으로 한 번 거친 후 이 되씹기를 하기에는 감동이 퇴색될 것이다.

감동을 느끼고 싶어서 산 책이라면 처음부터 정독을, 정보를 얻기 위해 산 책이라면 속독 후 정리 차원에서 재독을 하는 것이 나의 버릇이다.

즐기기 위한 독서에 속독은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