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불어나 독어가 되는 사람들은 그걸로 읽으면 좋고.

한국 번역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원저자와 원어민 전문가들에 의한 체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데 있다. 예를 들면 피에르 부르디외의 불어 원전들의 영역본들에는 "역자 후기"가 없다. 왜냐하면 부르디외 본인이 번역 감수를 전부 했으니까.

물론 그게 어려울 때도 있지. 그러면 세계 수준에서 공인된 전문가들로 이뤄진 집단이 번역 감수를 해야 하는 데 그런 일도 잘 없고.

그런고로 한국에서 번역본을 읽는다는 건 번역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는 고려대 김성도 교수의 소쉬르 번역, 명지대 강순전 교수의 헤겔 번역에는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왜냐하면 그들의 역량을 믿기 때문에. 반면 학술적 역량과 업적이 공인되지 않은 이들의 번역은 믿을 수가 없다.

번역은 단순히 일대일 대응이 아니고 어떤 의미에서 엄청난 의역인데, 과연 신뢰할 수 없는 학자들의 의역을 믿을 수 있느냐는 거지. 그래서 나는 번역본을 고를 때 만큼은 역자에 대해서 엄청나게 까다롭게 군다. 업적 없는 교수들, 뒷배경이 의심되는 석박사생들의 번역본은 절대로 거른다. 영문판 독서는 느리지만 어쨌든 내가 통제할 수 있으니까.

물론 모든 책을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정확한 독해가 요구되는 고전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것.